행복의 정원/생활글

자기를 버려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

풍월 사선암 2013. 10. 17. 18:04

               

  內篇/齊物論의 語錄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근심과 한탄, 변덕과 고집, 아첨과 거만, 개방과 꾸밈 이것들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그것들이  나타날 때가 없다.

 

  <喜怒愛樂 慮歎變慹 姚佚啓態 非彼無我 非我無所取 >

    희노애락    려탄변집    요일계태    비피무아     비아무소취

 

 

하늘은 맑다고 기뻐하고 흐리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구름이 흘러가는 길을 만들어 놓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시비를 않는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둔다. 땅도 마찬가지이다.  무엇 하나 요구하질 않는다.  나무가 있으면 자라게 하고 거기서 살다가 죽으면 그 자리에 눕게 하여 쉬게 한다. 온갖 것들을 그냥 살게 할 뿐 터를 전세 놓거나 팔지를 않는다. 그저 그대로 그냥 내버려둔다. 그래서 땅은 어떠한 감정도 모른다.  

 

만일 천지에 감정이 있어서 그 감정이 용심을 부리면 아마도 만물은 편안히 살 수도 없고 편히 죽을 수도 없을 게다. 하늘이나 땅은 자기를 모른다. 만일 하늘이나 땅이 자기를 고집한다면 만물은 모두 천지의 노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천지는 만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면 살 수 없다고 확신하는 동물 중에서 맨 앞자리에 선다. 목숨이 있는 것이면 모두 자기를 안다. 진달래가 목련이 될 수가 없다. 소나무가 느티나무로 될 수가 없다. 모두 다 자기가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분별이 짐승에 이르면 한층 더해진다.

       

뻐꾹새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그 둥지의 산새는 제 새끼의 알인 줄 알고 품어서 뻐꾹새 알의 껍질을 깨뜨린다. 그래서 태어난 뻐꾹새 새끼를 제 새끼로 알고 정성껏 키운다. 그러나 자랄 만큼 자라면 그 새끼는 뻐꾸기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서로 다른 자기를 간직했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수리는 제 새끼를 키우기 위하여 다른 것의 새끼를 죽여서 먹이를 삼아야 한다. 이러한 살생도 자기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에 이르면 그 정도는 더더욱 복잡다양해지고 엄청나게 무서워진다. 왜냐하면 복잡해서 미묘한 감정을 부리는 자기를 맨 앞자리에 두려는 욕심이 사람에게는 터져 오르는 화산 같기 때문이다.

 

남의 밥에 있는 콩을 제 밥의 콩보다 크게 보는 눈은 사람의 눈밖에 없다. 꽃잎을 비틀어서 억지로 향기를 짜내서 향수를 만드는 코도 사람의 것밖에는 없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입방아를 쪼아대는 입도 사람의 입 밖에는 없다. 거짓말이냐 참말이냐 따져대는 귀도 사람의 귀밖에는 없다. 이처럼 사람이 모질게 잔인하고 영악한 것은 저마다 복잡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사람을 감정의 동물이라고 한다.

 

사람이 그러한 동물인 것은 사람에게 저마다 자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이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질 않는다. 항상 변덕스럽게 하고 항상 불안하게 한다. 그러니 항상 평안한 삶을 누릴 수가 없게 된다. 말하자면 항상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그 늪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자기가 없는 쪽으로 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를 버리면 행복하게 된다. 

 

그렇지만 누가 그 자기를 버리려고 할 것이냐고 따진다면 장자도 버리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없음을 그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은 참으로 진실이다 : 자기를 버려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

 

(참고적인 지적 :자기를 버려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 과연 이 결론이 정당한 것인가는 의문이라고 할 것이다. 본문에 예시된 소나무가 항상 푸른 것은 고유한 자기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그 푸르름을 잃으면 자기를 지닌 소나무가 아닌바, 과연 그런 자기를 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냥 맹탕의 자기가 될 것이고, 쉽게 말하면 자기가 사라진 바보가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바보가 행복한가? 단언하건대, 바보에게 행복이란 없다. 그냥 바보가 있을 뿐이다. 어쩌면 자기를 버리는 것이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를 버린다고 해서 행복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그냥 행복과 무관하게 때로는 좀 더 편안해지는 길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자기를 버리는 길로 가는 것은 바보가 되는 길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퍼온 사람 씀)  * 

 

 

           出處/ 莊子『內篇/齊物論의 語錄 中에서』 지은이/ 尹在根 한양대명예교수】

                                         2012居安居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