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
아프다고 전화하자니
걱정할 자식들이 마음 쓰이고
아무 말 않으려니
서럽디서러워
모처럼 자식들 내려오던 날 한 시간 전에
텔레비전 옆에 약 봉투
첩첩 세워 두었네
손목 잡혀 병원 가는 길에서
어머니는 진작에
만병이 나았네
오지
깊은 산속에 살게 된다면
우리 조금 못나도 된다
못나도 너무 못나
도시에서는 외면당하고
상처 받았었다 할지라도
깊은 산속에서는 문제 되지 않는다
너를 판단할 사람
오직 나뿐이고
나를 판단할 사람
오직 너뿐이기에
일 년쯤 지나면
심마니 하나 지나지 않는 그곳에서는
도무지 네가 잘난 애였는지
못난 애였는지 가물가물 해지고
비교해볼 만한 누구 하나 없는 탓에
선택의 여지없는 우리로서는
별수 없이 사랑하게 되어 있다
사랑밖에 할 것 없는
그 깊은
산속에서는
태풍
창문 닫지 마라
먼 길
휩쓸리어 아프게 날아왔다
교회 십자가에 얼굴을 베이고
유흥가 뒷골목
쪼그려 앉아 우는 호스티스의 눈물을 훔치고
실연한 청춘이 쏟아낸 측은한 오물을
알몸으로 쓸었다
키스방 전단지 뿌리는
노파의 더운 목을 식히고
곰팡이 핀 반지하
묵은지 냄새를 몰아냈다
창문 꼭꼭 닫은 병풍 같은 아파트,
등 떠미는 뒷바람의 재촉에
벽을 타고 수직으로 오른다
꼭대기를 넘기 전 십칠층
고요히 잠든 네 곁에
이제 그만 쉬고 싶다
그런 이유로 사람이여 창문을 열라
균열같은 틈새에 머리를 구겨 넣고
긴 비명을 지를테다
최 씨의 복권
걸려 봐
걸리기만 해 봐
주상복합 로열층을 몽땅 사들이고
오전에만 다섯 끼니를 해치운 다음
엘리베이터 대신 짐꾼 등에 업혀
굳이 계단을 오르내릴 테다
오후에는 외상 담배 거절한 인심 박한 편의점엘 찾아가
운 나쁘게 교대한 아르바이트생 얼굴에
고급담배 열댓 보루를 집어 던지고서는
그 길로 잘 빠진 아우디를 뽑아 타고
짱깨라며 멸시하던 고급 빌라 경비영감 앞을
한 시간쯤 들락거려야지
돌아오는 길엔 고급 바로 이름난
어느 스카이라운지 창가에 자리를 잡고
빌어먹을 길 건너 대학병원을 내려다보며
값비싼 양주를 실신할 만큼 퍼마실 테다
씨팔 석 달 전에, 가난이 어떻고 미래가 어떻고 하는
일리 있는 말로
칠 년이나 사귄 나를 용케 설득하고 떠나가서는
그런대로 봐줄 만했던 얼굴을
듣기로는 신분 상승 위해 리모델링 한답시고
예금 털고 적금 깨서 돌팔이에게 맡겼다가
식물인간 되었다는 너의 중환자실을 찾아가
그래, 소원대로 콩알만 해진 얼굴과
칼등 같은 콧날과 감기지 않는 쌍꺼풀 위에
술김에 인출한 오만 원권 천 장을
눈물 대신 뿌려주겠다
이 년아 눈을 떠라
돈이 왔다
술 약속
우리 만나면 괴로운 얘기는 하지 말자
돈 얘기 직장 얘기 애 키우는 얘기
그런 얘기 말고 예를 들어
톱스타 A와 B의 밀애에 관한 얘기
둘이 먹다 둘 다 죽은
중국 요리 비법에 관한 얘기
여행 얘기라면 더욱 좋겠다
호수와 하늘이 뒤집힌 곳에서
독한 술로 밤새 피를 돌려도
숙취가 없더라는 얘기
직립하는 고라니와 날개 달린 멧돼지가
빨간 배추를 심고
비처럼 쏟아지는 별 한 모금에
오팔 홍채와 은빛 피부를 갖게 된 얘기
구질구질한 원망과 후회를 사구처럼 쌓고도
모래 한 알 되가져 올 수 없어 천만다행이더라는
그런 얘기
화해
왜 또 시작이야
뭐가 또 불만이야
치려면 쳐
옛날처럼 쳐보라고
옘병헐 년 뭘 잘했다고
네가 밥을 제때 챙겨줘 봤어
빨래를 제 때 해줘 봤어
뭐 하나 마음에 드는게 있시야지
나도 낼모래면 칠십이야 칠십
종일 밭에서 긍매니라
관절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데
더 이상 어쩌란 말여
그러니까 뒈져 어서
살아 봐야 고생 아냐
농약을 쳐먹던지 목을 매던지
이건 사람 사는 낙이 있나
온종일 개새끼만 끼고 자빠졌고
칠십둘에 경비 일은 쉬운줄 아나
서방 관절은 무쇤가
서방 허리는 무쇤가
댕겨 오면 반길줄을 아나
수고 했단 말 한마딜 하나
각방 쓴지도 이십년이다
그래그래 뒈질테니
어디 나 없이 살아봐
더는 살고 싶지 않아
자알 생각 했다
솔직헌 얘기로
늙으면 빨리 뒈지는게
새끼들 위하는거에요
그러엄
아이고 아부지
아이고 아부지
다음날,
부모님은 읍내에서
갈비탕을 사드셨는데
갈비탕은 어머니가 제일
좋아 하시는 음식이다
이 댓글을 남긴 이는 'gepetto777'란 ID의 네티즌. '제페토'라고 불립니다. 씁쓸하고 서글픈 기사에 현실적인 감각으로 특유의 절절한 글을 남겨 네티즌 사이에서 '댓글시인'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에서도 댓글시인의 존재는 단연 화제입니다. 그가 남긴 절절한 댓글은 수없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 세상풍경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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