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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제출 앞둔 ‘김영란法’ 원안후퇴 논란

풍월 사선암 2013. 7. 22. 00:09

[정치]1010답 뉴스 깊이보기 국회제출 앞둔 김영란원안후퇴 논란

 

영향력 통한 금품수수조항 모호수뢰죄 처벌빠져나갈 구멍 우려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재직 당시 내놓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 관심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형법에서는 공무원 금품 수수에 대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모두 인정된 경우에만 뇌물죄로 처벌됐지만, 국민권익위원회는 100만 원 이상 금품을 수수한 공무원은 예외 없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 금품 5배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이 법의 목적은 공직자가 특정인의 스폰서로 전락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었다. 그러나 대가성 없는 후원금 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와 친척·친지간의 금전 수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논란이 벌어지면서 국무총리실의 수정안까지 나온 상태에서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태다.

 

1. ‘김영란법추진 배경과 상황

 

2011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초안을 국무회의에 소개했다. 고질적인 청탁 문화가 한국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깨끗한 공직사회조성을 공직자들의 자체 의지에만 맡길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당시 다수의 국무위원이 이 초안에 반대 의사를 보였다. 이 법은 이후 부처 협의과정에서 핵심조항이 수정됐다. 법무부는 김영란법이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는 법안이라며 형사처벌에 반대했고 이 반박의 입김은 생각보다 컸다.

 

처벌 수위를 놓고 권익위와 법무부 사이에서 1년간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그 결과 직무관련성을 불문하고 과태료(수수 금품의 5배 이하)만 부과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형벌 대신 과태료로 처벌이 완화된 것이다.

 

이를 두고 과태료만 부과하는 건 공직사회 부정부패를 경미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국무총리실이 나섰다. 총리실은 지난 3일 공직사회 부패를 막기 위해 대가성 없는 금품 수수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을 손봤다.

 

2. 권익위가 마련한 원안 핵심

 

권익위가 마련한 법안 원안의 핵심은 100만 원 이상 금품을 수수한 공무원은 예외 없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 금품 5배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100만 원 이상을 준 사람 중에 양심적으로 이야기해서 대가성이 전혀 없었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가성 없이 공직자를 후원한 사람도 언젠가 그 공직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법이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대가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아예 100만 원 이상의 금전 거래 자체를 불법화하자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당초 의도는 이 법의 존재만으로도 공직자의 부패를 척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뇌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나, 청탁을 거절하고 싶은 공직자 모두가 이 법을 언급하며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3. 법무부 안의 강조점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권익위의 입법예고 이후 구두 협의를 한 후 의견서를 제출했다. 법무부는 의견서에서 직무관련성이 없는 일체의 금품수수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고, 이로 인해 원안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언론인 등 공무원이 아닌 유력 인사들과 달리 공직자만 비합리적으로 차별한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권익위는 처음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연고주의와 청탁 관행을 끊기 위해서는 엄격한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맞섰으나 세 차례나 법안을 고친 끝에 결국 법무부 주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4. 총리실 조정안 내용은

 

논란이 계속 커지자 국무총리실이 나섰다. 국무총리실은 3일 공직사회 부패를 막기 위해 대가성 없는 금품 수수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을 손봤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권익위, 법무부와 회의를 통해 조정한 부정청탁금지법 처벌조항을 보면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직무를 통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직자가 직무관련 여부 및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일체의 금품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하는 것을 금하면서 가액 100만 원을 기준으로 형사처벌과 과태료로 나눈 원안과, 직무관련자로부터 돈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서만 형사처벌이 아니라 과태료 처분하자는 법무부의 의견을 절충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조정안을 두고 누더기 입법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5. 과잉금지 원칙이란

 

과잉금지 원칙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함에 있어서 준수해야 될 기본 원칙이다.

 

헌법 37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6. 직무관련성·선의의 금품 논란

 

지난해 김 권익위원장 재직 당시 권익위는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한 공무원은 모두 처벌할 수 있는 김영란법을 내놨다. 그러나 법무부는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며 직무관련자에게 금품을 받았을 때만 처벌토록 하는 수정의견을 내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권익위와 법무부는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금품을 받은 자는 과태료(받은 금품의 5배 이하)를 부과하는 것으로 완화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정 총리가 나서 김영란법에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그 지위·직책에서 유래되는 사실상 영향력을 통한 금품수수는 대가관계가 없더라도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그러나 직무와 관련성이 없음에도 사실상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대가성이 없어도 건설업체 관계자가 국토교통부 공무원에게, 지역 유지가 검사에게 금품을 제공했을 때 등을 그 예로 들었지만 조정안을 교묘히 피하는 스폰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7. 금품수수죄 왜 필요한가

 

이 부분에서 특히 공직부패 예방에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판례가 형법상 수뢰죄의 직무관련성을 넓게 인정하고는 있지만 수수한 금품과 직무행위와의 관련성 또는 대가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한 수뢰죄로 처벌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

 

2010년 일명 공직자의 스폰서 사건과 관련해 법원은 식사와 술 등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향응수수가 직무와의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고,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뇌물수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2009년에는 외국 국적 선사의 선박운항허가와 관련해 8000만 원을 수수한 공무원에 대해 대법원은 직무관련성이 없어 뇌물수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8. 한국 공직사회 청렴도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의 공직사회, 정치권 청렴도 평가에서 전체 176개국 중 45위에 그쳤다. 싱가포르는 공무원이 뇌물을 받을 뜻이 있었던 것만 드러나도 공직에서 영원히 추방한다.

 

반면 파면, 해임 등 행정법적 징계벌을 강화하고 엄격히 적용해도 충분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법학자들 가운데는 청렴의 도를 확립하기 위해 형법을 전진 배치하려는 시도는 정책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는 이도 적지 않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 국가형벌권을 최소한, 최후수단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자 한다. 그러나 징계벌 강화로는 공무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둘 다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최고 5배 과태료 처분이 내려지고 해임·파면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예방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9. 선진국선 어떻게 하나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일찍이 별도의 이해충돌 방지 법률로 공직자의 이해관계를 엄격히 관리해 오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도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뇌물 및 이해충돌 방지법에서 수뢰죄와 별도로 불법사례금 수수금지연방정부 외로부터의 보수수령금지를 통해 직무관련성 또는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 공직자의 금품수수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독일은 일찍부터 형법개정을 통해 기존의 수뢰죄와는 별개로 단순한 이익의 수수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호주도 형법 개정을 통해 뇌물죄와 별도로 공직자에게 특정행위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청탁과 금품과의 대가성요건을 완화한 부정이득죄를 신설했다.

 

10. ‘김영란법향후 운명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을 조속히 제정하는 등 부정부패 해소 대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조속한 김영란법제정을 지시함에 따라 정부는 이달 안으로 법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현재 이 법안은 법제처에서 심사 중이며, 오는 26일 차관회의와 30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의 수정안과는 달리 민주당은 김영란법의 원안 취지를 살린 의원 입법안을 발의한 상태여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문화일보 방승배 · 이재동 기자 / 게재 일자 : 201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