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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10人 릴레이 탐구 ⑧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풍월 사선암 2013. 7. 13. 08:34

黨政靑 조율사청와대와 수시로 통화하는 실세 원내대표

 

['파워 10' 릴레이 탐구]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줄서서 기다리는 장관·의원들 / 그의 사무실 옆방은 '사랑방', 만나려는 사람들로 늘 북새통

-일부선 "청와대 거수기" / 당내 비판적 목소리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평가도

 

새누리당 최경환(崔炅煥·58)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아침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날 감사원의 4대강 감사 결과 발표를 두고 이정현 홍보수석이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말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최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4대강 문제의 중심에 서지 말라. 4대강 문제는 우리가 처리할 테니 청와대는 뒤로 물러서 달라"고 했다. 이 전화 이후 청와대에선 4대강 문제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당내에 '4대강 사업 진상 조사'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黨政靑 조율사냐" "청와대 거수기냐"

 

최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허 실장과 다시 통화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대통령에 대한 막말에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최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도 자주 통화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최 원내대표 취임 이후 당··(黨政靑) 의견 교환이 원활해졌다"고 말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2일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귀태발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게 최 원내대표에겐 짐이기도 하다. 지난 5월 최 원내대표가 당내 경선에 출마하자 비주류(非主流)에선 "청와대 거수기 노릇만 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 원내대표는 압승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불과 8표 차였다. 최 원내대표는 "측근이기 때문에 쓴소리를 잘할 수 있다"고 했지만 별로 먹혀들지 않은 것이다. 실제 당 일각에선 최 원내대표가 국정원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문제에 대해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비판적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최 원내대표는 대야(對野) 관계에선 '성과'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당시 국정원 국정조사에 대해 여권(與圈)의 기류는 부정적이었고, 남재준 국정원장은 "세계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 국정조사를 받느냐"며 사퇴 의사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 원내대표는 "국정조사를 거부하면 국회가 파행된다"며 국정조사를 수용했다.

 

그는 "국정조사에 합의함으로써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문제로 여야가 부닥친 와중에서도 6월 국회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 등 경제 민주화 법안, ICT(정보통신기술) 특별 법안 등 민생 법안을 대부분 처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원내대표의 협상 파트너인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관료 출신이지만 협상할 때는 (최 원내대표가) ()이 굵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에선 "최 원내대표가 국회 파행을 모면하기 위해 실행 의지도 없는 국정조사에 일단 합의한 뒤 다시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다"는 비판도 나온다.

 

줄 서서 기다리는 장관·의원들

 

최 원내대표가 지난달 11"금융권이 중소기업의 담보대출 금리를 대기업보다 높게 책정해 갑()으로서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하자, 금융감독원은 이틀 뒤 "불합리한 금리 차별을 시정하도록 지도하겠다"고 했다. 최 원내대표 한마디에 15만 중소기업의 담보대출 금리가 평균 0.26%포인트 인하돼 연간 이자 부담 1419억원 경감 효과를 보게 됐다. 최 원내대표는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때에는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용역 투입으로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라고 했다.

 

원내대표 당선 직후 그의 사무실에는 만나려는 장관과 의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사무실 옆방은 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장관과 의원들이 어색하게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랑방'이 돼버렸다.

 

MB 정부 장관 하며 세종시 수정안 반대

 

그의 부친은 최 원내대표에게 농부가 되라며 공부보다는 일을 더 시켰다. 그가 대구가 아닌 경산에서 중학교를 다닌 것도 아버지 뜻이었다. 여기서 벗어나려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최 원내대표는 연세대에 다니던 1978년 행정고시(22)에 합격,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했다. 미국 연수를 갔다가 2년 휴직을 하고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다. 최 원내대표에 대해 여당 내에선 "외모나 말투로 보면 누가 미국 박사라고 생각하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1999년부터 2004년 정계 입문 전까지는 한국경제신문에서 일했다. IMF 사태로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 공무원들이 환란 주범으로 몰리는 것을 보고 관료 생활을 그만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초선이던 최 원내대표에게 캠프 종합상황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최 원내대표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때 (저를) 눈여겨보신 것 같다. 다른 인연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하고 나서 반대 진영에 있던 최 원내대표를 인수위에 부르고 2009년에는 지식경제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최 원내대표는 이 전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할 때 현직 장관 신분으로 수정안을 반대했다. 두 대통령에게 총애를 받는 이유를 묻자 그는 "나는 실력보다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우상 기자 : 2013.07.13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