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역사,인물

파워 10人 릴레이 탐구 ⑥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풍월 사선암 2013. 6. 29. 07:01

물밑 조율로 국정원 國調 이끌어"물에 물 탄 성격" 비판도

 

['파워 10릴레이 탐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팔단

비판속 국회선진화법 강행정부조직 개편땐 청와대 설득

-자기 색깔 안 드러내는 '각시탈'

대통령과 가장 많이 통화권한 적지만 長壽 대표 될 듯

 

"그분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사람이죠."(민주당 재선 의원)

 

"안 움직이는 듯이 움직이면서 물밑에서 모든 현안을 조율하는 분입니다."(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다. 황 대표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에이 뭐, 그런 게 어디 있어"라며 특유의 '각시탈 웃음'으로 받아넘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28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NLL 수호 여야 공동선언을 하자고 민주당에 제안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자기 색깔 안 드러내

 

황 대표는 웬만해선 어느 한쪽의 정치적 주장에 자신의 체중을 싣지 않는다. 28일 기자회견도 그랬다. 이날 오전 기자단에게 '긴급 회견'이 공지됐다. 여야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과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의혹 논란으로 치열하게 맞붙은 때라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TV 생중계까지 된 회견에서 황 대표가 한 말은 "더 이상 정쟁은 중단하고 민생 정치로 돌아가자. 우리 영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담는 여야 공동선언문을 만들어 국민 앞에 상신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보고 일부 강경파 당직자 사이에선 "아니, 이 와중에 이 말을 하려고"라는 소리가 나왔다.

 

지난 4·24 재보선을 앞두고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공천 여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였다. 황 대표는 당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면 "맞아요. 이거(불공천) 하면 문제 생길 수 있어요"라고 했고, 찬성 의견이 나올 땐 "그래요, 대선 때 우리 공약이었으니까 안 할 수 없긴 한데"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희멀건 거 아니냐" "주장이 분명치 않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러나 황 대표의 이런 스타일에는 중도(中道)를 지향하려는 정치철학이 깔렸다.

 

욕먹으면서도 국회선진화법 추진

 

황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 국회선진화법 제정을 주도했다. 여권 내 반대가 심했다. 지금도 "다수당이 됐는데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평생 여당 할 거냐""국회는 타협과 대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선 안 된다는 그의 소신은 이번 국정원 국정조사 논란 과정에도 작용했다.

 

원내대표단에서 국정조사 수용을 놓고 야당과 강() 대 강()으로 맞섰던 지난 주말, 그는 최경환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정조사 수용하는 쪽으로 생각해 보시죠"라고 했다. 이어 청와대에도 전화를 걸었다. "국조는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작업'이 통했는지 며칠 뒤 여권(與圈)은 국조를 수용했다.

 

그는 평소에는 부드럽기만 하지만 물밑 조율 때는 양 극단의 당사자들을 집요하게 끌어들인다. 새 정부 출범 후 국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이 진행되던 올 3, 황 대표는 저녁 늦게 청와대를 찾아갔다. 청와대의 원안(原案) 고수 입장이 너무 강해 협상에 진척이 없을 때였다. 청와대부터 먼저 설득해야 한다고 여긴 황 대표가 말 그대로 '쳐들어간' 것이다. 며칠 뒤 청와대는 야당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절충안에 합의했다.

 

대통령과 자주 통화하는 '실세'

 

최경환 원내대표와 홍문종 사무총장 등 원조 친박들이 주요 당직을 접수하면서 "황 대표는 힘이 떨어졌다"는 말이 나왔다. 새누리당 당헌·당규가 대표의 권한을 크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권한이 약한 황 대표와 동렬(同列)로 엮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민주당 고위 당직자)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인수위 시절부터 현재까지 박 대통령과 가장 많이 통화를 하는 여권 '실세'. 비서진을 통해 서로 통화할 시간을 정한 뒤 중간 연결자 없이 직접 두 사람이 전화를 주고받는 식이다. 박 대통령과의 월례 회동도 청와대 참모들은 "사진 찍기용"이라며 반대했지만, 그는 "사진 찍기용이 되더라도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관철했다.

 

5()인 황 대표는 지난 1996년 총선 때 이회창 신한국당 선대위원장을 도와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는 "'이회창 대통령'을 만들고 다시 법조계나 법학교수로 갈 생각이었는데, 자꾸 지연되면서 우연히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작년 5월 당 대표에 선출될 때도 '장수(長壽) 대표'가 되리란 전망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히 두텁고, 황 대표 특유의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팔단) 정치술까지 더해지면서 '차기 국회의장' '차기 국무총리'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황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부인은 2006년 별세했고, 자녀들은 독립했다. 빈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인지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歸家)11시쯤 잠자리에 든다. 아침엔 새벽 4시쯤 일어난 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때 "황 대표가 선을 본다더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황 대표는 아직도 사별한 부인의 휴대전화와 그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황 대표는 "아내의 지인들이 여전히 이 전화로 연락을 해서"라고 설명하지만, 주변에선 "부인을 그리워하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김봉기 기자 / 입력 : 2013.06.29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