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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10人 릴레이 탐구 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풍월 사선암 2013. 6. 22. 07:52

"내가 책임진다, 南北접촉(지난 10일 새벽 南北 판문점 실무접촉) 끝내라"

재량권 가진 안보사령탑

 

['파워 10' 릴레이 탐구]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대통령 對面보고 가장 많은 참모 - 새벽 조치, 대통령에 보고

신임 바탕한 그의 위상 보여줘야간엔 청와대 20분 거리 대기

 

일부선 "매파·전문가" 비난 - "攻守구분 아는 올빼미파"

조직·인사개입 구설 돌기도私席"국회의원 때가 편해"

"내가 책임질 테니 각자 발표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하라."

 

지난 10일 새벽, 남북이 판문점 실무 접촉에서 수석 대표의 격()과 의제를 놓고 17시간째 팽팽히 맞서고 있을 때였다. 청와대 벙커(위기관리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던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이런 지침을 내렸다. 김 실장이 이른 아침 실무 접촉 결과를 보고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상대가 있는데 어쩔 수 없지요"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대면 보고 가장 많은 참모

 

김 실장은 평소 "모든 걸 대통령 결심으로만 할 순 없다. 참모도 재량권 안에서 선()조치 후()보고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안경테를 입으로 지그시 물고 있다.

 

그는 새 정부 출범 후 한동안 비서와 함께 청와대 인근 숙소에서 지냈다. "대통령에게 야간에도 15~20분 안에 보고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김 실장은 지난달 2490일 만에 집으로 퇴근하면서 비서관들에게 "그래도 일주일에 2~3일은 청와대 근처 숙소에서 자겠다. 비서관들도 1명씩 교대로 집무실에서 자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 대면(對面) 보고가 가장 많은 참모로 알려졌다. 퇴근하는 박 대통령과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밤에도 관저로 찾아간다.

 

그는 원래 친박(親朴)이 아니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으니 굳이 따지자면 친이(親李)로 출발한 셈이다. 그에 앞서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런 그에게 2008년부터 이따금 연락해 현안에 대해 물었다. 친박 인사들은 "당시 김 의원이 탁월한 브리핑 능력으로 박 후보의 호감을 샀다"고 말했다.

 

2011년 봄 박 대통령은 김 실장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 실장은 대선 캠프에서 국방 공약을 총괄했으며, '안보와 전력확충 상황에 따라 군 복무기간을 단축한다'는 공약은 그가 추가시킨 것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 때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신설이 확정되자 일찌감치 "김장수를 염두에 둔 자리"란 말이 나왔다.

 

"나는 매파 아닌 올빼미 파"

 

김 실장은 외교·안보 라인에서 '매파'로 알려졌다. 작전 관련 주요 군 보직을 거쳐 노무현 정부 때 국방장관까지 지냈다. 그는 요즘 국방뿐만 아니라 통일·외교를 총괄하고 있다. 김 실장은 남북 회담이 재개되면 북측을 상대로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내부 회의에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응어리진 과거를 정리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에선 "김 실장이 결과적으로 남북 간 대화 국면을 틀어막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선 "군 출신이 통일·외교까지 총괄하는 것이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부합할 수 있는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왔다. 통일부 등 정부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불만이 감지된다. "애당초 장관급 회담을 제의한 것이라든지, 사상 초유의 2원 발표문은 비()전문가적 발상"이란 것이다.

 

김 실장도 이런 지적을 의식하는 듯하다. 요즘 그는 주변에 "나를 올빼미 파()라 불러달라"고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이 올빼미처럼 기다릴 때와 공격할 때를 구분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1987년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에게 밀려 대령 진급에서 한 차례 밀렸다. 그런 그가 안보실장에 임명되자 "사조직인 나눔회의 멤버"라는 말이 다시 돌았다. '나눔회' 얘기는 2004년쯤 군내에서 나온 적이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등 김 실장과 친한 군 간부들이 멤버로 거론됐다. 김 실장 측은 "당시에도 실체가 없는 걸로 유야무야됐다"고 했다.

 

'모 사령관 인사를 놓고 남재준 국정원장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김 실장이 민 사람이 됐다'는 군 인사 개입설도 돌았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김행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거론된 인사 대상자와는 개인적 친분도 없고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과 남 원장 간에 정보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고픈 말 하는 국회의원 시절이 좋았다"

 

김 실장의 별명은 '꼿꼿장수'. 20072차 남북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허리를 굽히지 않아 붙은 이름이다. '녹학(綠鶴)'이란 별명도 있는데 '군복(녹색) 입은 학'이란 뜻이다.

 

하루 한 갑 반을 피우는 애연가로, '벙커' 밖으로 나가 한 번에 세 개비 이상씩 피운다. 피아노 실력은 찬송가 반주를 하는 수준이다. 즐기던 골프는 작년 10월 중순 이후 끊었다. 사단장 시절엔 손자병법을 외우기도 했다. 신출귀몰한 사막전으로 유명한 로멜 장군이 쓴 '보병전술'도 그의 책꽂이에 꽂혀 있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졸업했다. 11녀를 둔 부인 박효숙씨를 남들 앞에서 "우리 식구"라고 부른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국방장관과 국회의원, 국가안보실장 중에서 어느 자리가 제일 좋은가"라는 질문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국회의원 때가 좋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입력 : 2013.06.22 03:12 / 최재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