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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풍월 사선암 2013. 6. 27. 08:18

히말킹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시간·경비 부담 많지만 매력적

 

히말킹(히말라야 트레킹)’은 중독성이 강하다. 한 번이라도 히말킹을 경험하고 나면 연속 출정을 다짐하게 된다. 히말라야의 매력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는 베이스캠프(BC) 14를 목표로 매년 네팔 여행에 나서는 이들도 많다. 처음 네팔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이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 푼힐(3210m) 코스다. 23일 정도의 일정으로 히말라야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푼힐 전망대에서 8000m가 넘는 고봉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은 가슴에 히말라야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이틀간 계속 오르막이어서 고소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푼힐에서의 히말라야를 접한 사람들 대부분은 안나푸르나나 에베레스트 도전(?)을 꿈꾸게 된다. 물론 베이스 캠프까지의 트레킹이다.

 

안나푸르나 일주코스(5416m)

안나푸르나 산군의 외곽을 도는 일주코스는 풍요의 여신이라는 이름처럼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의 여왕이라 불릴 만하다. ‘맛보기정도인 푼힐 코스나 1주일여의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 트레킹으로 히말라야에 매료된 사람들이 다시 일정을 넉넉히 잡아 도전하는 코스다. 계절에 따라 히말라야의 풍경과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여기에 체력 테스트는 덤이다. 최난도 코스는 5416m의 쏘롱라를 넘어 묵티나트로 내려서는 89시간의 길. 이 구간에서는 고봉에 도전하는 전문 산악인들과 맞먹는 체력적, 정신적 한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서쪽 사면의 경사가 심해 보통 동쪽에서 올라 서쪽으로 넘어가는 코스를 택한다. 여기서는 고도에 따라 아열대, 온대, 한대로 변화하는 기후와 다양한 식생을 경험할 수 있다. 단 한겨울에는 눈 때문에 쏘롱라가 막혀 일주가 불가능하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545m)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베이스캠프인 만큼 베이스캠프 가운데서도 제일 높고 트레킹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이름 값을 한다. 반면 히말라야의 진정한 매력을 맛보고 히말킹자격증(?)을 따려면 필수 코스. 히말킹의 성수기인 가을철(1012월 중순)에 쿰부히말 지역을 찾으면 휴일날 북한산 백운대나 도봉산 Y계곡을 오를 때처럼 체증산행을 감내해야 할 정도다. 시간과 경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고 난도도 높다. 특히 고도 적응을 위해 일정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로체, 마칼루 등의 8000m급 고봉들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트레킹 중에 마주하는 광활한 야생의 세계가 히말라야의 또 다른 매력으로 가슴을 후벼 판다.

 

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하루에 1000m등정? 할만하네!’그 생각은 착각이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

 

엄홍길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를 찾은 일행들이 지난 222일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로 오르는 설원지대를 걷고 있다. 정면으로 안나푸르나 사우스(7219m)가 보인다.

 

드디어 엄홍길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를 오르게(?) 됐다. 물론 엄 대장처럼 8000m급 고봉 등정이 아닌 베이스캠프 트레킹이다. 그 가운데서도 트레킹 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리는 안나푸르나였다. 엄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산행, 즉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계획하게 된 것은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에 네번째로 건립한 안나푸르나 초입 마을의 비레탄티 휴먼스쿨 준공식 때문이었다. 네팔 북쪽 카스키 지역 비레탄티 마을은 히말라야를 찾는 산악인 외에는 찾는 이가 드문 오지다. 이곳에 지난해 225일 기공식을 갖고 첫 삽을 뜬지 딱 1년 만에 연면적 240.14, 건축면적 374.78의 복층구조로 교실 8실과 교무실 1, 도서실, 위생화장실 등을 갖춘 현대식 배움터를 만들었다. ‘비레탄티 휴먼스쿨은 엄홍길휴먼재단 대구·경북지부 회원들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산아웃도어 업체인 밀레의 후원으로 실현됐다.

 

지난 219일 현지에서 진행된 행사에는 엄홍길휴먼재단의 이재후 이사장을 비롯,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 강북구의 박겸수 구청장과 강북구 의사협회의 봉사단이 참석했다. 네팔의 휴먼스쿨 건립 프로젝트는 엄홍길 대장이 완등을 도운 현지 세르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함과 동시에 네팔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됐다.

 

비레탄티 휴먼스쿨의 건립 행사와 이를 축하하기 위해 네팔행을 자처(?)한 사람들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단을 꾸렸다. ABC 트레킹은 비레탄티 휴먼스쿨 준공식 행사가 끝난 19일 오후부터 56일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해발 4130에 위치한 ABC는 수려한 풍광과 오르기 어렵지 않은 코스 덕분에 전 세계 트레킹 마니아들에게 성지로 꼽힌다.

 

안나푸르나는 인류가 오른 최초의 8000m급 봉우리다. 그 봉우리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ABC 트레킹은 다른 지역(에베레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난도가 그리 높지 않고 4130m까지의 산행이기에 고산병의 위험도 덜하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난 219일은 마침 네팔의 민주의 날인 관계로 관련 기관과 상점들이 총파업을 하고 있었다. 포카라에서 비레탄티를 향하는 길은 관광버스만이 통행이 가능했다. 검문소 두 곳을 통과하는 동안 한국에서 미리 발급받은 입산 허가서를 보여주고 시누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로 이동 중 엄 대장의 히말라야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안나푸르나는 나에게 가장 혹독하고 뼈아픈 기억을 남겨 준 곳이죠. 네 번 실패하고 다섯 번째 등정에 성공한 산입니다. 이 산을 오르면서 세 명의 동료를 잃었고, 나 역시 죽음의 고비를 넘어 겨우 살아올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라고 45기의 안나푸르나 등정기를 회상했다. 그가 안나푸르나와 처음 만난 것은 1989년 겨울이었다고 한다. 바로 전해에 에베레스트 등정도 성공했고, 이후 네팔에서 빌라 에베레스트라는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현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터라 쉽사리 안나푸르나는 쉽게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에서 온 원정대를 이끌고 가이드를 자청해 안나푸르나 등정에 나섰다고 한다.

 

그는 적어도 베이스캠프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나는 등정 가능성을 100%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등반에 나섰을 때 나는 그러한 기대와 확신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한과 모래바람,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하루종일 몰아치는 흙먼지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수시로 닥쳐오는 눈사태와 몇 시간이고 불어대는 강풍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켰어요. 흙먼지와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캠프1 지점으로 올리면서까지 의욕을 불태웠지만 결국 7800m 부근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어요. 실패의 원인은 무엇보다 안나푸르나에 대한 정보부족이었죠라면서 트레킹 역시 사전 정보와 훈련, 그리고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레킹 첫째날에는 해발 1100m의 비레탄티에서 버스와 지프를 이용, 뉴 브리지(1340m)까지 가는 것이 목표다. 56일의 트레킹 일정표를 봤을 때는 하루에 1000m씩 고도를 높이는 정도였기에 할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 대장이 처음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을 때 생각했다는 북한산을 10(800m×10) 오르면 되겠지라는 것과 똑같은 셈법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셈법이 오만과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780m의 지누단나까지 목표로 한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안나푸르나를 비롯한 8000m 이상 14개 봉우리를 품고 있는 히말라야는 산이 아니라 산맥이다. 정상이나 목적지를 향해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반복해야 한다. 목적지를 향해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면 1000m 정도 올라가는 것은 34시간 이내에 마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레킹 도중 내리막길로 3040분 정도 편하게 걷다 보면 내려온 그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

 

엄 대장과 함께한 ABC 트레킹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해발 3230m, 바로 눈앞서 수많은 별이 발 아래로 쏟아졌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

 

◀지난 2월 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에 나선 엄홍길 휴먼재단 일행이 데우랄리(3230m)-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3700m) 구간의 계곡을 걷고 있다. 왼편으로는 지난해 일어난 눈사태의 흔적이 남아 있고, 멀리 안나푸르나 지붕 가운데 하나인 타루프출리(5663m)가 눈에 들어온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나마스테로 시작해 나마스테로 끝난다. 카트만두 공항에서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4130m)에 오를 때까지 오고 가는 이들이 손을 모아 나마스테하고 인사한다. ‘나마스테당신께 귀의한다는 뜻의 인도와 네팔, 티베트인들의 인사말이다. 엄홍길(53)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등정을 통해 나마스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 특히 히말라야는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귀의하는 것입니다라면서 나마스테를 설명했다.

 

귀의한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으로 그만큼 그를 이해한다는 것이죠. 그런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산도 비로소 길을 연다는 것을 나는 오랜 산행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귀의는 겸허의 다른 이름이죠.” 그는 또 산은 오르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는 만큼 정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가 내게 정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 20년 세월이 걸렸죠.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통해 깨달은 나마스테의 진정한 의미죠.”

 

히말라야 트레킹, 특히 ABC 트레킹은 무작정 걷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해발 3000m 정도까지는 마을이 있어 신과 인간 세계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맞닿은 다락논밭에서 일하는 부부, ‘나마스테하며 두 손을 내미는 아이들, 낡은 당구대에 몰려 있는 청년들의 모습까지.

 

56일의 일정으로 진행될 ABC 트레킹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둘째날 지누(1750m)까지의 일정을 소화한 후 롯지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포터들이 모여 웅성거린다. 포터들을 지휘하는 사다는 “ABC에 오르기 전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3700m)까지는 갈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포터들은 하산하는 동료들로부터 “ABCMBC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려 위험하다는 기상 정보를 전해 들었던 것. 그는 포터들 가운데는 슬리퍼를 신고 온 아이들도 있고, 어른들도 장비(아이젠)가 없다면서 동행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빡빡한 일정과 짐의 무게를 거론하며 임금인상까지 요구했다.

 

엄 대장은 포터들의 안전도 히말라야에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젭니다. 산행, 트레킹의 첫 번째는 일행의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 산행은 날씨에 따라 일정을 변경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라면서 새로운 ABC 트레킹 일정을 제시했다.

 

당초 일정은 사흘째 뱀부(2310m)까지, 나흘째 MBC,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ABC를 공략(?)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흘째 포터들이 장비 없이 올라갈 수 있는 데우랄리(3150m)까지 치고 올라 나흘째는 포터 없이 단독으로 MBC를 거쳐 ABC에 도착, 다시 데우랄리로 돌아오기로 한 것.

 

문제는 급격한 고도 변화로 인한 고소증이다. 하루 500m 이상 높이지 않으려던 고도차가 셋째날 1400m, 넷째날에는 1000m를 오르락 거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째날에는 새벽녘에 롯지를 출발해 오전, 오후 7시간여를 오르고 내려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사흘째 운행(등산)에서 우려했던 고소증을 호소하는 대원이 발생했다.

 

그러나 고소 환자는 의외로 젊은 대원들이었다. 이번 ABC 트레킹에는 엄 대장을 비롯해 17명의 대원(?)이 참가했는데 탤런트 정동환(64) 씨가 최고령 선수(?)였고, 강북구 청소년 희망원정대에서 선발된 이효정(16) 양과 김효광(16) 군이 최연소였다. 여기에 정동환 씨의 막내아들 우철(19) 씨도 10대 청소년이었다.

 

이들 가운데 효광 군과 우철 씨가 2335m의 뱀부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고소증이 오기 시작했다. 고소증의 시작은 밥맛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배가 고픈데도 음식이 먹기 싫어지면 고소의 전단계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스꺼움, 두통, 설사, 탈진으로 이어진다.

 

별다른 약이 없다. 빨리 하산하는 것이 제일 좋은 처방이다. 그러나 이들 젊은 친구들은 고소증을 겪으면서도 결국은 ABC까지 완주했다. 엄 대장의 도전 정신을 체험하겠다면서.

 

정작 걱정했던 5060대 대원들의 멀쩡함에 대해 엄 대장은 나도 젊었을 때는 여러차례 고소증을 겪기도 했는데 지금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서 아마도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와 몸이 굳어져 반응에 둔한 것 같다. 그러니까 순수한 어린 친구들에게만 고소증이 오는 것 아니겠냐는 농담으로 일행을 웃겼다.

 

일정 변경으로 서둘러 1750m에서 3150m까지 하루에 1400m를 치고 올라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데우랄리 롯지에서의 히말라야의 밤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발아래로 쏟아진다. 별을 바로 눈앞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아침에는 마차푸차레(6993m)가 눈앞에 자태를 들어낸다. 끝이 뾰족한 역삼각형 모양의 마차푸차레는 그 모습이 마치 물속에서 솟아오른 물고기의 꼬리 같이 생겼다 해서 물고기의 꼬리(fish tail)’라고 불린다.

 

이 산은 힌두교도들이 그들의 신 시바와 부인 파르바티의 신혼 여행지라며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다. 그래서 네팔 정부가 등반 허가를 내주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아직 미등정 봉우리로 남아 있다.

 

포터들은 저 산에는 신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오르지 못하고, 설사 올랐다 해도 살아서 내려올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이미 외국의 등반대가 몰래 올랐는데 쉬쉬한다는 것. 트레킹 나흘째, 눈앞에 마차푸차레가 보이면서 안나푸르나가 더 가까워졌다.

 

고지가 눈앞인데 가도가도 끝없는 雪原해냈다왈칵 눈물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지난 2월 말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를 찾은 엄홍길(오른쪽) 대장이 201110월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코리안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을 기리는 추모탑에 고개 숙여 묵념하고 있다. 추모탑 동판에는 천상에서도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을 그대들이여,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 이 곳에서 산이 되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드디어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4130m)에 도착했다. 온통 순백의 세상이다. 순간 엄홍길 대장이 카메라를 들이민 기자에게 호통을 친다. “선글라스를 어디다 뒀어요.” “정신차려요.” 순간순간 변하는 ABC의 날씨 때문에 선글라스를 벗은 상태에서 황급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기자를 향해 큰일난다며 화(?)를 낸다. 그랬다. 5분여 동안을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 작업(?)을 하고 난 뒤 선글라스를 찾아 쓰고 눈을 껌벅여 봤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엄 대장은 심하면 설맹이 될 수 있다며 안나푸르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50년 프랑스원정대의 모리스 에르조그와 루이스 라슈날. 안나푸르나는 이들에게 영광과 함께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안나푸르나(8091m)1950년 프랑스의 모리스 에르조그 원정대에 첫 등정을 허락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안나푸르나는 이들에게 첫 등정이라는 영예와 함께 엄청난 희생을 안겨 줬다. 에르조그는 하산길에 걸린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잘랐고, 캠프 4에서 이들 정상 공격조를 기다리던 대원 가운데 두 명은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채 장시간 등반한 탓에 눈에 반사된 강한 햇빛으로 실명했다. 안나푸르나는 엄 대장에게도 네 번의 실패와 함께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동료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엄 대장은 “1998년 봄 안나푸르나에 네 번째 도전할 때 화이트 아웃에 걸린 적이 있다며 험난했던 안나푸르나 도전사 일부를 소개했다.

 

당시 캠프 2로 오르는 구간에 로프를 설치하고 전진캠프로 내려오는 순간 위쪽 어디에선가 눈사태가 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눈을 멀쩡히 뜨고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죠. 두 시간을 헤맨 끝에 화이트 아웃이 사라진 뒤 살펴보니 우리가 있는 곳에서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전진캠프가 있었어요. 절벽이 아닌 설원이었는데도 자칫하면 죽을 뻔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안나푸르나는 그런 곳입니다.”

 

ABC에서 보이는 건 오직 눈 쌓인 설산뿐이다. 왼쪽부터 히운출리(6441m), 안나푸르나사우스(7219m), 바라하시카르(7647m), 안나푸르나 그리고 계속해서 6000m급의 캉사르캉, 타르케캉, 신구출리, 타르푸출리가 도열하듯 서있다. 그 오른쪽 너머로 안나푸르나 (7555m), 간다르바출리(6248m)와 마차푸차레(6997m)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안개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ABC의 날씨는 수시로 바뀐다. 오후에는 더욱 그렇다. 산 아래서 짙은 안개가 온 지역을 휩싸고 지나는가 싶으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이 내린다. 그리고 언제 그랬느냐 싶게 따가운(?) 햇살이 내리 쪼인다. 특히 한겨울인 12월이 그렇다.

 

56일 일정상 라우렐리에서 마차푸차레베이스캠프(MBC)를 거쳐 곧바로 ABC에 오르기로 했기에 하루에 9시간여를 운행(등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설원인 MBC-ABC 구간이 정말 힘에 겨웠다. 3일간의 강행군 탓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눈 앞에 ABC가 보이는 데도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엄 대장은 8000m급 고봉을 오를 때 어떤 곳에서는 한 걸음을 옮기는 데 1, 어느 때는 그보다 더 긴 시간에 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눈길 산행을 회고했다. 겨우내 내린 눈 때문에 발은 푹푹 빠지기 일쑤였고, 4000에 접어들면서 공기가 희박한 탓에 평지를 걷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ABC 트레킹에서는 MBC-ABC 구간이 딱 그랬다.

 

이 구간에서는 왜 내가 여기에 왔을까라는 생각을 몇번이고 되뇌었다. 그러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기계처럼 한걸음 한걸음 옮겼다. ‘언젠가는 도착하겠지라고 최면을 걸면서. 그러나 ABC에 도착해 안나푸르나를 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다. ‘해냈다희열이었다. 옆에 선 엄 대장이 그래서 인간은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겁니다라며 기자의 ABC 도착을 축하해 줬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이틀간의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를 때의 오르락내리락을 또 해야 한다. 라우렐리로 돌아오는 길에는 밤톨만 한 우박 세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촘롱의 끝없는 돌계단은 ABC를 다시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누군가는 촘롱 지역의 계단이 3300여 개라고 귀띔했다. 그래서 하산길에 계곡의 출렁다리에서부터 속으로 세어 보니 로지(lodge)까지 대략 1200여 개가 됐다. 반대편 내리막길도 비슷한 상황이기에 정말 3000여 개는 넘는 것 같다.

 

촘롱의 로지에서는 오랜만에 현지식으로 회식을 하기도 했다. 히말라야의 밤을 만끽했다.

 

엄 대장은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올랐다는 결과가 아니라 오르는 과정입니다. 과정은 언제나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 힘든 과정을 즐겨야 합니다. 정상의 기쁨은 아주 잠시뿐입니다. 산은 나에게 바로 그런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수없이 불어 오는 자만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교만을 버리고 한걸음 한걸음씩 나를 올라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은 거죠라고 말했다.

 

그랬다. 히말라야 산행, 트레킹이 힘들기만 한 일이라면 그리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를 비롯한 히말라야에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정상에서만이 아닌 56일간 계속됐다. 포카라를 거쳐 카트만두 국제공항에 도착해서는 다음 트레킹 코스와 일정을 생각하느라 또 다른 설렘이다. 또한 큰 산을 하나 넘었을 때 생기는 뿌듯함도.

 

안나푸르나 = ·사진 박광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