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훈의 쓴소리 은퇴설계]
대기업 취직해도 20년 뒤에나 ‘본전’
자녀 사교육비 투자수익률은?
자식은 ‘정상재’인가. 경제학자들의 오랜 물음이다. 정상재란 소득이 증가할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재화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소득이 높아지면 쇠고기 수요가 늘고 돼지고기 수요가 줄어드는데, 이때 쇠고기는 정상재이고 돼지고기는 열등재에 해당한다.
자녀를 쇠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식재료와 동일선상에서 거론하는 경제학자들의 비인간적인 면모에 놀랄 수 있지만, 사실 우리도 일상적으로 자녀를 그런 수준에서 대하곤 한다. “결혼했나요?” “자녀는 있으신가요?” “몇 명인데요?” 하는 질문에는 상대방에 대한 경제력 테스트 의도가 숨어 있다. 특히 자녀가 몇 명이냐는 것은 경제력에 대한 간접적인 질문에 해당한다. “아들 둘에 딸 하나예요”란 대답에 거의 자동적으로 “부자시네요!”라고 반응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녀는 정상재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특기할 건 가계소득이 수십 년 전보다 분명 늘었음에도 출산율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잘 알 듯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부담해야 할 천문학적인 교육비 때문이다. 교육비는 우리 국민의 종족번식 욕구마저 힘없이 꺾어버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과학고 사교육비 月 수백만 원?
얼마 전 거래처 부장에게서 들은 얘기는 귀를 의심케 했다. 그 집 아이가 공부를 잘해 과학고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인사를 했다가 그의 남모를 걱정을 듣게 됐다. 아이의 교육비로 지출하는 돈이 한 달에 무려 몇 백만 원이란다. 국가가 운영하는 과학고는 공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소정의 기숙사비를 제외하면 학교에 내는 돈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금요일 저녁 학교에서 나오면 곧장 대치동으로 가 수학학원, 영어학원, 경시대회 준비를 위한 과학학원, 그리고 과학고 학생들만 모아 가르친다는 과학고 특별반까지 다닌다고 한다. 주말 내내 학원에 있으니 그 돈이 기백만 원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는 “자네도 자식 크면 장담 못해” 하며 너무 놀라지 말라는 눈치를 줬다. 과학고의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에 왕따 문제도 없고, 재학생 대부분이 명문대나 의대에 진학해 장래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탄탄해진다며 일장연설이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후 대비 용도로 마련한 연금이며 저축을 모조리 해지해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를 보며 요즘 유행하는 ‘에듀푸어(Edu Poor)’란 말이 떠올랐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가계적자에 시달리는 ‘에듀푸어’가 80만 가구가 넘는다고 한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에듀푸어 가장(家長)의 전형적 유형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중산층의 평균소득에 약간 못 미치는 40대 대졸자’라는 점이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종의 한(恨)을 자녀교육을 통해 풀고자 하고, 자녀에게 높은 ‘스펙’을 물려주는 것을 부모의 도리로 여기는 계층이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듯, 우리 민족의 높은 자녀 교육열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긴 하다.
문제는 이들의 노후다. 이제 ‘100세 시대’가 됐다. 버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돈을 많이 버는 시기에 저축하지 못하고 자녀 교육비로 몽땅 ‘탕진’하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다. 온갖 정성을 들여 자식에게 투자했지만 남는 게 하나도 없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노후 대책 없는 부모는 자녀에게 원망을 사는 세상이다. 부모가 이렇게나 희생했는데 설마 자녀가 모른 척하겠나 하는 생각은 위험천만하다.
사교육비는 왜 이렇게 비쌀까. 시장에선 단돈 500원도 깎을 수 있지만, 학원장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게 부모다. 심리게임에서 진 소비자는 가격결정 권한을 갖지 못한다. 회계사로 일하며 장사하는 분을 많이 만나는데,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들은 식당이나 제조업에 비해 수익성이 훨씬 좋은 것을 발견하곤 한다.
재미있는 건 중학생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들은 수입이 좋지 않지만, 고등학생을 가르치면 수입이 상당히 좋아진다는 점이다. 웬만한 대기업에 다니는 것보다 낫다. 학원강사 수입에도 수요와 공급 논리가 작용한 결과다. 중학교 강사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고, 고등학교 강사는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하지만 학원장의 수입은 그 반대다. 중학교 학원장 수입이 훨씬 좋다. 중요한 건 어찌 됐든 학부모가 지불하는 돈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학원비는 학원에서 정한 것이라기보다 학부모가 정해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학부모가 최대한 부담할 수 있는 돈. 그것이 학원비인 게 현실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교육비를 낮추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화장품 원가가 터무니없이 낮아도 비싼 화장품을 선호하는 것이 여성의 심리인 것처럼, 고액의 사교육을 시켜줘야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눈 뜨고 보면서도 학원과 강사들을 부자로 만들어준다. 우리의 소중한 노후를 포기하면서 말이다.
실제 자녀교육 투자수익률을 따져보자.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자녀 1명을 4년제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평균 3억 원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대기업에 취업한 자녀가 3억 원을 모으려면 몇 년이 걸릴까. 2012년 기준으로 대기업 신입사원의 평균연봉은 3459만 원, 중소기업은 2254만 원으로 1205만 원의 격차를 보인다. 대기업에 다니는 자녀가 정확하게 중소기업 연봉과의 격차만큼 돈을 모은다고 가정해도 약 25년(3억원÷1205만 원=24.89)이 걸린다. 물론 물가상승률도 감안해야 하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연봉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10년 이상 걸릴 것은 확실해 보인다.
혹자는 말한다. 자녀에게 교육비를 투자하지 않고 그 돈을 고스란히 모아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고, 훗날 성인이 된 자녀에게 가게 하나 차릴 수 있는 종자돈을 물려주는 부모를 자녀들이 더 감사히 여긴다고. 수억 원의 돈을 들여 좋은 스펙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짜 어떤 가치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일례를 들어보자. 초등학생 자녀의 사교육비로 매달 100만 원씩 6년간 지출할 계획인 학부모가 마음을 바꿔 학원을 끊고 그 돈을 연(年) 복리 5%의 적금을 붓는다고 가정해보자.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원리금은 8160만 원이 된다(표 참조). 이 돈을 역시 연 복리 5%인 예금에 계속 묶어놓았다가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 찾으면 1억3300만 원, 서른이 된 아이가 결혼하겠다고 할 때 찾으면 1억7800만 원이 된다. 자녀가 과학고에 다니는 3년 동안 매달 400만 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경우엔 같은 조건으로 아이가 대학 졸업할 때는 1억8400만 원, 서른 된 아이를 결혼시킬 때는 2억4500만 원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차라리 가게 낼 종자돈을…
시대가 변하고 있다. 내 주변의 전문직 종사자들을 아무리 살펴 봐도 투자수익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도, 로스쿨을 졸업해도 억대 연봉은커녕 취업하기도 만만치 않다. 의사, 약사도 날로 늘어 경쟁이 치열하고,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다.
꼭 전문직이어야 행복한가. 나는 ‘회계사라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직업적 만족도가 그리 높지 못하다. 그보다 글을 쓰거나 대중강연을 할 때 훨씬 더 행복하다. 대기업에 다녀야만 행복한가. 내 동생은 대기업에 다니진 않지만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적어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그런다.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자기 회사 앞에 자그마한 커피숍을 차린 사장님이라고.
원재훈
● 1977년생
●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 한국공인회계사, 미국공인회계사, 세무사
● 이촌회계법인 근무
● 저서 : ‘월급전쟁’ ‘법인세법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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