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어머니와 고등어 / 문경미

풍월 사선암 2013. 5. 9. 00:34

 

어머니와 고등어 / 문경미

 

시골장터만큼 삶의 향취가 은은하게 풍기는 곳도 드물다. 파릇한 봄나물이 손님을 부르는 장터엔 덤을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는 사람과 덜 주려는 사람들의 가벼운 실랑이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어쩌면 삶이란 눈앞에 놓인 작은 덤을 얻기 위해 서로 밀고 당기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해진 제 값어치 외에 무엇을 하나 더 얻어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각박한 세상이라고 입을 모으는 마당에 누군가에게 천연스레 덤을 요구할 수 있는 장터야말로 참으로 인심이 후하고 정이 넘치는 곳이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나선 노인 두 분이 국밥집 의자에 걸터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 그 앞을 지나는 한 노인에게 손짓하며 불콰해진 얼굴로 반색을 한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장을 보는 아낙들과 수업을 마치고 장터에 들른 여학생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술렁이는 분위기에 휩싸여 기분 좋게 걷다 보니, 생선을 늘어놓은 좌판 앞이다. 꽃게며 새우, 물 좋은 은색갈치와 조기 곁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등 푸른 고등어에 눈길이 닿는다.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내 유년의 삶 위에 언제나 덤을 얹어주시던 인정 많은 어머니... 밀려드는 그리움을 싸안듯 간 고등어 한 손을 샀다.

 

오일장이 서던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 손에 들려오던 간고등어 한 손.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잉걸불에 구워지던 고등어는 집안 가득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온 가족이 모여 앉은 저녁밥상머리에서 어머니는 살코기를 떼어 내 밥술에 얹어주셨다. 어릴 적에 잔병치레가 많은 탓에 애틋해서였을까? 언제나 내게 각별하신 어머니였다. 그런 당신이 드시던 것은 늘 구운 고등어의 머리였을 뿐, 언니나 내가 한두 차례 살코기를 떼어드릴라치면 손사래까지 치며 우리의 밥 위에 도로 얹어주곤 하셨다. 이유는어두육미,’ 생선은 머리부위가 가장 맛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살점을 물리는 어머니의 태도가 하도 완강하여서 생선살보다 머리부위가 더 맛있다는 당신의 말씀은 언제나 진실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 바람에 철부지 막내였던 나는 어머니가 드시는 고등어의 머리를 슬며시 넘겨다보기까지 했던 것이다.

 

몇 해 전에 들은 어떤 이야기가 생각난다. 갓 시집 온 며느리가 나들이를 나선 시어머니를 위해 도시락을 싼 이야기다. 그날따라 시어머니는 친구들에게 며느리 칭찬을 잔뜩 늘어놓으며 고부간의 정이 도타운 것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모두의 시선을 모은 건 단연 바로 그 며느리가 싸 준 도시락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도시락 뚜껑을 연 순간, 사람들의 기대는 단번에 무너져버렸다. 그 도시락 반찬통엔 구운 고등어의 머리만 소복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생뚱맞게 하필 왜 고등어 머리였냐고, 누구나 도시락을 열기 전에 가졌던 기대치 이상의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평소 시어머니가 구운 고등어 머리를 즐겨 드셨기 때문이란다. 이 이야기를 TV를 통해서 보던 나는 뚱딴지같은 철부지 며느리 이야기라며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어떤 울림이 긴 여운을 남겼다. 그 철없는 며느리의 모습은 지난날 어머니의 깊은 속내를 헤아리지 못한 내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자식들 챙기기 바빴던 어머니는 간혹 맛난 음식이 생기면, 배가 불러 먹을 생각이 없다거나, 싫어하는 음식이라 먹을 정이 없노라 둘러대셨다. 그런 당신이 드시는 것은 언제나 가족이 먹다 남긴 반찬과 식은 밥이었다. 때론 쉰밥을 버리기 아깝다며 찬물에 헹궈내고, 된장에 풋고추를 꾹꾹 찍어 먹으면서도 마치 산해진미를 드시듯 달게 드시던 어머니였다. 그 땐 미처 몰랐다.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 거친 음식마저 달게 드실 수 있었으며,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처럼 따스한 온기를 뿜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단 한 분 어머니뿐이라는 사실을...

 

세월이 흘러 철부지였던 내가 세 아이의 어미가 되고 보니 그 시절 나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컸던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입은 까닭에 배고픔도, 추위도 모르고 매양 봄인 듯 살아왔다. 걸핏하면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겠다며 말을 앞세우던 나를 보며, 주름진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던 어머니. 웃고 있는 당신의 눈동자에 물기가 반짝이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은데, 어머니는 이 세상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은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남들과의 인연도 그러한데 하물며 어머니와의 인연이 소중함이야 더 말해 무엇 할까. 뒤늦은 깨달음은 이처럼 오래도록 깊은 회한으로 남았다.

 

고스란히 세월 속에 묻힐 추억이 가슴을 파고드는 날, 가끔 고등어가 식탁에 오르는 날은 아이들에게 어머니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되풀이되는 외할머니와 고등어이야기에 질릴 만도 하련마는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듣는 척도 하고, 내 손을 슬며시 끌어가서는 제 볼에 부비기도 하며 어미인 내 마음의 보폭에 보조를 맞추곤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먹을거리가 풍성한 탓에 아쉬움을 모르는 요즘이고 보니, 고등어 한 마리에 얽힌 이야기는 이제 격세지감이 너무 큰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어머니가 고등어를 떼어주시던, 그 훈훈한 온기가 서린 밥상머리의 잔상殘像이 지금도 바로 눈앞의 풍경인 양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이 적엔 사랑을 먹고 자라고, 어른이 되면 추억을 먹고산다는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다. 나는 그리움을 꺼내듯, 시장에서 사온 고등어를 꺼내어 팬에 굽는다. 추억 속의 어머니도 부엌 아궁이 숯불에 고등어를 구우신다. 당신의 삶이 오늘 내가 가는 길을 비추는 한 점 불빛이란 걸 알고 계실까. 한 번도 딸의 철없음을 나무라지 않은 어머니는 함박꽃처럼 마냥 웃고만 계신다.

 

*약 력 :

- 2006년 문학저널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 20064월부터 20072월까지 청도신문에 수필 기고

- 동인지 <내 앞에 열린 아침 6><이렇게 좋은 날도 있어야지>등 발간

- <글밭 목우회> 회원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