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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외상장부(희망편) - 최불암

풍월 사선암 2013. 4. 16. 09:57

어머니의 외상장부(희망편) - 최불암

 

1950년 대 말이었습니다. 당시 문화예술의 거리였던 명동에서 어머니는 작은 선술집을 하셨습니다.

 

. 춥다,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선술집에 자주 들락거리며 용돈도 타고, 일하시는 어머니 옆에서 같이 있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선술집에는 당시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화가들이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배고픈 예술인이다 보니 술값 대신 시계를 풀어놓고 가거나 외상장부에 이름을 적고 가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외상값이 더 많은 장사였지만,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항상 친절했습니다.

 

아이구, 안녕하세요. 선생님.”

허허허 외상 손님을 이리 반갑게 맞아 주시니 미안합니다.”

 

외상 손님들은 늘 친절한 어머니에게 오히려 미안해했습니다.

그런 걱정 말고 자주 들르세요.”

 

그날도 용돈을 받으러 어머니 가게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막 가게 옆 골목을 지나려는 찰나, 한 낯익은 청년과 함께 있는 어머니를 보게 됐습니다.

 

얼른 챙겨 넣어요.”

   

어머니는 그 청년의 손에다가 무언가를 쥐어 주었습니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뭔데 저렇게 몰래 주시지?’

 

그날 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어머니, 아까 그 아저씨한테 뭘 주신 거예요?”

으응?? 아 아까……. 그건 그 청년이 술값 대신 놓고 간 시계란다.”

 

젊은 청년이 돈도 없이 술을 먹고 시계를 맡겼다고 하면 이러쿵저러쿵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걱정이 되셨다는 어머니. 그래서 인적 드문 골목으로 청년을 불러내 슬쩍 시계를 돌려주셨다는 겁니다.

 

! 그렇군요.”

 

엄마는 내심 놀라워하는 저를 보며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따뜻한 배려가 놀랍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그렇게 인자하신 어머니께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셨습니다.

 

흑흑흑,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요. 어머니.”

 

깊은 시름에 잠긴 나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슬픔을 달랬습니다.

 

그러던 중 외상 장부가 가득 담긴 낡은 궤짝을 하나 발견하게 됐습니다. 거기에는 그동안 못 받은 술값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세상에이 돈 다 받았으면 우리 집 부자 됐겠네.”

 

손님들의 대부분이 유명한 예술인들이었으니, 장부에 적힌 이름을 보고 술값을 받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장부를 샅샅이 훑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장부 속에는 이름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라? 이게 어느 나라 이름이래?”

술값 옆에는 이름 대신 별명이 써 있었던 것입니다.

 

안경, 키다리, 놀부, 짱구왜 이렇게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게 써 놓으셨을까.”

 

그 순간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한 청년에게 몰래 시계를 건네주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난해한 장부 속에 담긴 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낡은 장부 속에는 가난하고 대접 받지 못하던 예술인들의 자존심이, 그들의 고뇌를 이해해 준 어머니의 속 깊은 배려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 내가 안방극장을 통해 구수하고 정겨운 모습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보여준 그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