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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18번과 징크스

풍월 사선암 2013. 3. 26. 21:08

[천자 칼럼] 18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중략)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중에 18번이기 때문에.”

 

가수 강산에의 노래 라구요의 가사 일부다. 월남한 실향민 아버지가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부르던 18, 즉 애창곡이 눈물젖은 두만강이었다는 노래다. 그런데 애창곡을 왜 1, 10번도 아닌 18번이라고 부를까.

 

자주 부르는 노래가 18번이 된 것은 일본 의 전통가극 가부키(歌舞伎)에서 유래했다. 에도시대에 등장한 가부키의 원조 배우인 이치가와 단주로의 7대손이 가부키의 막간에 공연하는 풍자소극 중 재미있는 것을 18가지로 정리했다. 이를 교겐(狂言) 18이라고 부르는데, 각기 나무상자에 담아 후손에 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말로 18번은 주하치방이지만 상자를 뜻하는 오하코(おはこ)’로도 읽힌다. 뛰어난 재능을 가리킬 때 오하코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18번이 자주 부르는 노래, 자신있는 특기 등의 뜻으로 전용돼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지게 됐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선 대개 뛰어난 사람에게 18이란 숫자를 붙여준다. 중국의 무예 18은 검 활 창 등 18가지 무예를 가리키는데, 일본에 건너와선 전설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무예의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됐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서 18번은 에이스 투수에게만 부여되는 등번호다. 마쓰자카를 비롯해 다르빗슈, 이라부, 와쿠이 등 최상급 투수들의 등번호가 18번이었다.

 

반면 선동열은 해태타이거즈 입단 때 11번을 달고 싶었지만 대선배인 김성한의 등번호여서 대신 18번을 달아야 했다. 하지만 선동열이 국보급 투수로 성장하며 인기를 모으자 다른 팀들도 앞다퉈 에이스에게 18번을 달아줬다고 한다.

 

노래방에 가면 18번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번이 황성옛터’,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베사메무초였다는 것도 유명하다. 그만큼 18번은 우리 언어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지만 가급적 안 쓰는 게 좋다. 한국사람이 정종(일본술 브랜드) 한 잔 마시고 18번 불러보라고 외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단골 노래, 애창곡등으로 순화할 것을 권한다.

 

요즘 사회 유력인사 성접대 의혹이 일파만파인 가운데 ‘18이 새삼 화제다. 문제 동영상에 등장하는 중년남자가 부른 노래는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이었다고 한다. 이 노래가 엊그제 사표를 제출한 고위 공직자의 18번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진위 여부는 국과수의 정밀 분석으로 가려지겠지만 참으로 낯 뜨겁다. 아이들 볼까 두렵다.

 

오형규 논설위원

 

 

[천자칼럼] 징크스

 

징크스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마술이나 점에 사용되던 딱따구리의 라틴어 학명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고 주문(呪文)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도 전해진다.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불가사의하고 주술적인 것들과 연관된 단어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주로 불길한 전조나 징후를 뜻하는 말로 쓰여왔지만 좋은 일을 예고하는 조짐에도 징크스라는 표현은 종종 사용된다.

 

징크스가 가장 많은 동네는 스포츠다. 그중에서도 유독 프로야구에는 징크스가 넘친다.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전설적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후 2002년까지 82년간 단 한 차례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는 소위 밤비노의 저주가 대표적이다.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은 팀이 연승을 하는 중에는 면도를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홈런 쳤을 때 입었던 유니폼을 밤 사이 빨아 이튿날 다시 입는다. 투수들은 마운드에 오를 때 내야 라인을 밟지 않는다는 징크스도 있다.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신인이 다음 해에는 영 성적을 못 내는 소위 ‘2년차 징크스도 자주 인용된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자신의 징크스를 소개했다. 그는 많은 선수가 스케이트를 오른쪽부터 신어야 경기가 잘 풀린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도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또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때 몸을 풀러 링크에 들어갔더니 빙판에 피가 묻어 있었다며 피를 보면 운이 좋다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우승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미국 LPGA에서 활약 중인 프로골퍼 김인경 선수가 쇼트퍼팅 징크스에 또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KIA클래식 마지막날 18번홀에서 1거리의 파 퍼팅에 성공하지 못해 연장전을 허용했고 결국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김인경은 지난해 4월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 마지막 18번 홀에서 30파 퍼트를 실패, 연장전에서 패한 아픈 기억이 있다.

 

징크스가 과연 있는지는 논란이 분분하다. 골프처럼 멘탈이 중요한 스포츠에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어 보인다. 부정적 기억을 떠올리는 상황이 재연되면 극도로 긴장해 게임을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차만 하면 비가 온다는 식의 머피의 법칙처럼 징크스 역시 단순히 선택적 기억의 결과인 경우도 많다. “내가 중계방송만 보면 꼭 진다는 얘기가 그런 예다. 큰 기대를 하고 밤잠 설치며 봤는데 졌을 때는 아쉬움이 길게 남아 선택적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과 징크스는 깨지라고 존재한다는 말도 있다. 김인경 선수가 징크스를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를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