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 김용택

풍월 사선암 2012. 12. 11. 09:51

[진솔한 고백]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김용택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방향을 거머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일 때도 있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작은 사건이 이후 인생 전체를 좌우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시인 김용택 - 시골 선생의 마음에 찾아온 평화

 

김용택씨(59)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38년 동안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1982년 등단해 섬진강’ ‘, 너는 죽었다’ ‘섬진강 이야기등 수십여 권의 시집과 동시집, 동화집, 산문집 등을 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강 건너와 마을 앞뒤가 다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마을은 말구유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을에 논과 밭이 적고,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이 없어 마을은 가난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풍요롭고도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를 가꾸며 마치 작은 공화국 같은 생활을 했다. 우리 집도 가난했다. 우리 마을에서 중학교를 가거나 고등학교를 가는 것은 어려웠다.

 

어떻게 해서 내가 전북 순창으로 중학교를 갔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꿈처럼 아득하다. 내가 덕치초등학교(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졸업할 때 우리 반이 모두 18명이었는데, 유일하게 나만 중학교를 갔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순창으로 중학교를 갔다. 그때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았는데, 나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 끝에서 세 번째로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어떻게 내가 중학교에 합격을 했는지 지금도 의아하기만 하다.

 

중학교 때도 나는 공부라는 것을 따로 해본 적이 없다. 시험을 볼 때만 조금씩 그냥 공부하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중학교 때 내가 주로 한 것은 영화를 열심히 보는 것이었다. 순창에 극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극장에 들어온 영화는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다 보았다. 방학 때만 제외하고 말이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같은 캠퍼스에 있는 순창농고를 갔다. 우리들은 주로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 일은 모내기, 피사리, 벼 베기, 묘포 김매기, 소 두엄내기, 비닐하우스 채소 가꾸기 등 끝이 없었다. 그렇게 일을 하며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도 나는 영화 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때 돈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 몇몇은 늘 영화가 시작된 지 3분의 1쯤 지났을 때 들어가 공짜로 영화를 봤다. 오랜 세월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극장에서 표를 받는 기도아저씨와 우리들은 아주 친한 사이가 돼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나는 집에서 오리를 키웠다. 그때가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었다. 결국 오리 키우는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나는 한 달 동안 거지처럼 지냈다. 어떻게 친척집을 찾아가 하루 한 끼를 얻어먹고, 어떻게 그 집에서 잠을 자면 그날은 행운이었다. 밥을 먹지 못하면 하루 종일 걸어다니다가, 서울역 지하도에서 잠을 잤다. 나중에는 잠은 사촌형이 얻은 방에서 자고, 하루에 한 끼 식사를 위해 친척집을 전전했다. 어느 날 너무나 배가 고파 친척 형을 찾아갔다. 형은 나의 몰골을 보고 놀랐다. 깎지 않은 머리에 땟국이 질질 흐르는 얼굴, 냄새나는 옷을 본 형은 나에게 라면을 사주었다. 땀 뻘뻘 흘리며 라면을 먹고 있는 나를 본 형이 그날 밤 시골집으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 이튿날 연락이 왔다. 시골에 취직자리가 있으니 오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다시 순창 동생들이 자취하는 곳으로 갔다. 방 안에 틀어박혀 밥만 먹고 잠만 잤다. 자취집 주인이 내가 자기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오랫동안 모를 정도로 나는 두문불출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나처럼 할 일 없는 동창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그럭저럭 지내던 어느 날 친구들이 나를 찾아와 하는 말이 초등학교 교사 시험이 있으니 같이 시험을 보자고 했다. 나는 한 번도 그 일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싫다고 했다. 친구들은 그래도 심심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내가 계속 싫다고 하니, 그러면 사진만 찍자고 했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더니, 친구들이 시험 볼 서류들을 다 갖춰주었다. 사회에 나온 후 처음 치른 시험에 합격이 돼 선생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내 삶은 그렇게, 내 뜻과 의지가 아닌 친구들의 권유에 이기지 못해 선택한 교사의 길이 피할 수 없는 내 인생이 돼버렸다. 그때 내 나이 호적으로 스무 살이었다.

 

나는 아주 작은 분교에서 선생을 시작했다. 양말을 벗고 도랑을 세 개나 건너야 했다. 그 작은 산골은 평화롭고 지루했다. 내 청춘의 피는 그 작고 평화로운 마을의 몇 안 되는 아이들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너무 심심했고, 하루가 너무 지루했다. 그렇게 심심해서 미칠 지경으로 지내던 어느 날, 그 우연이라는 알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이 닥쳐왔다. 그 시골까지 월부책장사가 학교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때 내 생전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책을 샀다. 그것도 월부로. 내가 산 책은 판형이 아주 크고 멋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재미있었다. 어떻게 그 작은 책 속에 그렇게나 수많은 인물들이 살아가는지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 책을 다 읽을 무렵 그 책장사는 또 다른 책들을 물어 날랐다. 박목월 전집, 이어령 전집, 괴테 전집, 헤세 전집, 니체 전집, 서정주 전집, 그리고 나는 드디어 전주 헌책방으로 진출해서 헌 잡지와 헌책들을 사 날라다가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8년쯤 지났을까. 나는 드디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온갖 장르의 글들이 다 써졌다. 엉터리지만 말이다. 나의 생각들은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너무나 많은 내 생각들을 잘 간수하기 위해서 나는 그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글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일찍 모든 것을 접었다. 인생의 첫 시작이 시골선생이었으니, 나이 들어 늙을 때까지 그렇게 선생으로 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편하게 마음을 먹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책만 읽고, 글만 쓰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하루를 살면 됐다. 희망이 없이, 아니 희망을 일찍 이루어낸 삶은 그 얼마나 한가하고 평화로웠던가.

 

나는 어느 날 시인이 돼 있었다. 선생을 시작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3년이 흘러간 후였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오랫동안 나는 시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인이 되었지만 나는 선생이라는 아름다운 직업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나는 아이들 앞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지내고 있다. 별일이 없는 한 나는 앞으로 몇 년간은 지금처럼 지내게 될 것이다.

 

내 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들은 많았겠으나, 나의 노력으로 순간들을 돌파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시험을 보아 중학교로 진학을 하고, 고등학교를 가고, 오리를 키우다가 망하고, 서울을 가고, 낙향하고, 선생이 되고, 그리고 시인이 되었지만 나는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인생에 결정적인 순간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순간이 자기의 의지이든 아니면 우연이든 자기에게 찾아온 순간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어나가는 것은 다 자기 할 탓일 것이다. 인생은 억지로 되지 않고, 또 되려고 한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초등학교 아이들 앞에서 시작된 나의 인생은 이렇게 초등학교 아이들 앞에서 끝이 나간다. 스물대여섯 살 무렵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이 작은 시골에 태어나 나는 선생이 되었다. 이 시골에서 선생을 하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고 살자. 그렇게 사는 삶도, 그런 인생도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그런 사람도 하나쯤은 이런 세상에 있음직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그렇게 된 것이다.

 

<여성동아 2007년 04월호>

  

섬진강 1/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물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걸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