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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 완도 명사갯길] 숲길, 바다, 백사장 ‘일거삼득’

풍월 사선암 2012. 10. 24. 19:41

[걷기 | 완도 명사갯길] 숲길, 바다, 백사장 일거삼득

 

옛 신지 주민들이 걷던 갯길 정비해 지난 5월 개통

3.8km 명사십리 바라보는 나무데크 길 백미

 

! 뜨거, 뜨거!”

   

여름 더위는 사람들의 인내력마저 사정없이 녹여버릴 듯 뜨겁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피서를 떠나느라 여념이 없다.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시기이다. 남해안으로 피서를 떠난다면 한번 걸어볼 만한 걷기 길이 새로 개통됐다. 바로 전남 완도의 명사갯길이다. 2011년 행정안전부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사업으로 사업비 5억 원을 들여 옛날 산길을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마련해 지난 525일 개통했다.

 

명사갯길은 신지도의 나지막한 산길을 걸으며 드넓은 다도해가 그려내는 풍경화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길이다. 뿐만 아니다. 3.8km의 명사십리 해변에서는 사정없이 푸른 바다로 뛰어들어 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길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포구와 갯바위는 또 어떤가. 미끼 하나 끼우지 않아도 낚싯대만 드리우면 세월이 절로 낚인다. 이렇게 길을 걸으며 멀티 바캉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명사갯길이다.

   

명사갯길은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지나 바로 있는 강독휴게소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물하태와 명사십리해수욕장까지가 제1구간, 해수욕장(울몰)에서 석화포를 지나 내동마을까지가 제2구간이다. 1구간은 약 7.7km, 2구간은 8.6km로 총 길이는 16.3km 정도다.

 

명사갯길에서는 명사십리 해변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나무데크 길을 걷는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섬처럼 떠 있고, 바다에는 섬이 구름처럼 떠 있다.

 

숲길과 해변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멀티 트레킹 코스

 

요즘 이상기후현상이 문제라더니 휴게소 한편엔 제 계절을 잊은 가을 전령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휴게소 사장의 말에 의하면 지난 4월만 해도 겨울처럼 춥더니 봄기운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여름이 찾아왔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사람도 계절을 헷갈려 할 정도니 햇살의 온도만으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순진한 코스모스는 오죽하랴 싶다.

 

강독휴게소 근방은 옛날엔 강독나루터가 지척에 있던 곳이다. 2005년 완도와 신지도 사이에 신지대교가 놓이면서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이 강독나루터와 물하태나루터에서 완도 제1부두까지 철부선이 다녔다. 다리가 놓이면서 교통은 더욱 편리해졌지만 많은 신지도 주민이 완도로 이사하면서 신지도 인구는 그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이날 안내를 맡은 명사갯길 지킴이단 박종길 대장은 다리가 생기면서 신지도 사람들이 완도로 많이 나갔지요. 때문에 신지에서는 농번기라도 일할 사람이 없어요라며 신지도의 현재를 말해 주었다. 섬 사이를 잇는 다리 하나가 토박이들의 삶의 터전을 바꿔놓은 것이다. “왜 자꾸 섬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으나 그들의 사정을 모르니 더 이상의 질문은 괜한 오지랖일 것 같아 말을 목구멍 깊이 꿀꺽 삼킨다.

 

명사갯길의 출발지인 강독휴게소 뒤편에 때 아닌 코스모스가 만개했다. 출발을 축하하는 꽃 퍼레이드 같았다.

 

생수며 삶은 달걀 몇 알을 사서 휴게소 뒤편에 나있는 나무계단을 오른다. 이른 아침에 부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발걸음이 가뿐하다. 5분 정도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다도해의 풍광에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지만 박 대장은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지기에?

 

전망대를 나와 오솔길을 조금 걸으면 바로 명사갯길 이정표가 보인다. 갯길은 어지럽게 나 있지 않고 정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설사 이정표가 없더라도 헤맬 일은 없어 보인다.

   

갯길이 나있는 낮은 언덕엔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제법 그럴듯한 숲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에서 길의 멋진 배경을 만들어주는 바다에서는 짭짜름한 갯내가 코끝을 간질인다. 바다 건너로는 완도항과 완도읍의 풍경이 사진처럼 펼쳐진다. 완도읍 동망봉엔 20089월 완공한 완도타워가 랜드마크처럼 우뚝 서 있다.

 

코스 곳곳에는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이정표를 지나면 길이 좁아진다. 한 사람이 걸으면 꽉 차는 길이다. 오른쪽에는 절벽에 조명탑을 군데군데 세워두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다. 그 푸른 유혹에 너무 빠져버려 발을 헛디딜까봐 정신을 바짝 차린다. 예쁜 아가씨 훔쳐보듯 흘깃흘깃 곁눈질만 하려니 조금 약이 오른다. 조금이라도 빨리 넓은 장소에 당도하고 싶어져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지금 걷는 이 길은 섬 주민들이 오가던 갯길이다. 갯길은 바닷가마을에 주로 있는 오솔길을 일컫는다. 주민들이 갯벌로 일하러 나가고 들어오면서, 이웃 마을 친척집에 안부를 물으러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다. 역사도 역사지만 섬사람의 희로애락이 물씬 배어 있는 길이다.

 

조선시대 신지도에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대표적인 유배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정조 때 당시 유배지를 기록한 문헌에 의하면 유배지로 수로가 멀기는 추자도와 흑산도, 제주도 삼도를 빼면 고금도와 신지도라고 했다. 그만큼 한양에서 멀고 외진 섬이었던 것이다.

 

신지도에는 40여 명이 유배되었다고 전해진다. 문헌상 기록된 최초의 신지도 유배인은 조선 후기(1694)의 남인 정치가 목내선(睦來善)이다. 당시 좌의정의 자리에 올랐던 목내선은 인현왕후가 복위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신지도로 유배되어 5년간 위리안치(圍籬安置, 가시나무나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죄인을 가둠)형에 처해졌다. 이후 조선시대 서예가 이광사, 신유박해로 아우 정약용과 함께 유배형을 받은 정약전도 흑산도로 가는 도중 신지도에서 약 8개월간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철종 때 안동 김씨인 김좌근과 김문근의 세도정치를 비판하다 신지도로 유배된 조선후기의 문신 이세보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신도일록(薪島日錄)>을 남기기도 했다. 종두법으로 잘 알려진 송촌 지석영도 신지도에서 5년여를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좁은 오솔길을 조금 걸으면 도로와 만난다. 도로면에 화살표를 그려놓아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강독1교를 왼쪽에 두고 조금만 걸으면 오른쪽에 세워둔 이정표를 따라 다시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산길 초입이라 약간의 급경사가 이어지지만 이내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15분쯤 걸으면 검은 차양막이 덮인 광어 축양장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다시 콘크리트길이 잠깐 나타난다. 왼쪽으로 나가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다시 언덕으로 오르는 입구가 있다. 이곳을 기점으로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다소 섬 안쪽으로 들어가는 구간이라 바다는 잠시 모습을 감춘다. 잠시 동안은 오롯이 오솔길의 정취를 즐기면서 걷는다.

 

이런 곳은 특별한 산이 아니라 달리 이름이없어요. 신지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상산(象山)이에요. 324m 정도 되지요. 명사갯길이 생기기 전에는 상산을 오르거나 상산 둘레를 한 바퀴 돌곤 했어요. 물론 지금도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요.”

 

박종길 대장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제법 높은 상산이 눈에 들어온다. 코끼리 상()자를 써 코끼리 산이라고도 부른다. 신지도의 모양새가 코끼리 코처럼 가로로 길게 생겼다 해서 코끼리를 뜻하는 산이 되었다고 한다. 신지도의 옛 이름인 지도도 본래는 긴섬진섬지섬(지도)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예전에는 바다 건너 마주보던 섬이었던 완도를 옆에 두고 걷는다. 이제는 완도와 같은 육지가 된 신지도의 옛길은 섬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길이다.

 

신지도 주민들이 다니던 실핏줄 같은 갯길

 

오르막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이내 큰 길을 만난다. 바로 이곳이 물하태 나루터 인근이다.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물하태 선착장 터가 나온다. 과거에는 신지, 고금, 약산 주민들이 완도로 가기 위해 늘 북적이던 곳이었으나 다리가 놓인 이후 선착장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한가로워졌다.

 

명사갯길은 계단 맞은편 콘크리트길로 곧장 올라가면 된다. 도중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상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정표와 길바닥의 화살표를 따라 직진하면 된다. 숲길을 조금 걸으면 제법 큰 나무데크 쉼터가 나온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박 대장이 가져온 참외 한 쪽을 먹으며 기운을 차린다. 휴게소에서 이곳까지 약 3.8km, 소요시간은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쉼터를 나와 조금 걸으면 아담한 나무데크 길이 나오는데, 데크에 들어서기 전 오른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약수터가 있다. 파란 바가지가 이정표 역할을 하듯 걸려 있어 찾기에 어렵지 않지만 이 날은 워낙 가문 탓에 목을 축일 수 있을 정도의 물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원하게 비가 한 번 쏟아지고 나면 맑은 샘물이 솟아난다고 하니 나중에는 이곳에서 물통을 채우면 되겠다.

 

◀끝없이 펼쳐진 명사십리 해변을 걷는다. 3.8km에 이르는 해수욕장 뒤편으로 나무데크 길과 오솔길을 마련했다.

 

20분 정도 비탈길을 오르면 등대사거리다. 오던 길에서 왼쪽으로 300m 정도 가면 뾰족산 정상과 산동정이라는 정자로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700m 정도 가면 등대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있다. 어느 곳도 둘러보지 않고 그대로 직진한다면 명사십리해수욕장 입구까지 1.3km 거리다. 물론 선택은 걷는 사람 마음이다.

 

기자는 오른쪽 코스를 선택했다. 등대와 어우러지는 풍광을 한번 보고 싶었다. 등대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나무데크로 만든 등대전망대에 도착했지만 등대는 보이지 않는다. 등대를 보려면 왼쪽으로 언뜻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모양인지 길 흔적이 확실하지는 않다.

 

잡초가 꽤 자란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면 군용방호시설이 있고 오른쪽으로 조금 돌아가면 하얀색의 서봉각등대가 보인다. 이 등대는 무인등대로 현재는 가동하지 않는다. 등대와 어우러지는 바다의 풍광이 제법 운치 있긴 하지만 굳이 여기까지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정도면 족할 것 같다.

 

◀명사십리의 방풍림을 걷는 길. 명사십리는 전국에서 음이온 발생률이 가장 높은 장소다.

 

명사십리 주변 산소 음이온 발생량 전국 최고 자랑

 

다시 등대사거리로 나와 해수욕장 쪽으로 방향을 잡아 산길과 콘크리트길을 따라가면 이윽고 명사십리해수욕장 입구다.

 

완도군은 명사십리를 가리켜 우리나라에서 음이온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전남 보건환경연구원 조사결과 명사십리 주변에서 산소 음이온 발생량이 대도시보다 최고 50배나 많아 전국 최고 수준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제1구간이다. 여기까지의 거리로만 치면 채 8km가 되지 않아 남은 제2구간까지 내쳐 걸을 수도 있지만 밀가루처럼 하얗고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그냥 지나치기는 너무 어렵다. 해수욕장 주변에 식당과 숙박 시설이 많으므로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명사십리 해변 길부터 걷는 편이 낫겠다. 더구나 한여름 더위는 정오쯤이면 온몸을 녹여버릴 정도로 뜨거우니 무리하지 않는 게 여러모로 낫다. 물론 기자는 더위를 핑계 삼아 때 만사 제쳐 놓고 해수욕을 즐겨보려는 잔꾀가 발동한 게 더 큰 이유였지만.

 

2구간은 명사십리 해변부터 걸으면 된다. 모래사장 뒤편으로 나무데크 길을 잘 설치해 두어서 위험하게 차와 마주치는 일은 없다. 해변 초입에서 백사장 끄트머리까지의 거리는 3.8km. 데크 길을 따라가면 소나무 가득한 방풍림을 지나가기도 한다. 피서객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는 한여름 피서철에는 조금 혼잡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시기에는 한적하게 걸을 수 있다.

 

백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길을 건너면 명사갯길 안내판이 있다. 이곳을 지나 경사진 콘크리트길을 오르면 본격적으로 2구간이 시작된다. 1.8km(30)를 걸으면 갈림길이 하나 나오는데 왼쪽 오르막길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이 구간 역시 길바닥에 화살표가 수시로 나타나 크게 헷갈리지는 않는다.

 

◀명사갯길 개념도

 

명사십리 조망하는 나무데크 길 백미

 

조금만 걸으면 드디어 명사갯길의 백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해안 데크길이다. 전국 걷기 길에서 유행처럼 만들고 있는 흔한 나무데크 길을 일러 백미라 부르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곳을 가히 명사갯길 최고의 절경이라 하는 이유는 데크를 걸으며 바라보는 명사십리의 풍광 때문이다. 걷기를 시작할 즈음 다도해의 풍광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기자에게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했던 박종길 대장의 말뜻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첫날 박 대장에 이어 이튿날 안내를 맡은 신지면사무소 김창균씨도 바로 이곳이 명사갯길 최고의 조망 포인트라고 귀띔해 준다.

 

눈앞에 펼쳐지는 십리에 이르는 하얀 해변은 햇빛을 반사해 마치 바다에 금테를 둘러놓은 것처럼 빛이 났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맞닿아 쭉 뻗은 해안선은 미끈한 여성의 허리선을 연상케 할 만큼 매혹적이다. 전날 힘들게 내려가 보았던 서봉각등대도 풍경화 프레임 한켠에 숨어 깍두기 역할을 한다. 광활한 바다 위로는 여객선과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철부선이 파란 캔버스에 허연 선을 남기며 달린다. 가히 넋 놓고 바라볼 만한 풍광이다.

 

도시 사람들은 여기 걸으면 좋아서 입을 못 다물어요. 숲길 있지, 해변 있지, 이렇게 바다와 함께 걷는 데크 길도 있지.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 더 홍보가 되면 사람으로 가득 찰 거라고 확신해요.”

 

신지도 토박이인 김창균씨는 명사갯길 자랑을 한껏 늘어놓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이 길은 대평리 울몰에서 석화포를 오가던 갯길이에요. 옛날에는 매년 815일 신지도 축구대회가 열렸어요. 광복 직후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엄청 오래됐지요. 육지 학교로 진학한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815일 축구대회를 연 것이 시발점이었다지요.”

 

김씨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815일 축구대회가 열리는 날은 신지도 잔칫날이었다고 한다. 섬 주민들은 갯길을 따라 대회장으로 모였다. 마을 대표선수들은 이미 한 달 전부터 합숙훈련을 할 정도였단다. 송곡리, 대곡리, 동고리 등 큰 마을이 서로 라이벌이었다. ‘신지도 월드컵이 따로 없었지 싶다.

 

마을의 자존심을 건 경기였으니까 속된 말로 박 터지게뛰었죠. 젊은 혈기들이라 싸움도 많이 나고, 아무튼 섬에서 가장 크고 재미있는 행사였어요.”

 

이 대회의 전통이 이어져 요즘도 815일이면 마을 체육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2구간은 이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신지면사무소 김창균씨가 길을 설명하고 있다.

 

데크 길이 끝나고 조금만 가면 왼쪽으로는 오르막길, 오른쪽으로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내려가야 한다. 이곳이 바로 석화포다. 마을에 진입해 왼쪽으로 돌아 마을을 가로지른다. 두세 군데 갈림길이 있으나 길바닥의 화살표와 이정표만 따라가면 된다.

 

석화포의 풍광은 한없이 조용하다. 곳곳에 널어놓은 다시마에선 갯내가 진동한다. 포구 곳곳에는 크고 작은 갯바위가 즐비해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마을을 가로질러 오른쪽 오르막으로 방향을 잡으면 다시 산길이 이어진다.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뜨거운 햇볕을 가려준다. 하지만 김씨는 이곳 역시 아까시나무가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아까시나무는 강한 생명력 때문에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산을 망치기 위해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금의 오해가 있다. 아까시나무는 연료와 목재로 이용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들여왔을 뿐이며, 한국전쟁이 끝난 뒤 산림녹화용으로 대량으로 심게 되었다. 번식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빛이 많아야 사는 양수(陽樹)여서 나무가 빼곡한 곳에서는 오히려 자라지 못한다. 과학적 근거와 마을주민의 해석이 각기 다르니 이는 정부 차원에서 명확히 판가름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일이 아닌지 싶다.

  

명사갯길의 백미인 2구간 나무데크 길. 명사십리 해변과 완도, 주변 섬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무며 숲길을 걷다가 조금 난해한 곳을 한 군데 만났다. 자연스레 나 있는 길을 따라 가면 마을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 방향이 아니란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밭이 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얼마 전 길을 정비하면서 마을로 가는 길은 밧줄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놨는데 누군가가 치워버린 모양이다. 마을 주민이 여행객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리면서 코스가 조금 변경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미처 이정표를 세우지 못한 듯하다. 갯길 정비를 책임지고 있는 김창균씨는 빠른 시일 내로 이정표를 세우겠노라 약속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무덤 1기와 다시마를 말리는 밭이 보이면 바른 길로 온 것이다. 밭 모서리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갯길 이정표가 바로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오솔길에 진입하면 정상의 정자까지 곧장 올라간다.

 

새로 지은 정자에 오르니 바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하다. 줄줄 흐르던 땀이 순식간에 말라버린다. 바다 저 멀리 청산도가 어렴풋이 보인다. 안개가 끼지 않은 맑은 날이면 제주도 한라산의 모습까지 어렴풋이 보인다고 한다. 정자에 앉아 섬 풍경을 이야깃거리 삼아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몸이 식어버렸다.

 

정자에서 이어지는 내리막길 쭉 가면 이윽고 명사갯길의 종착점인 내동마을에 이른다. 모두 바다로 밭으로 일하러 나간 마을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해수욕장 끄트머리에서 여기까지의 거리가 4.78km. 아직 힘이 남아돌지만 아쉽게도 명사갯길은 여기에서 끝난다. 하지만 향후 동촌리를 지나 동고리해수욕장까지 코스를 연장할 계획이란다. 현재 마을을 우회하는 코스를 개발하고 정비 중이라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신지도의 동쪽 끝까지 갈 수 있을 듯하다.

 

산행길잡이

1구간 신지대교 지나 강독휴게소휴게소 전망대강독1교 끼고 도로오른쪽 이정표 산길 진입축양장나무데크 쉼터등대삼거리(등대쉼터나 산동정 구경 가능)명사십리해수욕장. 총거리 약 7.7km(등대 구간 미포함, 해수욕장 입구까지)

 

2구간 명사십리 해수욕장 초입나무데크 길해수욕장 끝이정표 따라 숲길 진입석화포마을 지나 숲길 진입마을 보이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밭길 진입밭 내려와 이정표 확인 후 숲길 진입정자내동마을. 총거리 약 8.6km.

 

교통

서울완도 서울 센트럴시티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4(08:10, 10:20, 15:10, 17:20) 완도까지 우등버스가 운행한다. 요금은 성인 기준 35,100. 5시간 40분 소요.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는 완도까지 직통과 직행버스가 40,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운임 15,400.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에서 빠져 강진-해남-완도로 가고,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광주에서 빠져 나주-영암-강진-해남-완도로 간다.

 

완도신지도 공용버스터미널에서 1(6:20~19:15) 45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강독휴게소 부근에서 하차. 내동마을에서 신지터미널까지는 하루 6(7:25~16:25) 운행하는 농어촌 버스를 타면 된다. 갯길에서 내려와 마을 정자를 지나 왼쪽으로 가면 버스정류소가 있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이나 강독휴게소로 원점회귀할 때는 신지터미널에서 연계 버스를 이용한다.

 

숙박(지역번호 061) 완도읍내에는 완도항 주변으로 숙박업소가 몰려 있다. 장보고모텔(554-8551), 그랜드모텔(555-0100), 로망스모텔(555-2463), 시드니모텔(555-1075) 등이 있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곳을 원한다면 완도관광호텔을 이용해 볼 만하다. 일반실과 특실이 있으며 요금은 각각 주말 기준 7~15만 원 선이다(552-3005).

 

신지도에는 명사십리해수욕장 주변에 숙박시설이 많다. 스타비치펜션(552-9050), 모래뜰모텔(552-7203), 완도해조류스파랜드(550-7000~3), 소나무숲 민박(554-8456) 등이 있다. 해수욕장 근처라 여름 피서철에는 예약이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완도의 별미 전복물회. 식초 간을 해 새콤하면서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별미(지역번호 061) 완도의 별미는 역시 싱싱한 횟감과 전복이다. 완도종합버스터미널 맞은편의 아시나요 식당(554-3049)은 전복회덮밥(1만 원)과 매생이 전복죽(13,000)으로 유명하다. 완도관광호텔 앞 일억조 식당(552-1457)도 전복회비빔밥, 전복물회, 전복정식(15,000) 다양한 전복요리를 내놓는다. 4인 기준 전복코스요리는 20만 원. 완도수협어판장에서는 다양한 횟감을 살 수 있다. 수족관에 담긴 생선을 고르면 즉석에서 회를 떠준다. 곁가지 음식 없이 회만 살 수 있어 푸짐한 것이 장점. 신지도에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있는 모래뜰 식당(552-4015)이 추천할 만하다. 각종 매운탕과 전복영양돌솥밥, 전복죽 등과 특이하게 양념갈비, 오리주물럭 등도 함께 낸다. 소라식당(552-7874)도 깨끗하다.

 

<조선 매거진 [514호] 2012.08 / ·손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