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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2주 연속 빌보드 2위…

풍월 사선암 2012. 10. 11. 00:14

싸이 2주 연속 빌보드 2

 

건국 이래 최대 문화적 쾌거

임진모 음악평론가

양정모 첫 올림픽 금메달, 박태환 수영 금메달,

양학선 체조 금메달에 버금가는 대사건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서 MVP 되는 것과 같아

 

 지난 104일 밤 싸이의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8만여명이 몰렸다.

 

한국의 음악 관계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말을 했다. “죽기 전에 우리 대중가요가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르는 일을 볼 수 있을까?”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말도 안 되는 몽상이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아마 우리 손자손녀 세대에서나 가능한 일일 거요!”

 

하지만 무척이나 빠르게 앞선 모든 것들을 따라잡는 한국은 ()스피드의 나라라는 명성답게 바로 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오랜 염원이라 할 빌보드 차트 상륙과 정복의 놀라운 성공 다큐를 써내고 있다. 손자·손녀 세대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가 사라졌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100’ 차트에 64위로 데뷔하더니, 그 다음 주에는 경이롭게도 53계단 껑충 뛰어 11위로 올라섰고, 한 주 더 지나서는 정상의 목전인 2위로 대도약했다.

 

상승 추세로 봐서 1위 자리가 확실시됐지만 다음 주에도 2위에 머물러, 현재 2주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1위를 지키고 있는 그룹 마룬 파이브(Maroon 5)의 곡 ‘One more night’를 꺾고 강남스타일1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최고 인기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케샤, 리한나의 신곡들이 치고 올라오는 데다 라디오와 TV 방송 횟수가 딴 곡들에게 뒤져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빌보드 싱글차트는 음반 판매와 방송 횟수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최근에는 음원 다운로딩이 대세가 되면서 이 부문이 추가됐다.

 

과연 강남스타일은 한국음악계의 일대 센세이션이자 아시아 팝의 도발이라고 할 빌보드 넘버원자리에 오를 것인가. 한국은 음악 팬과 미디어 할 것 없이 거의 전 국민이 3주간 강남스타일의 순위와 관련, 빌보드라는 것에 단단히 포박됐다. 근래 관심사에서 멀어진 빌보드 차트가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벌떡 일어선 것이다. 갑작스레 빌보드에 시선이 쏠리게 된 이유는 강남스타일의 글로벌 선풍 때문이지만 그 인기 흐름이 반영된 곳이 다름 아닌 빌보드라는 사실도 작용한다.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영국 차트에 대한 상대적 홀대다. 영국(UK) 차트는 빌보드 못지않게 세계 대중음악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차트로, 팬들에 따라서는 이 차트의 순위에 더 신경 쓰기도 한다. ‘강남스타일은 당당히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로 잠깐 소개됐을 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덜했던 것은 빌보드 1위라는 과업, 더 큰 공략 대상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1894111일에 미국 신시내티에서 창간된 빌보드는 120년에 달하는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단순히 축적된 세월보다 순위 집계의 공정성이 주는 공신력 때문에도 우리 생애에 감히 넘보지 못할 선망과 동경의 집약체가 빌보드다. 1990년대 후반까지 길거리에서 버젓이 불법 음악 테이프를 팔았던 리어카상을 가리켜 길보드라고 일컬었던 것은 빌보드의 신뢰성을 방증하는 사례다. 리어카상이 비록 불법이기는 하나 미국의 빌보드 차트처럼 인기 흐름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포착하는 길가의 빌보드라는 것이다.

 

음악 관계자들은 왜 우리는 미국의 빌보드와 같은 믿을 만한 차트가 없느냐는 푸념으로 척박한 음악 풍토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도 코리아 빌보드가 없다. 이게 부재하다는 것은 어떤 미디어와 기관이 단일 곡과 앨범의 순위를 매겨도 믿을 수 없다는 뼈아픈 현실에 맥락이 닿아 있다. 공정한 순위가 나오지 않으면 시상 제도도 제대로 가동되기 어렵다.

 

빌보드 상위권에 오른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모든 대중예술의 축이 음악이던 1970~1980년대에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들어가면 3대가 먹고산다는 말이 유행했다. 약간의 과장이긴 하지만 그만큼 빌보드의 높은 순위는 미국 음악시장에서의 성공을 가리키는 지표로 통했다. 40위권에 진입해도 히트였다. 그래서 특정한 노래가 빌보드 톱40를 기록하면 히트, 10가문의 영광으로, 1위는 역사로 일컫곤 한다. 심지어 본고장 미국에서도 빌보드 40위에 들어가는 곡을 가진 가수는 빌보드 가수라고 대놓고 자랑한다.

 

지난 104일 열린 콘서트에서 싸이는 10여곡의 히트곡을 불러 관객을 환호케 했다.

 

100위부터 1위까지의 순위를 게재하는 100’, 소위 팝 싱글차트가 가동되기 시작한 1958년부터 지금까지 54년의 역사에서 넘버원이라는 자리는 실제로 역사의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팬들은 무조건 1위를 기억하고 숭배했으며 1위곡만을 모은 서적도 정기적으로 발간되고 있다. 시장의 정복은 물론 역사의 인증이 1위가 누리는 상징성이다.

 

이전에 발표한 곡의 미국 발매가 연이어 거부되면서 긴장하던 영국의 비틀스는 1964당신 손을 잡고 싶어요(I want to hold your hand)’가 마침내 빌보드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호텔방에서 접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토록 오래 꿈꿔온 미국 정복의 가능성을 비로소 확신한 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무수한 히트곡을 터뜨리며 국내에도 고고열풍을 일으킨 그룹 시시아르(CCR)는 단 한 번도 빌보드 1위를 못한 것을 두고 평생 애석해했다.

 

1980년대의 레전드 아바의 경우도 히트곡은 부지기수지만 빌보드 1위는 댄싱 퀸(Dancing Queen)’ 딱 한 곡에 그쳤다. 10위권에 든 곡도 1위곡을 포함해 4곡에 불과했다.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성적. 때문에 아바 멤버들은 미국을 유일한 실패 지역으로 간주했다. 이 하나만을 봐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정상을 목전에 두고 2주 연속 2위를 차지한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다.

 

1위를 바랄 것도 없이 2주 연속 2위도 사실상 미국시장 제패 혹은 정복이라 이름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다. 영어도 아닌 한국어 노래로 승승장구했다는 점, 그리고 빌보드가 전통적으로 배제해온 아시아 팝의 깜짝 도발이기에 더욱 가치가 크다. 빌보드 싱글 역사상 아시아 출신 가수 노래가 가문의 영광이라는 톱10을 기록한 사례는 1963년 사카모토 규의 스키야기’(1), 그리고 이번 강남스타일단 두 차례밖에 없다.

 

만약 싸이 노래가 1위에 오른다면 49년 만에 아시아 음악이 일대 경사를 맞는 셈이다. 까다롭다는 영국(UK) 차트 1위에 등극한 것을 포함해 빌보드 2위만으로도 우리의 만족지수는 이미 꼭짓점에 올라 있다. 경이로운 센세이션, 건국 이래 최대의 문화적 쾌거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양정모의 첫 올림픽 금메달, 박태환의 수영 금메달, 양학선의 체조 금메달, 축구 4강 등에 버금가는 사건이며 프리미어리그로 말하자면 박지성이 MVP가 된 격이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지 강남스타일이 내심 빌보드 1위와 영·미 차트 동시 정상을 이룩했으면 하는 기대와 열망은 숨길 수가 없다.

 

 

강남스타일 성공 뒤의 인물들

박소영 기자

양현석 YG 대표 제대 후 방황하던 싸이 제 색깔 찾기 돕고

작곡가 유건형 2006년부터 싸이 전담왕년의 아이돌

포미닛 현아 말춤 파트너

리틀 싸이 황민우 광주광역시의 7세 소년

콘텐츠 프로듀서 이규창 미국 진출 길 열어

 

(왼쪽부터) 양현석. 유건형. 현아. 황민우. 이규창.

 

여기서 공연을 한다기에 퇴근길에 들렀어요. 근데 이 사람들, 전부 싸이를 보러온 사람들인가요?”

 

가수 싸이(35)서울스타일 콘서트를 한 시간 앞둔 지난 104일 밤 9.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만난 직장인 임민아(27)씨가 상기된 얼굴로 기자에게 되물었다. 임씨는 열기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고 했다. 공연 예정 시간이 한 시간 남았음에도 서울광장은 싸이를 보기 위해 모인 8만여명(경찰 추산)의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청 앞 광장 주변 도로는 일제히 통제됐고, 거리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대학생 김우혁(22)씨는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 응원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수 싸이는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적 가수가 됐다. 싸이는 국내 음원 차트를 석권한 데 이어 빌보드 메인 차트인 100’ 2위를 차지했고, 지난 930일에는 영국의 UK 싱글차트 1위 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싸이는 사실상 세계 팝시장의 양대 차트를 정복했다. 본인조차 예상치 못했던 폭발적 인기에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가 들썩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탄생 뒤에는 수많은 조역이 있다.

 

현석스타일

 

지난 5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양현석(42) YG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소속 가수들의 노래와 춤을 직접 지도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색을 잃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현석 대표의 이런 철학이 강남스타일을 만들었다. 양 대표는 소속 가수들을 가르치지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YG를 대표하는 뮤지션인 싸이·빅뱅·2NE1의 보컬 색이 모두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3대 연예기획사 중 두 곳인 SM(회장 이수만)JYP(대표 박진영)가 각각 강타·보아·태연(소녀시대), 박진영·선예(원더걸스창민(2AM)을 잇는 뚜렷한 보컬 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 히트곡이 된 것은 소속 뮤지션의 개성과 특색을 존중하는 양 대표 특유의 리더십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 대표를 빼고 강남스타일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20097월 군 전역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슬럼프에 빠진 싸이가 그만의 색깔을 다시 찾도록 독려한 것 역시 양 대표였기 때문이다. 양 대표가 싸이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사람들은 네가 데뷔작인 때처럼 유쾌하게 망가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2001년 싸이가 데뷔했을 때 국내 가요계는 요동쳤다. 그의 독특한 외모와 더 독특한 음악은 음악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랩, 짐승의 몸부림 같기도 한 원초적 춤은 차라리 충격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낯섦과 신선함은 다시 한번 강남스타일로 세계를 사로잡았다. 양 대표의 심미안이 빛을 발한 것이다. 양 대표는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 편집을 도맡아 했을 정도로 작업에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강남스타일은 작곡가 유건형(33)씨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 유씨는 세계 팝시장의 트렌드인 일렉트로닉 팝에 중독성 있는 베이스라인을 결합해 오늘의 강남스타일을 완성했다. 유씨는 1996년 그룹 언타이틀로 가요계에 데뷔한 왕년의 아이돌 스타다. 고등학생 때 이미 자신의 데뷔곡인 책임져를 만들 정도로 곡 작업에 뛰어났다. 그는 2006년 발표된 싸이의 4집 타이틀곡 연예인을 싸이와 공동 작곡했으며, 2006년부터는 싸이 전담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강남스타일’ ‘아버지등 싸이의 인기곡 중 상당수는 유씨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현아·리틀 싸이도 한몫

 

강남스타일이 뜨기 시작하면서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함께 주목을 받았다. 걸그룹 포미닛의 멤버인 현아(20)가 대표적인 경우다. 현아는 강남스타일뮤직비디오에서 말춤을 멋지게 소화해내 화제를 모았다. 포미닛의 소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현아의 깜찍하면서도 섹시한 이미지가 강남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스타일의 인기가 수직 상승하면서 현아는 강남스타일의 현아 버전인 오빤 딱 내 스타일을 내놓았고, 이는 강남스타일열풍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제시카 알바는 지난 924일 자신의 트위터에 “Nighty nighty(잘자요)”라는 짧은 글과 함께 현아의 오빤 딱 내 스타일뮤직비디오를 업로드하기도 했다.

 

리틀 싸이로 알려진 황민우(7)군 역시 강남스타일열풍의 일등 공신이다. 황군은 다섯 살 때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여러 차례 방송을 탔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아역 배우를 찾던 YG엔터테인먼트의 한 직원이 케이블 채널 오디션 프로그램인 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연한 황군을 보자 바로 느낌이 왔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싸이에게 이 꼬마 (리틀 싸이로) 어떠냐고 물었고, 이를 본 싸이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황군의 아버지인 황의창씨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최근 민우가 인기가 수직 상승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다니는 (광주광역시) 초등학교에서도 쉬는 시간만 되면 팬들이 몰려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더라고 전했다. 황씨가 주간조선과 통화한 104일에도 황군은 해외 공연 일정으로 인해 미국에 가 있는 상태였다. 황씨는 내 나이가 지금 쉰셋인데, 늦게 본 아들 덕분에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며 웃었다.

 

강남스타일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이규창(34·미국명 큐 리)씨다.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그는 국내 영화·음반 제작자들 사이에선 스타나 다름없는 유명 콘텐츠 프로듀서다. 이씨는 과거 소니엔터테인먼트에서 소니 영화의 해외시장 배급과 마케팅 등을 담당했고, 이런 인맥을 바탕으로 싸이를 스타 제조기인 스쿠터 브라운과 계약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쿠터 브라운은 세계 최대 음반사로 손꼽히는 아일랜드 데프잼 레코딩스 소속의 연예 기획자로, 캐나다의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키워낸 인물이다. 스쿠터 브라운은 유튜브에서 강남스타일뮤직비디오를 본 후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싸이와 음반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아일랜드 데프잼 레코딩스에는 제니퍼 로페즈, 머라이어 캐리, 니요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2012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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