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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 내 입단 시절보다 3점 강해졌다 - 조훈현

풍월 사선암 2012. 8. 14. 09:21

"한국바둑, 내 입단 시절보다 3점 강해졌다"

 

데뷔 50년 맞은 조훈현

최연소 입단기록 자부심 커통산 2000승 달성 쉽지 않아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벌써 반세기가 흘렀다니 감개무량하네요." 바둑계의 '걸어다니는 기네스북' 조훈현(60) 단이 두 달 뒤 프로 데뷔 50주년을 맞는다. 바둑계 자료엔 196210월로만 돼 있어 조선일보 PDF 파일을 추적한 결과 1014일 입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16일자 조선일보 7면엔 '바둑의 才童(재동), 열살짜리 曺君(조군)入段(입단)' 제목 아래 "예선 13전 전승, 본선 102패에 1위로 초단의 사닥다리를 뛰어넘었다"는 박스기사가 실렸다. 천재 기사의 대명사로 꼽혀온 조 단을 한국기원서 만나 기사 생활 50년을 맞는 소회를 들어봤다.

 

◀오는 10월 기사 생활 반세기를 맞는 조훈현 . 그는최일선에서 내려왔으니 사실상 은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도죽을 때까지 결코 승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없는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다

 

만 아홉살 입단 기록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꿈쩍 않고 있다.

 

"7, 8세 때부터 출전해 3번째 만에 입단했다. 경험 쌓으라고 선친이 일찍 내보내셨던 것 같다. 입단대회 도중 잠시 도망나가 만화책을 봤던 기억이 난다(웃음)."

 

입단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가정환경은 어땠나.

 

"꽤 가난했다. 바둑 상대가 돼주면 꼬마가 신통하다며 어른들이 쥐여주던 10, 20환 푼돈을 살림에 보태야 할 정도였으니까. 전 가족이 목포에서 상경한 뒤 나는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정해영 전 국회부의장, IOC위원을 지낸 박종규(피스톨)씨 등 바둑 좋아하는 명사들 댁에 옮겨다니며 살았다. 초등학교를 5군데나 거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 바둑 수준을 지금과 비교한다면?

 

"치수로는 약 3, 집으론 30집 정도 발전했다고 본다. 초단 시절 이시다(石田芳夫)와 호선(互先)으로 전화 바둑을 두었는데 사실상 30집 차의 대패였다. 한국기원 단이던 63년 도일(渡日), 일본기원 초단이 되기까지 3년 걸렸다."

 

 

9년 만인 72년 귀국했다. 단의 '선진문물 도입'은 바둑사적으로 의미가 컸다.

 

"유학 초기엔 정석, 포석 없이 힘으로만 두다가 어느 날 세고에 선생 서가(書架)에서 정석사전이란 걸 발견했다.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 빠져들다 보니 하룻밤 사이 모두 입력(入力)이 됐다. 그 후부터는 판을 풀어가기가 훨씬 쉬워지더라. 당시 일본바둑은 모든 면에서 앞서 있었다."

 

50년 이력서가 화려하다. 가장 자부심을 갖는 기록은?

 

"최연소 입단과 단일 기전 16연패(連覇)에 특히 애착이 간다. 내게 최고의 순간은 89년 잉씨배 우승이었다. 녜웨이핑과 린하이펑(林海峰)을 겨냥해 만든 대회였는데, 한국 기사론 혼자 나가 숱한 고비를 넘기고 우승까지 해 행복했다."

 

역사상 최고의 기사는 누구라고 보나.

 

"단연 우칭위안(吳淸源) 선생이다. 행마의 속도와 돌의 활용성에서 바둑관()에 혁명을 가져왔다. 슈사쿠(秀策) 등 옛날 분들은 덤과 제한시간 등이 요즘과 너무 달라 비교가 힘들다. 이창호 이세돌도 어떤 특별한 세계를 정립하지는 못했다."

 

팬들은 아직도 조 단의 타이틀 획득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50줄에 들어선 뒤에도 세계 제패를 이루지 않았었나.

 

"아이고. 이젠 안 된다(웃음). 마음은 있지만 체력, 머리 회전 능력에서 버티지 못한다. 나도 10~20대 시절엔 무서운 게 없었는데. 예전엔 실력 차가 커서 나이 핸디캡을 메울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2000승 달성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세계 판도를 어떻게 예상하나.

 

"중국 바둑이 경제력, 인구, 사회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하지만 도장(道場) 중심의 한국식 구조도 만만치는 않다. 양쪽 모두 두드러진 주자는 현재 안 보인다. 일본이 너무 뒤처져가고 있는데 균형발전 측면에서 아쉽다."

 

요즘도 꽤 바빠 보인다. 건강 비결이 뭔가.

 

"대국, 해설, 행사 초청 등 일이 많다. 골프채를 잡은 지 6년쯤 됐고 평균 90타 정도 친다. 돈이 걸린 퍼팅이 가장 약해 속상할 때가 많다(웃음)."

 

-앞으로 계획은? 후배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면.

 

"바둑 외길 인생이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후회 없이 살아왔다. 앞으로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엔 언제든 달려갈 생각이다. 젊은이들 앞엔 많은 유혹이 있는데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 입력 : 2012.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