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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절망 딛고 '금빛 비상'… 한국 체조 사상 첫 金 양학선

풍월 사선암 2012. 8. 8. 08:51

[런던 2012] "엄마·아빠 문패 건 집 지어줄게" 비닐하우스 소년의 기적

 

가난과 절망 딛고 '금빛 비상'한국 체조 사상 첫 양학선

그 아들 - 에하루 4만원 훈련비 꼬박 모아 80만원씩 매달 집에 부쳐

"부모님 나 때문에 늙으셨죠"

그 부모 - "이렇게 초라하게 사는 게 아들에게 해될까 걱정"

그리고 그 스승 - 광주체중·고 때 오상봉 감독 소년 양학선 먹이고 재워

 

◀7일 런던올림픽 남자 체조 도마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깨물어보는 양학선.

 

전북 고창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로 시골길을 20분쯤 달리면 공음면 석교리 '남동 마을회관'이 나온다. 거기서 다시 흙길을 따라 5분쯤 걸어 들어가면 고추·깻잎을 심어놓은 밭 옆으로 비닐하우스가 덩그러니 서 있다. 개들이 컹컹 짖어대고 키가 작달막한 부부가 나와 손님을 맞는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방이 하나 있다. 런던올림픽 체조 남자 도마에서 7일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20·한체대)의 부모가 여기서 산다. 부모는 이곳을 '아들 명예의 전당'처럼 꾸며놓았다. 화사한 꽃무늬가 수놓인 벽면엔 양학선의 메달과 사진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광주광역시 달동네에서 미장일, 공장일 하며 어렵게 살아온 부모는 2년 전 양학선이 보태준 돈에 평생 모은 돈을 합해 고창군에 밭 1를 샀다. 동네에 작은 집터도 마련했지만 아직 집을 새로 짓지 못해 밭 옆에 임시 거처를 만들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비닐하우스 안이 가마솥처럼 푹푹 쪘다.

 

159인 양학선보다도 한참 더 작아 보이는 어머니 기숙향(43)씨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우리 이렇게 초라하게 사는 거 아들한테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기'가 자기는 하나도 창피하지 않다고, 인터뷰 많이 하라고 하데요."

 

지긋지긋했던 가난

 

양학선이 자라난 곳은 광주광역시 서구 양3동의 달동네다. 동네에서도 가장 좁은 골목 맨 끝 집, 금방이라도 천장이 무너질 듯한 창고 같은 단칸방에서 형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살았다. 양학선이 일곱 살 때 원래 살던 동네가 개발되면서 오갈 데가 없어지자 마을 통장이 '빈집이 있으니 들어와 살라'며 공짜로 내줬다고 한다.

 

7일 런던올림픽 체조 남자 도마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의 어머니 기숙향(왼쪽)씨와 아버지 양관권씨가 살고 있는 전북 고창군 석교리 남동마을의 비닐하우스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어머니 기씨는금메달 딴 효자 학선이가 엄마 아빠 문패가 달린 새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다며 기뻐했다. /김영근 기자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가 공장일·식당일 등 닥치는 대로 일해도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텀블링 잘하던 소년 양학선에게 체조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없어 큰돈이 들지 않는 운동이었다. 학교에서 합숙 생활하며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고 가끔은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된 양학선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고된 훈련과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돈을 벌겠다며 합숙소를 여러 번 뛰쳐나갔다.

 

밥벌이에 바쁜 부모 대신 양학선을 정성으로 보살핀 사람이 광주체중·고에서 6년을 함께한 오상봉 감독이었다. 오 감독은 합숙 훈련이 없는 주말이면 양학선을 자기 집에 데려가 먹이고 재운 날이 많았다.

 

2 겨울방학 어느 날 양학선이 정말 체조를 그만두겠다며 잠적해버렸다. 파출소를 돌아다니며 양학선을 찾아 헤매던 오 감독은 경북 포항의 한 여관방에서 양학선을 발견했다. 폭설이 쏟아지던 새벽, 3시간 동안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학선은 다음 날 조용히 훈련에 복귀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양학선은 "그때 감독님이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고 털어놨다.

 

"우리 아버지는 농부다"

 

체조의 기대주 양학선이 6일 오후(현지시간) 노스 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체조 도마 경기에서 금메달을 확정짓고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방황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 양학선은 부쩍 철이 들었다. 어디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태릉선수촌 일일 훈련비 4만원을 모아 매월 80만원을 집으로 부쳤다. 오른쪽 어깨 인대가 끊어져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하루에 몇 번씩 전화로 안부를 묻고 어머니에겐 하루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얘기하는 살가운 아들이다. 경기도 일산 군부대에서 육군 하사로 근무 중인 형 학진(22)씨에게도 주말마다 면회를 간다.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자기 이름을 딴 최고 난도의 신기술 '양학선'으로 우승했을 땐 외신 기자들이 "부모님도 체조 선수냐"고 묻자 "우리 아버지 농사짓는다고 농부라고 말해주세요"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통역을 맡은 트레이너를 통해 "His father is a farmer"라는 문장이 외신을 탔다. 지난 2'코카콜라 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을 받았을 땐 시상식장에서 셔플댄스를 추는 경쾌한 세러모니를 선보였다.

 

어머니는 "부모로서 돈이 더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배웠더라면 우리 아기를 더 잘 뒷바라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양학선은 "운동이 힘들 때 부모님 얼굴을 떠올린다. 내가 방황할 때 너무 많이 우셔서 늙으셨다고 생각하면 채찍질이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우리 부부는 비행기도 못 타봤지만 아들은 성공했다""아들이 집에 오면 가장 좋아하는 라면 '너구리'를 끓여줘야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최수현 기자 / 입력 : 2012.08.08

 

 

양학선이 꿈 키운 축사 옆 비닐하우스 가보니 

 

◀7일 오후 양학선 선수의 어머니 기숙향씨가 자신의 비닐하우스 집 앞에서 언론사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축사 옆 비닐하우스서도 빛났던 금빛 꿈

고창 2평 단칸방 메달·사진 가득

아버지 라면은 워낙 좋아해서

SM그룹, 주택 지원 등 도움 손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한국 올림픽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딴 도마의 신양학선(20) 선수의 집은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단칸방이었다. 양학선이 금메달을 딴 다음날인 7일 오후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남동마을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난 어머니 기숙향(43)씨는 밤새 잠을 설친 피곤한 모습에도 마음만은 뿌듯한 듯했다.

 

지난 4일 밤 꿈에 아들이 갖고 있던 메달을 다른 동료들에게 주더군요. 그래서 다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는데 금메달을 딸 것이니까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비닐하우스 안 6.6(2) 남짓 잠자는 방에 들어서니, 양학선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딴 메달과 함께 가족 사진이 맨 위에 걸려 있었다. 형제 중 차남인 양학선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들이었다. 태릉선수촌에서 받은 훈련비뿐 아니라 외부에서 지원받는 돈도 대부분 부모에게 보냈다고 한다.

 

◀양 선수의 아버지 양관권씨가 비닐하우스 집 안에서 아들이 딴 메달들을 보여주고 있다.

 

미장공으로 일하던 아버지 양관권(53)씨는 몇 해 전 공사중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최근에는 오른쪽 손목도 다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허리도 좋지 않아 일을 나가지 못해 2년 전 이곳으로 옮겨왔다.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이곳에 연고는 없지만, 지인의 소개로 이곳으로 귀농해 논과 밭 9000를 경작하고 있다.

 

양씨는 두 아들에게 남의 것은 똥이니까, 사기치지 말라며 엄하게 가르쳤다고 했다. 그는 라면을 좋아한다고 보도됐는데 못살아서가 아니라 원래 라면을 좋아했고, 요즘 세상에 라면만 먹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학선이가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은 것처럼, 후배 선수들이 닮을 수 있는 모범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학선 금메달은 엄마 꿈 때문

 

비닐하우스 집은 더위를 피하려 검은색 차광막으로 덮여 있었고, 근처에서 닭, 거위, 칠면조, 염소 등을 100여마리 키우고 있다. 아버지는 학선이가 어쩌다 집에 오면 키우던 가축을 잡아서 영양 보충을 시켰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잠자는 곳 옆에 축사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냄새가 나서 일반 사람은 비위가 상해 못 버틸 텐데도 아들은 잘 참아줬다고 말했다.

 

남동마을 들머리 마을회관 앞에는 학선군 금메달 획득이라는 펼침막이 전봇대에 내걸렸다. 양학선이 금메달을 왼손에 쥐고서 깨무는 모습도 담겼다.

 

마을 이장 양영회(64)씨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모습을 방송에 내보는 게 시쳇말로 쪽팔릴수도 있겠지만, 개의치 않는 양 선수의 모습이 기특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주민 김봉임(83)씨는 양 선수 부모들도 주민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들이 좋다고 말했다.

 

양학선의 형편이 알려지자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주택건설업체 에스엠(SM)그룹은 광주광역시에 신축중인 115아파트를 선물하겠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도 양 선수를 후원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 ·사진 박임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