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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에 대한 지식인들의 생각은?

풍월 사선암 2012. 7. 29. 08:03

안철수에 대한 지식인들의 생각은?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지식인들의 생각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기성 정치의 외부로부터 날아와 기성 정치에 박힌 유탄이다. 탄환의 파괴력은 지각변동 수준이다. 여당 유력 후보가 독점하고 있던 대세론이 단숨에 무너졌다. 야당 후보들의 존재감은 크게 약화했다. 책 출간과 방송 출연 이후 실시한 일부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50%를 넘겼다. 지난해 가을에 이어 올 여름 폭염 속으로 또다시 찾아온 안철수 현상시즌 2의 풍경들이다.

 

대선까지 5개월도 남지 않았다. ‘진앙지안철수 원장은 그럼에도 대선 출마 여부는 열린 가능성으로 남겨놓았다. “제가 생각을 밝혔는데 기대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저는 자격이 없는 것이고, 제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자·전문가 등 우리 사회 지식인들에게 안철수 원장의 행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동의를 구하고 출마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은 타당한가?’ ‘안 원장은 유권자들에게 그를 검증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있는가?’ ‘안 원장에 대한 기대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안 원장이 현실정치에서 부딪히게 될 어려움은 무엇인가?’ 20여명에게 전화해 15명의 답변을 들었다. 여기에 안 원장의 대담집에 대한 평가도 함께 들었다. 동의와 비판, 기대와 회의가 엇갈렸다. <편집자 주>

 

동의를 구하고 출마 여부를 결정한다?

 

정치인들은 출마를 선언한 다음 국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는 수순을 밟는다. 안 원장은 반대다. 그는 국민들의 생각을 물은 뒤 출마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정당 외부에서의 행위라는 의미에서 비정치적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응답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가치판단에서는 첨예하게 입장이 갈렸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안철수재단(가칭) 설립 기자회견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강인철 변호사의 계획을 듣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민주정치의 핵심축은 정당과 선거이며, 정치지도자로 나서려는 이가 그 외부에서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의 기반을 허무는 행동이라는 게 비판의 요지다. 박명림 교수(연세대·정치학)아주 위험하고 비민주적이고 무책임한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안 원장은 토크 콘서트, 출판,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 정치 밖에서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제도정치 안으로 들어와서 그 안에서 민주주의의 방식을 통해 국민에게 정책을 제시하고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참여한 다음 지지를 구하는 게 아니라 지지해주면 나오겠다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아무리 우리 정치에 문제가 많다고 해도 정치를 부정하고 정당을 무시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신율 교수(명지대·정치학)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선거는 왜 하나. 선거가 바로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후보자가 선거 전에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 국민들이 그것을 선택하는 과정이 민주정치에서의 선거인데, 안 원장은 본인이 국민을 선택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우리 정당정치에 문제가 많지만 지지고 볶고 욕도 하면서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정치과정을 초월해 정치를 하겠다면, 그것은 데마고그(선동가)라고 비판했다. 최태욱 교수(한림대 국제대학원·국제정치경제)안 원장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정당정치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비판론의 맞은편에는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처럼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로 이상할 게 없다고 보는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미국학)자신의 비전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과 반향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직에 대해 상당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기존 정치권의 정치공학적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의 파행이 낳은 특수한 상황에 주목하자는 시각도 있다. 신광영 교수(중앙대·사회학)정당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통할 수 없는 방식이다. 안 원장은 자신에 대한 지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한 다음 결정하려고 한다. 굉장히 특이한 상황인데, 한국 현대정치의 파행이 낳은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경희대·문화평론가)의 생각도 이와 유사한 지점에 서 있다. “민주적 절차라는 것은 정당정치의 절차를 말하는 것인데, 지금은 국민들이 그 정당정치의 절차에 기대가 없다. 안 원장은 책에 밝힌 정책 비전에 대해 국민들이 동의를 해주면 나오겠다는 것인데, 정당정치의 절차와는 다르지만 그 나름대로 일정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본다. 정당정치 없는 정치는 불가능하겠지만 정당정치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는 개혁 의지가 정당 외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검증할 시간은 충분한가?

 

내홍 상태인 통합진보당을 제외하면, 여야 정당 대선후보자들은 모두 윤곽이 드러나 경합 중이다. 안 원장이 지금 당장 국민들의 동의를 확인해 출마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최대로 잡아도 5개월이 안 된다. 유권자들은 그의 가치와 철학, 정책 비전과 구상을 충분히 파악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박명림 교수는 경제규모 10위권 국가에서 지지도 12위를 다투는 후보가 대선 5개월 전까지도 출마 선언을 안 하는 건 국제적 조롱거리라며 만약 향후 안 원장이 출마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보수후보의 지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민주주의 핵심은 정치적 책임성인데, 그런 점에서 안 원장은 매우 위험한 정치적 곡예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욱 교수는 며칠 전에 안 원장의 책을 읽은 사람들과 토론을 했다. 훌륭하다고 칭찬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책을 잘 쓴다고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사회 여러 부문의 이익과 갈등과 균열을 조정하고 통합해야 하는 자리인데, 국민들은 안 원장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인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안병진 교수는 지금 중요한 건 정치지도자가 시대의 결을 얼마나 잘 읽고 국민과 공감을 잘 하느냐는 것이다. 그걸 검증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는 한국 정치에서 그런 검증이 이루어진 선거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에서 대중들의 기억은 두 달을 넘기지 않는다. 두 달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처럼 1년 전부터 대선 경쟁이 이뤄지기 힘들다.”

 

안철수 원장에 대한 기대감의 정체는?

 

안철수 원장 현상의 정체에 대한 진단은 응답자들의 견해가 일치했다.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그것이다. 새삼스러운 지적은 아니다. 몇 가지 짚어볼 대목은 있다. 전원책 변호사는 기존 후보들 사이의 정책적 차이가 없다. 정책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일종의 인기투표 같은 경향이 나타난다. 안철수 원장은 이 여백에서 등장한 인물이라고 봤다. 이택광 교수는 안철수 원장에게는 박근혜 전 대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박근혜가 공주라면 안철수는 왕자다. 둘 다 왕족이라면 기왕이면 더 참신한 사람을 선택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는 부드러움에 주목했다.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을 다 겪으면서 과거의 정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국민들은 구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혁명을 원하는데, 다만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라 굉장히 부드럽고 신뢰감을 주며 자신들과 공감하는 방법으로 그런 변화를 추구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상이 공동대표는 민주당 책임론을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를 잘하고 있다.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로 날아야 하는데, 보수쪽 날개는 문제가 없다. 안 원장에 대한 지지는 새누리당의 대안이 아니라 민주당의 대안을 찾으려는 열망이라고 말했다. 장덕진 교수(서울대·사회학)그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철수 원장의 지지 기반은 야권보다는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 기반과 겹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안 원장의 정책적 행동반경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넓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보적 방향으로의 정치개혁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모범답안?

 

◀안철수 원장은 의사-경영자-교수를 거치며 성공적인 이력을 쌓았다. 정치인 안철수도 성공할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20085월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 경향신문과 인터뷰했을 당시의 안 원장.

 

<안철수의 생각>은 안 원장이 자신의 정책 구상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밝힌 책이다. 안 원장 입장에서는 자신을 유력 대선후보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희연 교수(성공회대·사회학)안철수 원장의 맥시멈(최대치)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 후보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설정했지만 더 좌클릭할 여지는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그 점에서 좌파들이 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보수 쪽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보수화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은 다행이다라고 평가했다. 김기원 교수(방송통신대·경제학)눈에 번쩍 뜨이는 부분은 없다. 그냥 모범답안이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정리한 것인데 그건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괜찮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것 같다. 큰 오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는 안 원장이 오랜 시간 뜸을 들였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책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안 원장이 정책 결정에 필요한 문제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와 정책의 현실적합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실망의 근거로 들었다.

 

반면 녹색당 창당에 참여했던 하승수 변호사는 구체성은 떨어진다고 봤지만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수요관리와 재생에너지 확대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 방향성은 올바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안보와 평화의 문제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다른 결론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안 원장은 책에서 설득과 소통의 과정이 생략된 채 강행된 강정마을 공사는 무리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대외정책에 있어서 각자 다른 색깔을 취해온 정부들이 모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다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 판단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안철수 원장은 출마할까. 안 원장은 방송에서 조만간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는데, 역대 최단시간 최다부수 판매, 박근혜 전 대표와 문재인 이사장을 뛰어넘는 <힐링캠프> 시청률, 50%대의 여론조사 지지율 등 외부 조건은 그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안 원장이 현실정치에서 맞닥뜨릴 난관들은 어떤 것일까. 안 원장은 기존 정당과 분명한 선을 그으며 정당정치의 밖에서 기존 정당의 존재감을 무력화하는 위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 돌입하게 되면 그 정당 시스템으로의 편입 또는 그것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안 교수의 가장 유력한 대선 출마 경로가 야권 최종 승자와의 단일화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안병진 교수는 네거티브 공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봤다. 김기원 교수는 그동안 안 원장은 멘토로서의 소통만 해왔다.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다. 모범답안만을 말해왔지 치고받는 토론을 해본 적이 없다. 얼마나 소화된 내용을 내놓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문제는 대선을 치르는 데 필요한 확고한 정당 기반의 부재다.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이 문제를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당 기반의 부재에 더해 정당정치 경험의 결핍 때문이다. 윤평중 교수(한신대·정치철학)현실정치는 집단간 이해가 충돌하는 아수라다. 현실정치 경험의 부족 때문에 집권하더라도 엄청난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종일 교수(KDI국제정책대학원·경제학)안 원장은 좋은 마음과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이지만 최고경영자(CEO) 경험만으로 경제정책을 하는 건 아주 위험하다. 주위에 경륜과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대표는 집권한다면 정당 기반의 정치가 아니라 청와대를 중심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태욱 교수는 정당에 대한 장악력, 정당 권력이 없으면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힘들다. 관료를 통제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집권 이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역대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집권 전에 국민들이 투사한 거대한 열망이 집권 후에는 엄청난 실망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택광 교수는 현재의 정치구도가 유지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도 안철수 원장이 제대로 된 보수정치의 틀을 정립한다면 정치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입력 : 2012-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