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성공하지 못한 히말라야 원정에 대한 기록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풍월 사선암 2012. 6. 16. 00:28

  

성공하지 못한 히말라야 원정에 대한 기록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래, 여기가 히말라야구나.

산봉우리들이 앞 다투어 달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다.

갈라지고 찢겨진 하늘의 화폭에서

출발을 앞둔 산봉우리들이 정지선 앞에서 한순간 멈췄다.

광활한 구름의 사막에 구멍이 뻥 뚫렸다.

무를 향한 돌진.

메아리 - 순백의 소리 없는 몸짓.

그리고 적막.

 

예티, 까마득한 아래, 저곳에선 오늘이 수요일이다.

거기에는 문자도 있고, 빵도 있다.

2 곱하기 24.

서서히 눈이 녹는 중이다.

"네 조각으로 썰어놓은 붉은 사과가 있네"

흥겨운 노랫소리도 있다.

 

예티, 범죄가 난무하는 건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다.

예티, 그곳의 모든 단어들이

죽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대대로 '희망'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것은 망각이 주는 선물.

너는 보게 되리라.

폐허 속에서도 끊임없이 태어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예티, 우리이겐 세익스피어가 있다.

예티, 우리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예티, 땅거미가 지면

우리는 전등을 켠다.

 

여기는 달나라도, 지구도 아니다.

눈물조차 얼어붙은 혹한의 땅이다.

, 예티여, 반쯤은 달나라 사람이 되어버린 너.

다시 한번 생각해줄 순 없겠니? 돌아와주렴!

 

사방에서 눈이 쏟아져 내리는 이곳에서

예티를 향해 외쳤다.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발을 구르며,

순백의 설원에서,

그 영원 속에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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