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스스로 만들어 내는 불안과 두려움

풍월 사선암 2012. 4. 21. 13:29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스스로 만들어 내는 불안과 두려움

 

기분 좋은 표현 하나가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모두가 나를 사랑해줄 때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나를 시기해 나와 경쟁하려 하거나

나를 넘어뜨리려는 대상이 생길 때에는 불안해진다.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우지 못했을 때에도 막연한 불안이 엄습한다.

이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불안을 부추기기도 한다.

   

남자들이 갖는 불안과 두려움의 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나만 믿어봐'라고 말하고 싶은데

스스로에게서 믿을 만한 구석은 보이지 않고,

결국 여기에서 오는 답답함은 현실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부른다.

내가 원하는 모습은 절대로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은 현실 속에서 행복할 수 없다.

사람들이 나보다 잘난 사람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현재의 내 모습보다 더 잘난 사람이 돼야 한다.

 

그래서 부족한 능력을 채우기 위해 이른 새벽 어학원을 오가며 공부를 하고,

밤잠을 설쳐가면서 많은 책을 읽고 학점을 취득했다.

승진시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았다.

그런데 더 이상 승진은 되지 않고 있다.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창업할 만한 재정능력도,

특별한 콘텐츠도 하나 없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책상 하나만 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나의 미래가 푸른 초원이 아니라 천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절벽 끝처럼 여겨진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인생이다.

 

그런데 그런 불안과 두려움은

과연 누가 가져다 준 것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름 아닌 나다.

누가 내게 불안을 심어주지도, 두려움을 키우기 위해 나를 자극하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 내가 처한 현실을 불안해했고,

나 스스로 내 미래를 두려움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마치 큰 키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난쟁이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고 할까.

물론 현실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극복해왔고 잘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힘들다고 불안까지 끌어안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다.

솔직히 나의 미래는 준비된 적이 없었다.

온갖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성장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두려움보다는 투지가 강했고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가능했다.

중년은 주위의 많은 것들에서 스스로 좌절감을 갖게 되는 시기다.

나의 삶을 바르게 이해하고 스스로를 균형 있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지나친 과대평가를 시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마흔 이후 삼십 년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초로

나만이 이뤄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는 시기다.

마지막으로 내가 꿈꾸던 일을 준비하고 시도해 봐야 할 시점이다.

미래를 위한 발걸음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다가올 수도 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때론 절벽 끝에서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딛는

무모함을 선택해야만 할 때도 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발로 걸었던 인생이

하늘을 나는 인생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

나의 미래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 차 있는 미지의 시공간이다.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면 새로운 길을 용기 있게 준비해보자.

변화가 필요하다면 변화를 시작하자.

스스로 만든 불안과 두려움의 감옥에 자신을 가둬 두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해보자.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