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blog/2040B94A4F6E67D724)
자식을 놓아야 부모가 산다
결혼식장. 웨딩마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부의 아버지가
면사포를 쓴 딸을 데리고 입장한다.
신부를 신랑에게 인계한 아버지는 사위의 등을 두드리며
“잘 부탁하네”라는 당부를 남기고
아내에게 달려가 손을 잡고 식장을 나선다.
대기시켜 둔 스포츠카에 올라탄 부부는 단둘이 저녁노을이 가득한
바닷가 도로를 달리며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다.
‘50세 이후의 자유’를 내세운 한 생명보험 회사의 CF다.
아비 노릇하기가 점점 힘들어져서 그런가, 볼 때마다 부러운 생각이 든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43FFC4A4F6E6A642D)
끝없는 희생으로 평생 고통받아
아들이 사업을 하다 진 빚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난
명문 사립대 총장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이가 적지 않다.
아버지가 평생 쌓아올린 공든 탑이 자식으로 인해
송두리째 무너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 대학 총장뿐이랴.
겉보기에는 무탈해 보여도 자식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부모가 적지 않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73B9A4A4F6E6A6530)
집을 넓혀 달라는 40대 아들과 며느리의 성화로
아파트 평수를 줄인 부모가 있고,
자녀들 결혼시킬 때마다 더 먼 변두리로 이사 간 부부도 있다.
자식의 빚 때문에 늘그막에 단칸 전세방을 전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연금마저 차압당한 이도 있다.
뼈 빠지게 교육시키고 직장까지 얻게 해 결혼까지 시켜 주었지만
철딱서니 없는 자식들은 끝까지 부모의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한다.
자녀들이 태어나 부모에게 준 기쁨은 잠시뿐, 그 대가는 길고 혹독하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348884A4F6E67D81D)
지난해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6 전국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부모 열 명 중 아홉 명가량이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거나
혼인 취업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자녀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있는 1만117가구를 대상으로 양육 책임 시기를 조사한 결과,
‘대학 졸업 때까지’라는 응답이 46.3%에 달했다.
이어 ‘혼인할 때까지’가 27.0%, ‘취업할 때까지’가 11.9%로 뒤를 이었다.
평생 자녀를 책임지겠다는 의미인 ‘언제(까지)라도’는 5.5%였다.
선진국 평균인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8.6%에 불과했다.
자녀들에 대한 한국 부모들의
남다른 집착과 희생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수치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94C86504F6E67D91F)
6·25전쟁 전후 태어난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인 현재의 50대는
우리 사회에서 ‘효(孝)를 행한 마지막 세대요,
효를 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수명이 늘어나고 직장에서 밀려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부분 수입이 없는 노후 30년을 맞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세대는 너 나 할 것 없이
언제 어떻게 아름답게 자녀들을 ‘놓아 버릴’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세상에서 가장 악성 보험은 자식’이라는 영국 속담도 있지 않은가.
![](https://t1.daumcdn.net/cfile/blog/125056504F6E67DA1B)
고통분담 통해 독립심 심어줘야
주변에 지혜롭게 자녀들을 독립시킬 준비를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식들에게 도리는 하되 희생은 하지 않겠다’고 작심한 뒤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이들은 우선 집안의 재정상태와 월수입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자녀들에게 설명해 준다.
부모가 자식들 몰래 끙끙거리면서 무리할 것이 아니라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부의 결속과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93B9A4A4F6E67D628)
대학을 마칠 때까지 학비는 대 주고 먹고 자는 것은 해결해 줄 테니
그 이외의 것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통보한 부부도 있다.
성인 자녀의 독립심 고취를 위해
방 청소와 빨래를 해 주지 않는 경우도 봤다.
“한국의 모든 부모가 더는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자식에게 들이는 돈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외치는 이코노미스트도 만났다.
얼마 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한국만 유일하게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도
한국 부모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이유다.
<동아일보 / 오늘과 내일/오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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