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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울음소리, 1000만원

풍월 사선암 2012. 2. 18. 08:36

[Weekend] 이 울음소리, 1000만원

 

출산비용 치솟아 출산 전후에만 800~1000만원 필요아이 낳기 두렵다

출산·육아용품 업체들, 값비싼 제품 집중 출시빚내서 출산 준비하는 '베이비 푸어' 현상도

 

오는 3월 출산을 앞둔 회사원 이서정(가명·32)씨는 최근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다. 출산 전 초음파 등 검사비용 150만원, 출산용품 준비 200만원, 분만비용 100~200만원, 산후조리원비 250~350만원 등 분만을 전후해 두 달간 900만원 정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출산 전에 드는 태아보험에다 분유·기저귀와 백일·돌잔치 비용 등을 감안하면 출산 전후에 들어가는 돈이 1000만원이 훨씬 넘을 것"이라며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할 때 월 100만원이 넘는 육아 도우미 비용까지 감당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출산율(가임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은 아이 수)1.22(2010)까지 떨어지면서 출산·육아용품 업체들이 값비싼 프리미엄 제품을 집중적으로 출시해 매출 감소를 메우려 하면서 '출산비용 1000만원 시대'가 열리고 있다.

 

출산·육아비용만큼은 아끼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임산부들이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빚까지 지게 되는 '베이비 푸어'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 감소 때문에 프리미엄 제품·서비스가 늘어나고 이 때문에 출산·육아비용은 높아지고 다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5월 출산 예정인 박모(30)씨는 산후조리원을 알아보다 천문학적 비용에 깜짝 놀랐다. 2주간 머무는 비용이 최소 150만원에서 400만원 정도였기 때문이다. 박씨는 "서울 강남의 연예인들이 주로 찾는 산후조리원은 1200만원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다""빚을 내 조리원에 들어갔다는 친구 얘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경제적 부담은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대표적 이유다. 지난달 출산한 최모(33)씨는 "백화점을 다녀보니 유모차 1대에 160만원, 유아용 점퍼가 30만원에 팔렸다"면서 "동네 시장에 가도 유모차가 40만원, 유아용 카시트가 30만원 하더라"고 말했다.

 

여성 포털 이지데이가 지난달 주부 6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희망하는 자녀 수는 '2명 이상'(77)이었지만 실제 2명 이상 낳은 주부는 10에 불과했다. 저출산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46)이었다. 임신을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 역시 '경제적 안정성'(61)이었다.

 

결혼 3년차인 김모(31)씨는 "첫째 출산을 준비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둘째는 꿈도 꿀 수 없을 것 같다""출산부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니 요즘 하나만 낳는 사람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출산 줄어도유모차 수입 10년새 20배 늘어

 

"한명만 럭셔리하게" 유아용품 점점 고급화

출산용품 전체 시장 줄지만 프리미엄 제품은 급성장맞벌이 직장인 58% "육아비에 경제적 부담 느껴"

 

3월 출산을 앞둔 허모(30)씨는 신생아 침대를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갔다가 너무 비싸 발길을 돌렸다. 원목 침대에 매트리스, 아기 보호용 범퍼까지 합해 간단히 100만원이 넘었기 때문이다. 허씨는 "대형마트에서도 가격이 70만원이 넘어 인터넷 대여 사이트에서 빌려 쓰거나 그냥 이불만 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면서도 "처음부터 아이에게 잘 못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최근 출산과 육아비용이 치솟는 것은 여성 1명당 1.22명에 불과한 저()출산으로 자녀 수가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VIB(Very Important Baby·매우 소중한 아이)'신드롬과 관련이 깊다. 부유층은 물론 서민층까지 '하나 있는 아이만큼은 소중하게 키우겠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고 업체들은 이를 활용해 고급 제품과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으며 유아용품의 가격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

 

이로 인해 출산율 저하로 유아용품의 전체 매출은 줄어들지만 '프리미엄' 제품은 더 잘 팔리는 '고급품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대형마트인 이마트의 지난해 분유 매출은 2010년에 비해 2.7줄었지만 프리미엄 제품은 7.5정도 매출이 늘었다. 분유업체들은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으며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써 남양유업은 지난해 8.4, 매일유업은 201012.3, 일동후디스는 이달 5.8, 각각 분유값을 올렸다.

   

올 들어 매출 감소로 고전하고 있는 백화점에서도 '프리미엄 유아용품'은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전체 유아·아동복 판매량에서 버버리·구찌·랄프로렌 등 프리미엄 브랜드 비중은 200723.5에서 지난해 37.6까지 늘었다. 주모 윤모(32)씨는 "백화점에 가보면 유명 브랜드 제품이 아닌 게 없어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로 인해 아이의 부모 외에 조부모, 외조부모, 결혼 안 한 골드미스 이모와 고모까지 '에잇 포켓(Eight Pocket)'이 한 아이를 위해 지갑을 열고 있다.

 

최근 출산용품을 구입한 한모(34)씨는 "너무 비싸 주변에서 좀 얻어 쓰고 싶지만 '첫 아이인데 쓰던 걸 줘도 괜찮겠냐'며 주변에서 물려주는 것조차 꺼리더라""저렴한 출산용품을 구입하면서도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의 유모차 수입액은 출산율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2010185만달러(21억여원)에서 20103912만달러(440억여원)20배 이상 급증했다.

 

90~160만원 정도 하는 제대혈 채취·보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제대혈이란 탯줄에서 채취한 혈액으로 난치성 질환에 걸리면 이를 활용해 치료할 수 있다. 2009392800건이던 보관 제대혈은 2010443000건으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맞벌이를 하는 부부들까지 아이 낳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김모(35)씨는 "결혼할 때 집과 세간을 마련하느라 빚을 져 생활이 빠듯하다""둘째를 낳기 어렵다"고 말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미취학 아동을 둔 직장인 190명을 대상으로 육아비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맞벌이 직장인의 한 달 평균 소득(463만원) 가운데 육아비로 지출되는 비용은 31.4(145만원)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8.4"육아비용에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는 "현재 소비자들은 안 해도 되는 것을 너무 많이 하고 있고, 이 때문에 출산시장이 기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정부가 나서서 지나치게 가격이 높은 품목을 조사해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 기자 / 입력 : 2012.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