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철이네 우편함

풍월 사선암 2012. 1. 20. 17:05

 

철이네 우편함

 

철이네 우편함은 강 이 편에 있습니다.

집배원 아저씨가 강 건너 오시는 게 미안해

이 편 강가 숲 속 소나무에 우편함을

달아 놓았답니다.

며칠에 한번씩 배를 타고 건너와

편지를 찾아가는 철이 아빠.

 

우편함 속에 할미새 부부가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알록달록 귀여운 새알을

낳았답니다.

 

철이 아빠는

옆 소나무에 바구니를 하나 달아놓고

글을 써 붙였습니다.

"집배원 아저씨, 편지는 여기에 넣어주셔요."

"우편함에는 산새가 새끼를 치고 있어요."

 

호기심에 살금 살금 다가가

우편함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솜털 보송한 새끼들이 어미가 온 줄 알고

노란 입을 짝짝 벌립니다.

나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얼른 뒷걸음쳐 도망쳤습니다.

 

어린 것들이 다 자라 날개가 돋치면

철이 아빠의 고마움을 부리에 물고

저 파란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습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28년 만의 기적'

 

1984년엔 아버지, 2012년엔 아들이 똑같이 童詩 당선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적이고 축복입니다."(아버지)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버지 생각이 가장 먼저 났습니다."(아들)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28년의 시간이 흘러 '부자'(父子) 당선자를 냈다. 올해 동시 당선자는 김영두(46).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는 그의 부친인 김성수(68)씨다. 13녀 중 장남이 40대 중반의 나이에 시인 아버지의 뒤를 이은 것이다.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그저 장할 따름"이라고 말할 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흔들렸다.

 

2012당선자인 아들 김영두(왼쪽)씨와 1984년 당선자인 아버지 김성수 시인

 

대학교 1학년 시절부터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아버지는 13번 떨어지고 14번 만에 당선했다고 했다. 반면 아들은 첫 도전에서의 등단. 강원도 원주시청 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워낙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동안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혼자 습작했다"면서 "지금도 믿기지가 않고 어리둥절하다"고 했다.

 

원주에서 함께 올라온 초로의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중년의 아들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이야기 했다. 등단에의 집념으로 밤마다 시를 쓰는 아버지를 위해 저녁 9시만 되면 강제로 자야 했던 어린 시절. 그는 "더 놀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아버지가 시 쓰는 동안에는 가족들이 쥐죽은 듯 잠만 잤다"고 그 시절을 추억했다. 그리고 이제 '시인의 아들'이라는 후광에서 벗어나겠다는 당찬 포부를 이야기했다.

 

아들의 이번 동시 당선작은 '철이네 우편함'. 강 건너 우편함에 산새가 새끼를 치는 바람에 옆 소나무에 바구니를 하나 달아놓은 산골 소년의 순박함을 표현한 시다. 10여년 전 아버지가 실제 목격했던 풍경이기도 하다. 당선 소식을 듣고, 부자는 이 동시의 공간적 배경이 됐던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주천강을 찾아갔다고 했다. 아쉽게도 우체통은 사라지고 소나무만 남아있었다. '시인의 아들'에서 이제 당당하게 '시인'이 된 아들은 "자연을 알아가는 시를 계속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고, "반드시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겠다"며 활짝 웃었다. 아버지의 동생이자 그의 삼촌은 강원문협 사무국장 김양수 시인. 아버지 김성수 시인은 지금까지 동시집 '휘파람새의 노래', 시집 '꽃배 떠가는 섬강 팔십리' '빈 배낭 속엔 달빛만 가득하고' '별들이 놓은 징검다리' '그리움의 무게' 등을 펴냈다. 2대를 잇는 시인 집안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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