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가는 곳마다 거절, 또 좌절… 키가 1㎝씩 줄어드는 것 같았지

풍월 사선암 2012. 1. 7. 11:56

"가는 곳마다 거절, 또 좌절키가 1씩 줄어드는 것 같았지"

 

이지민 소설가

"6년간 이력서만 400

인턴만 전전하면서 꽃다운 시절 다 바쳤는데 이젠 나이가 많다고"

 

서울의 한 외국어고와 유명 사립대를 졸업한 김태연(28)씨는 지난 6년간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대기업·중소기업, 재단, 협회 등지에 총 400번 넘게 원서를 썼다. 그러나 이 기간 중 공기업 인턴으로 넉 달, 리서치회사 인턴으로 석 달 일한 게 그의 취업 경력의 전부다. 중소기업 세 곳은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전공(한문학)이 별로다' '더 젊은 여성이 필요하다' 등의 이유로 탈락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러나 여전히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난 1일부터는 한 정부부처 '블로그 기자단'에 뽑혀 활동하고 있다. "제 인생의 목표는 '취업 성공 수기'를 쓰는 겁니다. 나이 든 여자도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4] 소설가 이지민, 구직장수생 김태연씨에게

 

성냥팔이 소녀 같은 눈으로 불야성의 도시를 우러러보던 내 상처투성이 20

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온 노력과 시간을 퍼부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젊은 은 늘 고개를 숙였다

이 아프고 수상한 세월을 버티는 것만도 존경스러워

실망은 영혼을 잠식하지

훗날 이 시절을 호탕하게 비웃기 위해서 오늘은 일단, 최선을 다하자

 

20대의 꿈은 1억을 모으는 것도, 결혼을 잘하는 것도, 산티아고 순례길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전공을 살려 생활비를 벌어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안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야무진 꿈을 가진 내가 선택한 직업이 대한민국 비정규직의 블랙홀인 충무로의 시나리오 작가였으니 말해 무엇 하리오. 당시 나의 연봉은 대기업 회사원의 한 달 봉급보다 적었으나 민족이 대이동을 하는 명절에도 항상 책상 앞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의 삶이란 널리 알려진 대로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글을 쓰고, 심지어 계약을 해도 돈은 돌지 않는 놀라운 삶. 나는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를 돌리듯 영화사들을 돌며 내 작품을 보여주었다.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이 자신의 무공을 시험하기 위해 여러 문파의 도장을 돌며 '도장깨기'를 했듯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깨진 건 바로 나였다. 그래도 굶지 않고 계속 그 짓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반백수 생활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도대체 작품은 언제 완성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불끈해서 "이 바닥은 한방이면 끝이야!"를 외치는 흡사 도박중독자의 증상을 보이곤 했던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기에, 그래도 고생이라도 공짜로 주어지니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며 참다 보니 어느새 우울증세도 나타났다. 거듭된 거절과 거부에 분기탱천해도 모자랄 판에 안타깝게도 나는 마지막 남은 성냥 한 개비를 쥔 성냥팔이 소녀의 처량한 시점으로 불야성의 도시를 우러러보기에 이른 것이다. 당당하게 걸어가는 도심의 직장인들을 바라보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처음부터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닐까. 어쩌면 세상은 애초에 '월급을 받는 영혼''월급을 받지 못하는 영혼'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감상적인 열패감에 젖기도 했던 것이다.

 

◀지난 6년간 400번이 넘는 취업 실패를 경험한 김태연씨가 3일 서울의 한 서점에서 수험서를 보고 있다. 김씨는 내 목표는 취업에 성공해서 취업 성공 수기를 쓰는 것이라며 결코 취업 성공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상머리가 주무대였던 당시의 나를 현재 전쟁과도 같은 취업전선에서 사력을 다하고 있는 청년 구직자와 비교하는 것부터 그들에게 사과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거의 매번 당신은 시류에 맞지 않는다는 평을 들으며 재능을 의심받았던 나이기에 그들의 아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갑의 기준에 맞는 을이 되기 위하여 온 노력과 시간을 퍼부었으나 언제나 갑은 만족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젊은 을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친 열정이 무의미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키가 1cm씩 줄어드는 그 암담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 실패의 패턴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도전의 의지마저 갉아먹는다는 것이었다.

 

실망은 영혼을 잠식한다, 는 사실을 알기에 동생뻘 되는 청춘들에게 좌절도 젊음의 특권이라고 툭툭 어깨를 치며 순진한 격려만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요즘 둘러보면 안 아픈 사람이 없다. 아이도 학원 다니느라 아프고, ·고생도 시험 보느라 아프고, 부모님도 돈 버느라 아프고, 그야말로 아프니까 대한민국이다. 이 아프고 수상한 세월을 정면으로 통과하기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바치고 있는 청춘들은 더없이 짠하고 대견하다. 그들이 버티는 것만 봐도 존경스럽고 그들이 분노하면 오히려 힘을 얻는다. 세상이 변하기를 갈망하다 먼저 사라져버리는 젊음의 한계는 늘 서글프다. 어쩌면 우리의 젊은 세대는 좋아지겠지 나아지겠지 여린 희망만 품다 얼떨결에 한 번뿐인 청춘을 떠나보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이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확실히 조상님들보다는 오래 살 것이다.

 

일단 멀리 내다보며 청춘의 노화를 막아보자. 훗날 이 시절을 호탕하게 비웃기 위해서 오늘은 일단 최선을 다하기로 하자.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쫄지도 말자. 실패를 많이 했다고 해서 이름이 실패로 바뀌는 사람을 본 적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