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게임 속에 웅크린 너… 얼마나 외로웠니, 아팠니

풍월 사선암 2012. 1. 7. 11:25

"게임 속에 웅크린 너얼마나 외로웠니, 아팠니"

 

서하진·소설가

밤늦게 퇴근하는 엄마, 한 달에 한두 번 보는 아빠

열한살부터 하루 8시간 게임중학생 되면서 폭력적으로

 

이성민(16·가명)군이 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만 집에 왔고, 엄마는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야 귀가했다. 게임 시간은 하루 7~8시간, 밤을 꼬박 새울 때도 있다. 엄마는 성민이의 학교 성적이 보통은 되고 학원에도 빠지지 않아 아이가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중학생이 된 성민이는 눈에 띄게 폭력적으로 변했다. 조금만 화가 나도 여동생을 때릴 듯 위협하기도 했다. 성민이는 "게임을 하면 내가 완전한 느낌이 들고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2] 소설가 서하진, 게임 중독 3 성민이에게

 

얌전히 게임만 하던 아들이 가출하고 돌아와 말했지

"엄마, 나 죽으려고 나갔어"

너그럽고 좋은 엄마라고 그때까지 난 착각했던거야

성민아 네가 즐기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단다

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소중한 사람이란 걸 잊지마

 

성민이에게. 나는 소설가란다. 교과서에 실린 작가도, 베스트셀러로 이름이 알려진 이도 아니니 나라는 사람이 네게 편지를 쓰고 무언가 힘이 될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구나.

 

내게는 아이가 셋 있단다. 어떤 부모에게나 그렇듯 귀하고 귀한 아이들이야. 아들아이가 게임 때문에 공부를 멀리하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단다. 이전에도 아이는 게임을 즐기는 편이었고 남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보여주기는 했어. 무엇엔가 마음을 뺏기면 밤을 새우는 성품이거든.

 

나는 대개 모른 척했어. 아이에게도 스트레스를 풀 통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단순하고 무식한 생각이었지. 게임의 무지막지한 흡인력을 알지 못했던 시기였으므로 저러다 말겠지, 저도 정신을 차릴 때가 오겠지, 기다렸지. 게임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서 아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거야. 정말이지 미련한 엄마였어, 나는.

 

어느 날, 그 일이 일어났어. 아이가 글쎄, 집을 나간 거야. 학원 간다고 나가서는 밤이 지나고 그 다음 날 낮과 밤이 지나도 감감. 엄마들은 그런 경우를 당하면 제정신이 아니게 된단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미친 듯이 거리를 헤매고 꺼진 휴대폰에 쉼 없이 메시지를 넣고 퍼져 앉아 울고.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 곧 돌아올 거야,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고. 갑자기 초조해져서, 너무나 무섭고 걱정이 돼서는 아이에게 엄하게 굴었던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또 울다가.

 

이틀이 지나서 아이가 돌아왔어. 친구들 몇이 온갖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낸 거였어. 돌아온 아이가 내게 물었어. 엄마, 내가 왜 집을 나갔는지 아세요? 나는 침착하게 물었단다. 왜 나갔는데? 사실 나는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긴장을 견디지 못해서, 도피할 셈으로, 잠깐의 탈출구가 필요해서. 어쨌거나 돌아왔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닌가.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미련한 엄마였어.

 

아이는 이렇게 말했단다. 엄마, 나 죽으려고 나갔어요. 나는 평생 아이의 그 나지막한 음성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세상에 내 아이가, 착하고 성실하고 얌전한 내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러니까 나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거야.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아이의 속에 부는 바람이 얼마나 참혹한지. 그래, 잘했어, 라고만 해왔던, 너그러운 듯 좋은 엄마라고 착각했던 그 시간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이었는지.

 

그날부터 우리 집의 시계는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 나와 남편, 두 동생까지 한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단다. 게임을 대신할, 몰두할 거리를 찾아 온 식구가 분주했지. 수시로 영화를 보러 다니고 물어물어 싼값에 가르쳐 준다는 승마장을 찾아갔어. 남편은 중독 강좌를 듣고, 회식도, 모임도 모조리 마다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와서 아이에게 운전을 가르쳤지.

 

지독한 말똥 냄새, 미사리 공터에서 운전대를 맡겼을 때의 조바심 사이로, 밤이면 방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어도 어느결에 빠져나가서 후줄근해져서 돌아오기를 거듭하고 그럴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날들 사이로, 느리게, 아주 천천히 시간이 지나갔단다.

 

대학생이 되고 이제는, 이제야말로 평화가 왔구나 싶던 어느 하루, 아이가 내게 물었어. 엄마가 좋아서 소설 쓰는 것과 내가 좋아서 게임하는 것과 그렇게나 다를까요? 여전히 아이는 게임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는 말했어. 네가 게임하는 것과 엄마가 소설 쓰는 것과 본질적으로 엄청나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는 살아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선택했고 네 게임이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 있다면 나도 그처럼 말릴 생각은 없다, 라고. 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기만 했어. 즐기는 것과 살아가는 방식의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었던 거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방황하던 아이는 기계공학이던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었단다. 상담 심리학을 공부해서 저처럼 어려움을 겪은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어느새 눈물이 흐르는 건 아직 그대로야. 다 안다고 생각했던 엄마, 아이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그날들이, 아이가 홀로 견뎌야 했던 그 어둠이 너무나 미안해서.

 

성민아. 지금 네 아픔이 너 혼자의 것이 아니란 걸 부디 알았으면 싶어. 이 새벽 누군가 너를 생각하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걸, 건강해질 너를 위해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너는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