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근태 前장관에 진심으로 명복 빌어…
내가 먼저 죽었어야… 기도하면서 울어"

고문했던 이근안씨 인터뷰
TV조선 제공 1980년대 '얼굴 없는 고문 기술자'로 불렸던 이근안(72)씨가 지난해 12월 30일 고문 후유증 끝에 별세한 고(故) 김근태 전 복지부 장관에 대해 뒤늦게 추도의 뜻을 밝혔다. 이씨는 11일 경기도 수원에서 TV조선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 전 장관 빈소를 찾지 않아 뉘우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상(喪) 중에 내가 변명하는 것보다는 그냥 침묵하고 있는 게 오히려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내가 나타나면 빈소가 혼란스러워질 것 같았다."
―김 전 장관의 명복을 빌었나.
"장례식 날에는 죽은 누이가 묻힌 부산 어방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드렸다. 기도하면서 장관님하고 대화를 했다. '당신은 왜 먼저 가십니까. 차라리 한살이라도 더 많은 내가 먼저 죽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1995년 여주교도소 복역 중에 김 전 장관과 만나 사죄한 것이 가식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김 장관과 만났을 때 '죄송합니다. 면목없습니다' 그랬더니 딱 끌어안으면서 '그게 개인의 잘못입니까? 시대가 만든 것이지, 저도 그만한 아량은 있습니다'라고 하더라. 평생 잊지 못한다. 참 소중한 기억이다."
―고문 피해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 있나.
"그래서 평생 한을 지고 살고 있다. 내가 고문했던 것들이 괴롭지 않으면 목사가 되었겠나. 젊은 혈기에 상사가 시키는 일이 애국인 줄 알고 물불 모르고 했던 결과가 이제 송두리째 내가 안고 가는 멍에가 됐다. 그 수모를 내 가족이 함께 받아서 너무 고통스럽다. 둘째 아들은 심장마비로 죽었고, 셋째 아들은 재작년에 막노동을 하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셋째 아들은 내가 고문기술자라고 낙인찍히자 대학도 그만두고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지금은 아내가 폐지를 주워서 생활하고 있다."
―김 전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달라.
"모란 공원 묘소는 언제든 갈 겁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 무척 애석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시면 그 세상엔 멍에 같은 건 없을 테니까 영면하시길 충심으로 빕니다."
안형영 TV조선 기자 / 2012.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