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금을 울리는 사진
벌써 꽤 오래전이다. 취재를 마치고 같이 돌아오는 신문사 동료 사진기자가 지갑을 여는데 낯익은 사진이 들어있는 게 보였다.
흙바람 속에서 힘들게 걸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찍은 유명한 저 사진이었다. 처음 저 사진을 봤을 때 눈길이 꽂힌 곳은 당연히 저 작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대여섯살이나 되었을까, 가혹한 환경에 괴로워하면서도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묘한 표정에 잠시 빠져들었다. 그 다음 부모로 보이는 두 어른의 얼굴이 보였다. 두건으로 눈 코 입을 가린 얼굴에서 유난히 강인하게 빛나는 눈빛이 나를 압도해왔다.
그 뒤로 저 사진을 볼 때마다 뒤처져 따라오는 돌아선 마지막 등장인물은 어떤 표정일지 궁금해 하곤 했다.사진의 역사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그 영웅들 중에서도 상당히 앞자리에 이름을 올릴 이가 바로 저 사진을 찍은 사진가다. 동료 사진기자가 지갑에 품고 다녔을 만큼 보도사진가라면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 사는 세상의 단면을 저렇게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작품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 사진가의 남다른 인생 행로였다.
<파라가우 방목 캠프의 딩카족> 2006년, 남부 수단.
1971년 국제커피기구에서 일하던 스물아홉살 경제학자가 아내와 함께 농업 지원차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젊은 부부의 눈앞에 펼쳐진 아프리카의 현실은 슬픔 그 자체였다. 그 슬픔을 직면한 경제학자는 아내가 갖고 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이, 아프리카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경제학자는 펜 대신 카메라를 잡고 다큐 사진가가 되었다. 그 사람이 바로 세바스치앙 살가두(1944~)다.
살가두는 온몸으로 세상을 사는 이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유럽으로 이주했던 그는 사진을 만난 뒤 자기 조국 브라질로 돌아갔다. 그리고 중남미를 누비며 원주민들을 찍은<다른 아메리카인들>(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시리즈로 세계적 사진가로 등장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잘라내 사람들 눈앞에 들이댄 <노동자들> 시리즈였다. 특히 주목받았던 사진이 사람들이마치 개미처럼 일하는 브라질 세라 페라다 금광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피라미드를 만들고 있거나 진시황의 무덤을 파고 있는 고대 노예 같은 저 사람들이 문명이 정점에 올랐다는 20세기 후반의 모습이었다는데 사람들은 놀랐다. 그의 사진은 세계 사람들을 놀래 켰고, 슬프게 했고, 그의 사진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는 선진국 사람들이 즐겁게 사서 주고받는 금, 그 금으로 상징되는 풍요로움의 이면을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처절하게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줬다. 저 브라질 광산 사진으로 그는 당대 최고의 다큐 사진가 반열에 오른다.
이후 그는 7년에 걸쳐 세계 각국 노동자들을 찍은 시리즈로 자기 작품세계를 확실히 구축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사진가 집단인 매그넘의 일원이 되어 현대 사진의 흐름을 이끄는 작가로 떠올랐다.(1994년 그는 매그넘을 탈퇴해 자신만의 에이전시 아마조나스를 만든다)
▲ 얼핏 보면 바톤을 건네는 것처럼 보이는 저 손. 뒤이어 올라오는 짐꾼을 향한 저 손은 무얼 말하는 걸까.
이후 그는 분쟁과 환경 재앙의 희생양이 되어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난민들의 세계를 사진으로 찍으며 치열한 참여 정신을 보여줬다.
살가두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초기의 고발과 기록 정신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관심을 돌리고 내면세계에 열중하고 있을 때 다시 시대정신을 담은 사진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처절함을 다루면서도 그의 사진은 아름다웠다. 인간의 가장 슬픈 모습 속에서 묘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아름다움, 그게 살가두 사진의 힘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 이상으로 그의 인생에 더 매력을 느꼈던 것은 그가 강력하고 놀라운 사진이상으로 치열하게 실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살가두는 아내와 함께 조국 브라질의 숲을 살리고 있다. 무분별한 벌목으로 망가지는 열대우림을 살리기 위해 `인스티투토 테라' 재단을 만들어 나무를 심는 작업을 벌여오고 있다. 환경 문제를 찍어 알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 나선 사진가,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살가두가 가장 오랫동안 다뤄온 주제가 `아프리카'다.
▲ 앞 친구의 등에 공책을 대고 공부하는 아이들 모습.
살가두의 아프리카 사진은 처절한 노동자나 난민 사진들과 맥을 같이 하지만 더욱 서정적이다. 이방인의 호기심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수십년 동안 찍어온 세월이 그 속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의 아프리카 사진은 다른 사진가들의 아프리카 사진보다 더 아름답고, 더 슬프다.
▲ <마타 차밭에서 일하는 아이>,1991년 르완다.
그는 "아프리카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동정심이 생긴다면 내 사진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살가두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저 사진들을 보며 동정심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의 말처럼 `동정심'보다 `동료애'가 우리에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런 감정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살가두는 그 세계적 명성에 비춰 국내에선 접하기 어려웠던 사진가다. 몇년전 안양에서 전시회가 열린 바 있으나 그의 폭넓은 사진세계를 다 전하기엔 태부족이었다. 이번 전시회는 그런 점에서 반갑다. 물론 `아프리카'에만 촛점이 맞춰진 점에서 그의 진면목이 다 드러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대형 프린트로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어딘가. 이 반가운 전시를 아직도 보지 못했다. 문화부 기자로 요즘 가장 아쉬운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아직도 영화 <아바타>를 3디로 보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예매하기도 너무 힘들다. 또 하나가 바로 이 살가두 아프리카전을 아직 못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처절한 고발성 다큐 사진보다는 서정적인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살가두는 서정적인 사진에서도 그 누구 못잖게 힘이 센데, 그 힘을 전시장에서 제대로 확인하고 싶다.
이번 전시는 앞서 일본에서 열린 뒤 우리나라로 건너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살가두가 한 인터뷰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인터뷰어가 살가두에게 물었다. "일본과 아프리카는 언뜻 보기에 전혀 다른 나라처럼 보이는데 공통점이 있습니까?" 살가두의 대답은 어땠을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 하겠는가?
살가두는 저 사진처럼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로 답했다. "일본의 엄마들은 아이가 아프면 아파하지 않습니까? 아프리카 엄마도 그렇습니다. 그런 점이 같고, 또 일본 여러분들은 평화와 좀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는데, 그것도 역시 아프리카도 같습니다."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면 우리도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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