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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에서 배울 것들

풍월 사선암 2011. 12. 16. 13:39

[장하성 칼럼] '나는 가수다'에서 배울 것들

 

실력파 가수들과 다양한 노래, 공정한 경쟁과 평가 시스템이 '나가수'의 인기 비결

탈락자도 영원한 패배자 아니라 새 팬이 생기는 아름다운 구조

정치권과 재계도 보고 배워야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 TV 가요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가 방송에 넘쳐나는 수많은 오락프로그램 중에서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차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그 답은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를 구성하고 있는 가수, 노래, 청중평가단 그리고 시청자 등 네 가지 경쟁요소가 공정경쟁과 세대통합을 만들어가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경쟁자인 가수들은 3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세대를 넘어서서 인기가수와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가 함께 선정되어 기득권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경쟁한다.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도 트로트에서 댄스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고, 1960년대 유행했던 노래부터 7080세대의 노래, 최근 젊은 세대의 노래까지 시대를 넘어서 선정된다. '나가수'의 이러한 구도에서 부모들은 랩으로 편곡된 옛 노래에 열광하는 자식을 보며, 자식들은 젊은 가수의 팬이 되는 부모를 보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세대 간 소통의 장을 만들어간다. 오락프로그램인 '나가수'가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함께 즐기는 세대통합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가수'는 경쟁의 방법과 평가에서도 어떻게 공정성이 담보되고 세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가수'7명의 가수가 두 번의 경쟁을 한 다음 종합순위로 꼴찌가 탈락하는 방식이다. 즉 한판 승부가 아니라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한 번은 가수 자신이 선택한 곡을, 두 번째는 지정곡을 불러서 균형 있게 실력을 겨룬다. 또한 한 명의 승자가 아니라 한 명의 탈락자를 가리는 경쟁이기 때문에 일등이든, 간신히 탈락을 면하든 많은 승자(勝者)를 만드는 경쟁이다. 평가 또한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청중평가단을 10대에서 50대 이상까지 세대별로 100명씩 공개모집으로 구성하기에 특정 세대의 편향이 작용할 수 없다. 실제 평가결과를 보면 상위권 가수들은 세대와 관계없이 높은 평가를 받고, 1위와 7위 사이에는 상당한 득표 차이가 있어서 특정 세대의 선호가 평가결과를 좌우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정한 경쟁은 영원한 1등도, 영원한 꼴찌도 없는 구조를 만들어서 혁신의 역동성을 만든다.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공정경쟁의 혁신성이 '나가수'에서 실현되고 있다. 지금까지 10번의 경쟁에서 1·2차 연속 1위를 한 경우는 한 번밖에 없었고, 연속해서 꼴찌를 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1차에서 1위 가수들은 2차에서 절반이 하위권으로 밀려났고, 꼴찌로 추락한 경우도 세 번이나 있었으며, 심지어 탈락자도 있었다. 반대로 1차의 꼴찌들은 절반 이상이 2차에서 중상위권으로 반전(反轉)에 성공했을 정도로 순위가 뒤바뀌는 역동적인 경쟁이 펼쳐졌다. 1차와 2차 순위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통계분석을 해본 결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락한 가수가 무대를 떠날 때에는 그가 있었기에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고 좋은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 모두가 격려와 감사를 보낸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과 평가이기에 탈락한 가수나 시청자들 모두가 아쉬워하면서도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인다. '나가수'의 또 다른 진수는 승자독식(獨食)의 구조가 아니며 탈락자마저 영원한 패배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탈락한 가수들도 새로운 팬들이 생기고 음원시장의 수요 증가로 경쟁의 과실을 함께 나눈다. 치열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탈락자에게까지 아름답고 생산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가수'가 보여주고 있다.

 

공정한 경쟁의 룰은 하루아침에 정착되기 어렵다. '나가수'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 경쟁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있었고, 제작자가 교체되고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내홍까지 겪었다. 지금도 가수 선정의 투명성과 노래 장르의 일부 치우침에 대한 시청자들의 문제 제기가 있기에 '나가수'는 더욱 공정한 구조로 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가 종속되고 희생하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세대 간 분리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창업의 성공신화는 실종된 지 오래되었고,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자살행위로 여겨질 정도로 시장은 승자의 판으로 굳어 있다. 이 모두가 기득권 세력들의 불공정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버리고 공정한 경쟁을 하면 혁신의 역동을 만들고 세대를 통합하여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과 재계는 '나는 가수다'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 : 조선일보 /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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