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다들 망한다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풍월 사선암 2011. 12. 8. 10:33

[김정호 칼럼]다들 망한다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무역대국 일군 건 기업가정신

오너경영 비판 학자들은 어디에

 

주니어 시절 취재 현장을 뛰어다니며 기업들이 잘된다는 얘기는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서 죽을 쑤면서 결국 그 탓에 망한다고 했다. 현대자동차는 세계 자동차업계의 합종연횡에서 외톨이가 되면서 10년도 못 버틸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었다.

 

반도체는 지금도 삼성전자의 가장 든든한 캐시카우다. 하지만 반도체가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 건 10여년 전에 불과하다. 1974년 시작한 반도체 사업은 20년간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자본금을 다 들어먹고 가전 중심의 삼성전자에 합병된 것이 1988, 그러고도 10년은 고난의 길이었다. 현대차가 1만명에 가까운 종업원을 정리해고한 것도 불과 15년 전이다. 대규모 적자, 캐나다 현지공장 청산 등으로 한 치 앞이 안 보일 때였다. 사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이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 전자양판점인 베스트바이나 서킷시티에서 삼성 제품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현대차가 거리에서 어떤 평가를 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랬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지금은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참으로 신통방통한 일이다. 무엇이 이들을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웠을까.

 

1992년 이건희 삼성 회장을 그의 남산 집무실인 승지원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푸석푸석한 그의 얼굴을 궁금해 하자 이 회장은 사흘째 한 잠도 못 잤다고 털어놨다. 타성에 젖은 삼성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삼성의 불치암을 도려낼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선진 기업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지를 쉬지 않고 설명했다. 7시 출근, 4시 퇴근이라는 7·4, 불량이 있다고 수백억원어치를 소각한 휴대폰.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꿨다는 신경영의 시작이었다. 글로벌 삼성은 그렇게 태어났고, 지금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오늘도 불면의 나날을 지내고 있을 것이고.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에 나선 것은 1999년이다. 빈사 직전의 현대차를 누구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바짝 타들어간 입술로 IR을 진두지휘하던 그를 취재한다는 것 자체가 외환위기의 암울함과 맞물려 고통스럽기만 했다. 오죽했으면 그의 뚝심으로 GDR 발행이 성공하자 현장에 있던 기자들까지 만세를 불렀을까. GDR 발행 직후 런던의 한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그가 내쉰 안도의 숨소리는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런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그룹을 출범시킨 뒤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을 누비며 품질경영을 외쳤다. 그리고 5년 뒤 미국 시장에서 10·10만마일 품질보증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모두가 비웃었다. 그러나 권위의 JD파워가 정 회장의 뚝심을 평가해줬다. 현대차 품질 1, 렉서스를 능가했다니 기가 찰 일이었다. 드디어 차가 팔리기 시작했다. 앨라배마 공장 건설, 에쿠스 미국 진출 등도 내부에서도 모두 반대하던 일이다.

 

하기야, 한국의 기업인들은 모두가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혁신 전문가들이다. 미국의 모든 은행들까지 삼성이 미쳤다고 할 때 대규모 반도체 투자에 나선 것이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이고,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500원짜리 지폐와 울산의 백사장 사진 한 장 들고 유조선을 수주해낸 것이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다. 이들이 세계 최빈국을 교역규모 1조달러의 무역대국으로 성장시킨 주역들이다.

 

그런데도 관변 학자들과 관료들은 미국식 전문경영인 체제를 본받아야 한다며 오너 체제를 맹비난해왔다. 이들은 과연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성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2008년에 이어 올해도 현대차 주총에서 정몽구 회장의 이사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진 국민연금은 자신들의 무지몽매함을 깨닫기나 하는지. 정치의 실패, 반자본주의, 관료주의, 적대적 지식인들이 기업가정신의 무력화를 시도할 것이라던 조지프 슘페터의 우울한 예언이 이런 것들이었는지. 그런 계절풍이 또 불고 있는 것 같다. 심히 걱정스럽다.

 

한경 입력: 2011-12-07 /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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