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엄마는 눈물을 삼키며 긴 머리를 잘랐다

풍월 사선암 2011. 12. 6. 17:05

엄마는 눈물을 삼키며 긴 머리를 잘랐다

 

무역 1조달러 돌파가발·오징어에서 스마트폰·자동차까지

"대한민국은 무역 1조달러의 개방국가"

 

1인당 무역액 올해 2만달러 사실상 세계 2

기름 한방울 안나며 석유제품서 무역흑자

중화학 등 7대 주요 산업 모두 갖춘 2대 교역국

2차 대전 이후 선진국 문턱에 이른 유일한 국가

인구 5000, 소득 2만달러 이상 7대 국가

개방과 시장경제, 기업가 정신 3박자로 성공

종속이론 추종자들 지금도 길거리서 방황

 


  

엄마와 누이는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나기를 기다렸다. 모발 수집상들은 가위를 들고 마을을 훑고 다녔다. 말 없는 그들이 다녀가고 나면 엄마와 누이들은 하얀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눈물을 감추고 부끄러운 머리를 숨겼다. 수집상들은 여인들의 머리카락을 모아 가발을 만들어 수출했고 여인들은 그 돈으로 가난한 가계를 꾸렸다. 누이들은 수출자유지역으로 취직이 되고 야간학교를 마치고 지금은 중늙은이 엄마들이 되어있다.

 

한국 무역이 어제 1조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9번째 일이다. 중국과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모두 G7에 속하는 고소득 국가들이요 한때는 세계의 일각을 경영했던 식민 종주국들이다. 한국전쟁 이후 그야말로 잿더미의 폐허 위에서 일궈낸 역사적 성취요 비교를 불허하는 세계사적 간난의 투쟁이 바로 무역 1조달러의 성취다. 세계 200여개 국가 중 식민지 독립국은 140여개다. 이 중 시쳇말로 팔자를 고친 유일한 민족이 바로 한국이다. 인구 5000만명 이상,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밖에 없다.

 

한국인을 제외하면 이런 성취를 이뤄낸 민족과 국가가 아직은 없다. 처음에는 누이들의 눈물 값인 생머리를 팔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를 팔고 스마트폰을 팔고, 최고 화질의 TV를 팔며 거대한 선박을 전 세계에 팔고 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고 하지만 석유제품을 가장 많이 팔고 있는 기적의 나라가 한국이요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19621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당시 우리나라 수출은 5600만달러, 무역액은 47800만달러였다. 그로부터 꼭 50년이 흘러 수출은 5000억달러를 넘어섰고 무역 총액은 1조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1964년 사상 첫 1억달러를 돌파할 당시 수출품은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생사, 텅스텐, 오징어였다. 1960년대 머리카락까지 모아 가발을 만들어 팔았고, 1970년대는 섬유와 합판이, 그리고 1980년대는 의류 철강판 신발 등이 주수출품이었다. 피와 땀과 눈물의 과정이었다. 당시 사이비 경제학자들은 우리도 입고 먹을 게 없는데 왜 수출을 하는가라며 자급자족형 농업국가로 가야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렇다. 북한이 바로 그길로 갔다. 그때 그렇게 주장하던 사이비들의 제자들은 지금 길거리에서 또 어린 학생들을 모아놓고 반()자유무역협정(FTA)을 선동하고 있다. 수입대체 아닌 수출진흥으로, 사회주의 아닌 시장경제로, 정부 아닌 기업가 사회로 내달린 결과가 바로 지난 50년이었다.

 

무역이 증가하면서 한국과 교역하는 국가들도 확 늘어났다. 한국을 자신들의 10대 교역국에 포함시키는 국가가 지난해엔 52개국으로 늘었다. 과거 통일신라가 아랍과 교역을 했다고 하지만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국가와 교역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요, 거의 세계 전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그렇게 대()개방국가가 되었다. 특히 FTA에 힘입어 경제영토는 더욱 넓어졌다. 최근 비준된 한·FTA까지 발효되면 우리의 경제영토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61%에 달해 세계 3위의 FTA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이제 무역 총액 2조달러를 향해 내달릴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무엇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는가. 유치산업 보호, 수입 대체, 정부 개입 같은 것들이 오늘의 한국 경제를 만들었는가. 아니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한국은 수출로 방향을 잡았고 정주영 이병철 같은 기업가를 키웠으며 두려움 없이 세계로 달려나갔다. 종속이론으로 갈 수도, 오늘의 북한처럼 전락할 가능성도 많았지만 천우신조로 그런 위기를 모두 넘어섰다. 그렇게 절벽 위로 난 길로 한국인들은 전진해왔다.

 

물론 그 길은 어렵고 험난했다. 그러나 위험을 돌파하지 않았던 그 어떤 역사적 도전도, 영웅적 성취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로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선진국이 성공한 것은 보호무역 때문이었다든가, 큰 정부가 오히려 성장률을 높인다든가, 시장경제로 성공한 나라가 없다든가 하는 궤변을 아직도 입에 달고 있다. 심지어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와는 자유무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등장한다.

 

누구라도 도전을 앞두고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길은 없다. 조그만 성공의 자만 속에서 실패가 싹트는 법이다. 더 큰 개방국가로 나아가자.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큰 국가를 건설해 나가자. 한국은 이미 5000만명 이상의 인구에 2만달러 소득을 넘어선 세계 7대 국가다. 이제 3만달러 소득에 튼실한 내수까지 갖춘 선진국으로 가자.

 

<한국경제 / 입력: 201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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