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헛되고 헛된 것 / 조병화

풍월 사선암 2011. 9. 26. 07:47

 

헛되고 헛된 것 / 조병화

 

헛되고 헛된 것이 생이라 하지만

실로 헛되고 헛된 것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생각일 뿐

언젠가 너와 내가

강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물은 흘러감에 다신 못 온다 해도

강은 항상 그 자리 흐르고 있는 것

 

이 세상 만물 만사가

헛되고 헛된 것이라 하지만

생은 다만 자릴 바꿀 뿐

강물처럼 그저 한자리 있는 것이다

 

너도 언젠가는 떠나고

나도 떠날 사람이지만

 

언젠가 너와 내가 같이 한 자리

강마을 강가 이야기하던 자리

실로 헛되고 헛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그 사실이다

 

해는 떴다 지며

떴던 곳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감에

사람은 혼자서 살다가 가면 그뿐

그 자리엔 없다 해도

 

실로 헛되고 헛된 것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생각일 뿐

강물은 흐름에 마르지 않고

너와 내가 떠남에 실로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너와 내가

강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언젠가 너와 내가 강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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