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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前 부도 직전 아르헨과 오늘의 그리스… 닮아도 너무 닮았다

풍월 사선암 2011. 9. 16. 13:49

10부도 직전 아르헨과 오늘의 그리스닮아도 너무 닮았다

 

[아르헨·그리스 '평행이론'까지]

포퓰리즘으로 막대한 부채, 통화가치 고평가 동시에 덮쳐

중도좌파 지도자 당선 뒤 긴축정책 펴다 대국민 반발

"유로존 울타리 있는 그리스, 아르헨보다는 낫다" 분석도부채는 그리스가 훨씬 심각

 

"경제 상황이 현저하게 호전되고 있으며 빚을 못 갚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내가 중도사퇴하는 일도 없다."

 

페르난도 데라루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국가부도설이 나돌던 2001725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같이 다짐했다. 하지만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데라루아 대통령은 그해 1220"야당과 주변국의 비협조가 오늘의 아르헨티나를 만들었다"는 독설을 남긴 채 사퇴했고, 사흘 뒤 아르헨티나는 모라토리엄(채무 상환 유예)을 선언했다.

 

비슷한 일이 정확히 10년 뒤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가채무가 GDP(국내총생산)157%에 이를 만큼 빚에 허덕이는 그리스가 주변국 지원을 받는 데 실패하고 결국은 모라토리엄을 넘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지난 11"최우선으로 할 일은 국가 부도를 막는 것이고, 우리는 유로존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나라는 거의 없다. 곧 아르헨티나가 걸었던 길을 따라갈 것이란 비관론이 쏟아지고 있다. 그 파장을 염려하는 국제사회의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스 상황, 10년 전 아르헨티나와 판박이

 

그리스의 최근 상황이 10년 전 아르헨티나를 떠올리게 한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해외 인터넷에서는 당시 아르헨티나와 현재 그리스를 두고 '평행이론(parallel life)'이란 분석까지 나돌 정도다.

 

 

우선 위기 원인부터 같다. 아르헨티나와 그리스는 위기를 겪기 전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정책을 남발했다. 아르헨티나의 복지정책은 '페로니즘'으로 불리며 관련 정책의 대명사로 통했을 정도이고, 그리스는 정권 교체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포퓰리즘이 남발됐다.

 

통화가치 고평가도 문제였다. 아르헨티나는 위기 전 급격한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페소화와 달러화 가치를 1:1로 고정시키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리스는 유로존에 편입돼 유로화를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원래보다 통화가치가 올라갔다. 이는 당연히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경제 수준에 맞게 통화가치가 내려가야 경상수지 균형이 가능한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이같은 상황에 대한 대처법은 긴축정책뿐이다. 그래야 재정과 경상수지의 쌍둥이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경제를 모르는 정치 리더십, 경제 상황만 악화시켜

 

양국 모두 지도자들이 경제를 잘 몰랐다. 1999년 당선된 페르난도 데라루아 대통령은 중도좌파 성향으로, 오랫동안 부패에 찌들었던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때문에 선출될 수 있었다. 좌파 성향의 그리스 파판드레우 총리 역시 외무, 교육, 종교 장관 등을 역임한 뒤 깨끗한 이미지를 무기로 총리직에 올랐다. 결국 이들은 경제 문제를 재무장관에 위임했다. 데라루아 대통령은 도밍고 카발로 재무장관에게, 파판드레우 총리는 파파콘스탄티누 재무장관에게 전권을 맡겨 고강도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양국 모두 총파업 등 국민의 반발만 유발했다.

 

이에 대한 대응은 공통적으로 재무장관 해임이었다. 국민 분노를 완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리스의 경우 지난 6월 재무장관이 교체됐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주변국의 요구에 따라 결국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아르헨티나에선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한 '예금동결' 조치가 나왔고, 그리스에선 지난 11일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부동산 특별세' 정책이 발표됐다. 부동산 1410유로의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이는 포퓰리즘에 취해 왔던 국민들의 반발심을 더욱 자극했다. 10년 전 아르헨티나에선 폭동이 벌어졌고 대통령 사임과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이어졌다.

 

국민들과 주변국 설득 못하면 디폴트 피하기 힘들 수도

 

이같은 상황에서 외국 지원이 있으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는 실패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자금줄이었던 미국의 폴 오닐 재무장관은 "전염효과가 작다면 계속 지원할 필요가 없다"며 지원을 중단했고 모라토리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따라서 앞으로의 관건은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총리가 국민과 야당을 얼마나 잘 설득하면서 주변국의 지원을 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아르헨티나와 달리, 그리스는 유로존이란 강력한 울타리 안에 있어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어떻게든 주변국이 지원할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현재 그리스는 10년 전 아르헨티나보다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이 과정에서 정권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고 야당의 공세도 계속되고 있다. "추가 지원이 없으면 한 달을 버티기 어렵다"는 파판드레우 총리의 호소가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박유연 기자 / 입력 : 2011.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