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맛쇼]는 지난 5월 6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단 2회 상영되어 200명 남짓되는 관객이 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되자 영화제에 출품된 나머지 모든 영화를 합친 것 보다 많은 인터뷰 요청이 쇄도 했다. 관련 기사는 연일 인터넷에서 페이지뷰 상위에 랭크 됐다. 각 신문은 경쟁적으로 기사를 쏟아냈고, 영화를 만든 김재환 감독은 인터뷰에 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는 MBC가 법원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감독은 변호인과 밤을 새며 변론 준비를 했다. 개봉 하루 전날 법원은 MBC의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트루맛쇼]는 예정대로 6월 2일 전국 11개 극장에서 개봉 됐다. 시사회에 참석하는 기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박수를 보내지 않는 전통에도 불구하고, 언론 시사회가 끝나자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제작비 5억에 불과한 '작은' 영화가 보도자료 한장 돌리지 않았는데도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감독은 이를 두고 '기적'이라 표현했다. 대체 [트루맛쇼]가 어떤 영화길래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영화 개봉 전에 이메일 인터뷰를 하고, 개봉 후에는 부산에서 김재환 감독을 직접 만났다.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트루맛쇼]는 이처럼 도발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TV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어느 식당이든 돈만 내면 방송 출연이 가능하다. 방송 분량과 노출 횟수, 그리고 어떤 스타가 출연하느냐는 단지 금액의 차이일 뿐이다. 자신의 단골집이라며 출연한 스타는 음식의 이름 조차 알지 못한다. 브로커라는 사람은 수십 곳이 넘는 식당의 주방장으로 등장한다. 맛집으로 소개된 식당이 얼마 후에는 고발 프로그램에서 영업정지 업소로 등장 한다. 아르바이트로 동원된 가짜 고객은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작가와 PD가 써준 대본을 달달 외운다. 영화는 공익성·객관성·신뢰성이 생명이라 외치는 방송의 가면을 벗겨내고 조작과 기만이라는 민낯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트루맛쇼를 강요하는 빅브라더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우선 이처럼 도발적인 영화를 제작하게된 이유부터 궁금했다.
"[트루맛쇼]는 맛의 프레임으로 본 미디어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나는 1타 쌍피를 원한다. [트루맛쇼]를 통해 맛 산업과 미디어 산업을 한 큐에 견제하고 타락을 더디게 하는 것이다. 맛에 대해서 신문은 이미 오래 전에 맛이 갔고, 지금은 방송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았다. 방송, 그 중에서도 지상파 3사를 다룬 건, 현재 그들이 가장 힘 센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가장 힘 센 놈을 깨끗하게 해서 약이 오른 그들로 하여금 타락한 나머지를 견제하자는 이이제이 전략이다."
먹이사슬의 하층부를 건드리기 보다는 최종 포식자를 꺽어야 구조와 시스템이 변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정작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는 문제에 이르면 모두가 몸을 사린다. 그는 우리 사회의 성역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지상파 3사를 향해 벼린 칼 끝을 겨누었다. 영락 없이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의 모습이다. 하지만 보는 이로서는 그의 처지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방송사의 외압이나 소송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진다고 생각하고 나가지 않았다. 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참전하면 양측의 객관적 전력대로 전쟁 결과가 나온다. 나는 무조건 이긴다. 아니! 이겨야 한다. 내가 지면 앞으로 어떤 열정적인 청춘이 막강한 권력에 대항해 칼을 겨누겠는가? 결론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그는 1996년에 입사한 MBC PD 출신이다. 2002년에 설립한 방송 제작사는 수입의 70~80%를 MBC에서 벌어들인다. 친정집을 향해 딴지를 걸고, 을이 갑에게 겁도 없이 대드는 형국이다. 이에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지상파 3사 가운데 MBC가 가장 먼저 '액션'을 취했다. [트루맛쇼]에 대해 법원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항상 당하기만 하던 방송이 최초로 제기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원은 '기각' 판결을 내렸다. MBC의 의도는 관철되지 못했고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심만 증폭 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특유의 유머로 대응했다.
"MBC 김재철 사장과 내 이름이 비슷해 혹시 친인척 아니냐는, 무척 불쾌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던데 절대 아니다. 우리 집안에 저런 종류의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가 왜 망신당하면서까지 나를 도우려고 나섰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이거밖에 없다. 전관예우! 그렇다. 나는 그의 사랑스런 후배였던 것이다."
[트루맛쇼]를 보면 식당들은 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라도 방송에 출연하고자 한다. 과연 그만한 효과가 있을까? 그리고 방송에서 맛집 프로그램은 얼마나 인기가 있을까? 15년차 PD인 그에게 물었다.
"몇 년 전, 한 뜻있는 MBC CP(책임프로듀서)가 [생방송 화제집중]에 음식 코너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시간 방송되는 SBS나 KBS의 프로그램은 식당소개 위주의 정보 프로그램을 계속했다. 결과는 MBC의 참패였다. 이후 담당 CP가 바뀌었고 KBS·SBS보다 더 열심히 특이한 식당을 찾고, 없는 메뉴들을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음식 프로그램의 시청자 흡인력이 높지않아 보인다. 하지만 특정 시간대, 예를 들어 저녁 6시~7시, 토요일 오젼 11시~12시에는 먹는 게 먹힌다. 음식방송이 나간 후 식당의 매출액 증대 효과는 과거에 비해 확실히 줄었다, 예전엔 '3개월간 손님을 줄 세운다'가 업계에 통용되던 정설이었는데 요즘은 그 보다는 효과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방송의 위력은 대단하다."
[트루맛쇼]는 집요한 영화다. 단순히 맛집 프로그램의 조작 사례를 나열하는데 수준에 그치지 않고 직접 확인 사살을 시도한다. 제작비 5억원 가운데 2억원을 들여 경기도 일산에 식당을 차렸다. 상호는 '맛(Taste)'이다. 식당 곳곳에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이른바 '몰래카메라 친화형' 식당이다. 그리고는 홍보대행사에 900만원을 건네고 방송 출연을 성사시킨다. 이름난 브로커를 섭외해 방송 컨셉에 맞춰 리모델링도 했다. 모든 음식에 청양고추를 듬뿍 넣는 매운음식 전문점으로 바꿨다. 상호도 '맛(Taste)'에서 '핫(Hot)'이 되었다.
'맛'이 '핫'으로 변하는 이 기막힌 현실은 우리 식문화의 천박함을 그대로 상징한다. 이렇게 제작된 방송은 실제로 SBS를 통해 방영됐고, 제작진은 그 과정을 모두 기록해 영화에 담았다. 이경규도 놀랄만한 스케일의 몰래카메라를 성공 시켰다. 김재환 감독의 표현대로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을 보여준'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제작 방식에 대해, 일부의 사례를 과장한 것이 아니냐며 선정성 문제를 제기한다.
"100개의 사례를 제시하면 100개만 문제라고 할 거고 200개의 사례를 제시하면 오직 200개만 문제라고 할 것이다. 아무도 전수 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장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들고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트루맛쇼]에서 가짜 손님을 동원한 방송이 무려 300회가 넘는다고 하니 이에 대한 방송사의 반응은 가짜손님 정도는 애교라거나 방송관행이란 식으로 둘러댄다. '온갖 가짜들을 동원해 시청자를 속이는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었다'가 [트루맛쇼]의 주장이다. 사기에 대해 애교나 관행이라 표현할만큼 지상파 방송사가 천박해진 것이다. 이것이 무서운 거고 누군가는 끊어야 했다. 촬영방식의 선정성 문제는, 방송사들이 제 얼굴에 침 뱉는 자살폭탄 테러로 느껴져 전혀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
'맛' 아니, '핫'은 방송이 나가고 문을 닫았다. 정작 놀라운 것은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방송에서 소개된 '매워서 죽던지 말던지 돈가스'의 경우 방송이 나간 후 여러 인터넷 음식 동호회, 특히 매운 음식 동호회에서 꼭 방문하고 싶다는 전화들이 쇄도했다."고 한다. '가짜' 방송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이미,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트루맛쇼]는 기획과 제작에 꼬박 3년이 걸렸다. 김재환 감독은 자신의 회사에 근무하는 일부 직원들만 영화 스텝으로 참여 시켰다. 그리고는 그들 모두에게 '제작 사실을 누설할 경우 5천만원의 벌금을 낸다'는 각서를 쓰게했다. 각서의 효과 때문인지 제작 과정은 철저히 보안이 유지 됐다. 심지어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 조차 제작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영화가 공개되자 당장 제작 환경에 변화가 왔다. '가짜' 손님이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추고, 몇몇 맛집 프로그램은 손님이 등장하지 않고 방송되는 사례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방송의 심기를 건드린 영화다 보니 대형 복합상영관에서는 상영 자체를 꺼린다. 방송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검열이다. 방송은 여전히 권력이고, 지상파 3사는 변함 없는 빅브라더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관객의 몫이다.
김재환 감독은 방송이라는 거대한 골리앗과 맞짱을 뜨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투사라기에는 지나치게 유쾌하고, 돈키호테라기에는 전략과 전술에 능하다. [트루맛쇼] 역시 그런 감독을 닮았다. 실컷 웃고, 마음껏 조롱하다보면 왠지 모를 씁쓸함이 몰려 온다. 그 '씁쓸함'이 우리 사회의 천박함과 방송에 대한 배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은연 중에 깨닫게 된다. 그래서 김재환 감독은 "당신이 보는 세상이 100% 리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사그러들 즈음 또 다른 버전의 트루맛쇼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이 일상화된 현명한 소비자가 많아 진다면, 방송도 신문도 블로그도 '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맛집'이 아닌 '맛'을 이야기하는 세상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 [트루맛쇼]는 아주 괜찮은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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