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맛집 프로그램의 허상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역시 이 맛이야”를 외치고, 숫가락에 가득담긴 찌개를 입에 넣고는,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손님을 우리는 진짜 손님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는 동원된 엑스트라였다는 게 아닌가. 황당하고 억울하다. 그래서 물어물어 애써 찾아간 맛집의 음식 맛은 그냥 그렇고, 서비스는 엉망이었던 기억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번 가지고 있을 것이다.
TV맛집, 왜 음식 맛이 없을까? 지난번 전주영화제에 출품돼 장편 경쟁부문 JIFF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트루맛 쇼’가 바로 TV에 등장했던 음식점의 음식맛이 신통치 않았던 이유를 우리들에게 전해 주었다. 이 다큐는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를 알고 있다”는 코멘트를 시작으로 TV맛집 프로그램이 방송사와 브로커를 통해 사전 조작과 담합에 의해 제작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 다큐를 만든 김재환씨는 전직 MBC PD였다. 그는 불법적인 돈거래를 통해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협찬대행사 등이 얽힌 먹이사슬을 가감 없이 고발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그는 일산에 식당까지 차리고 실제로 출연을 섭외하는 과정을 직접 몰래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TV맛집 프로그램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첫째, TV맛집 프로는 대부분이 외주형식을 통해 제작된다. 공중파 방송사들은 일정비율의 프로그램을 외부의 프로덕션회사에 맡겨 제작하도록 방송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영세한 제작사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그 과정에서 방송사들은 시청률도 올리고 비용도 절감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적은 비용을 투입해 최대의 효과를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제작비가 짜게 지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둘째, 프로덕션 측으로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경쟁사들을 제치고 프로그램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많은 프로를 수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작실비도 건지지 못할 정도의 제작비라면 제작비의 부족분은 어떻게 해서라도 보충하려 할 것이다. 여기서 협찬의 필요성이 절실해 지는 것이다.
셋째, 그동안 TV 맛집 프로그램에 등장한 인근 음식점들의 성공을 지켜보는 경쟁 음식점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된다. 달콤한 유혹이 등장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서라도 TV에 한번 등장하기만 하면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유혹이 바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협찬 브로커인 것이다.
이와 같은 갑과 을 사이의 먹이사슬이 바로 우리나라만큼 음식점이 많은 나라도 없게 만들었고, TV에 나오지 않고는 음식점도 ‘못해먹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심경은 착잡하다. 여행하면서 밥을 먹지 않고 돌아다닐 수는 없고 어느 음식점에 가야 제대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음식점은 TV에 출연한 적이 없습니다.”란 간판을 용감하게 내걸고 손님을 끄는 음식점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에게는 반가운 소식 한 가지가 들려 왔다.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미슐랭’이 한국편 책자를 발간했다는 소식이다.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는 5명의 현장 답사요원이 지난 1년 동안 주요관광지와 문화유적, 숙박시설, 음식점을 돌며 수집한 정보를 450페이지의 책자에 싣고 있다. 1926년에 처음으로 여행가이드북을 내기 시작한 미슐랭은 우리에게 이름이 친숙한 타이어 제조회사다.
이들이 펴내는 안내책자는 그린 가이드북(여행가이드)과 레드가이드북(레스토랑과 호텔),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린 가이드북에 소개된 관광지중 별세개(최고 등급)를 받은 곳으로는 경복궁과 창덕궁, 북촌, 수원화성, 합천 해인사, 안동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불국사와 석굴암, 전주 한옥마을, 제주 한라산과 일출봉, 설악산, 송광사, 순천만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에 별 세개를 받은 곳은 모두 23개 지역인데 이 지역들을 보면 미슐랭이 어떤 지역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가 베어있는 곳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전국의 재래시장들이 관심을 끌었고, 애환이 서려 있는 시장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허름하지만 맛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식당들이 포함돼 있다. 동대문의 ‘할매 원조 닭 한마리집’은 서울 생활 50년인 필자도 처음 듣는 이름이고, ‘낙원 떡집’등은 “단순해 보이지만 정말 맛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번에 선택된 식당 중에서 미슐랭이 취재해 갔다는 것을 아는 곳은 한곳도 없었다. 그들이 언급하지 않고 있는 특급 호텔 레스토랑이나 TV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맛있다고 칭찬했던 맛집들이 빠진 것을 우리는 그냥 넘겨 버릴 수만은 없는 것이다.
자 이제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이 다큐 프로그램에게 고발당한 방송사들 가운데 MBC가 가장 먼저 소송에 나서는가 하면 김재환PD는 이미 서울시내 10여개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미슐랭 가이드는 철저한 비밀주의 원칙을 고수한다. 올해 별세개 받은 레스토랑도 내년엔 별이 떨어져 탈락해 버릴 수도 있다.
언제 취재해 갔는지도 모르게 비밀주의에 입각, 엄격하게 자격을 심사하는 그들의 원칙이 85년동안 세계 최고의 가이드북이라는 명성을 유지시켜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가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맛집 프로그램도 시청자들에게는 절실히 요구되는 프로그램이다. 소비자 입장에 서서 여러분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여러분 방송사의 소비자 고발프로에 등장 시킬 용기를 갖고 한번 만들어 보자.
- 대한언론 회보에서 / 신대근편집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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