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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부음 기사는 미국인의 인생 교과서.

풍월 사선암 2011. 4. 26. 12:00

뉴욕타임스 부음 기사는 미국인의 인생 교과서

사자(死者)를 떠나보내는 명문의 향연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

수십 년 경력 전문기자들 활약

실험용 침팬지·앵무새도 등장

 

사후 발표 전제 죽기 전 인터뷰

일방적 찬미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 기록

 

지난 324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엘리자베스 테일러 부음 기사.

 

보통 하루에 2~3명씩 등장하는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은 미국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인생, 보람찬 인생, 배우고 싶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미국인 부모가 어린 자녀의 미래와 관련해 가장 많이 던지는 기원은 좋은 사람이 돼라(Be a good person)’는 것이다. 매일 등장하는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은 미국인이 의미하는 좋은 사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부음 기자가 먼저 사망

 

상당수 한국인에게도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의 명성은 아마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특히 지난 324일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망소식은 미국인에게 한정되던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 읽기를 전세계에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여배우의 부음기사를 쓴 기자가 이미 2005년에 암으로 숨졌다는 사실이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망소식과 함께 알려졌기 때문이다. 6년 전에 숨진 이 인물은 40년간 부음 기사만 쓴 뉴욕타임스 기자 멜 구소(Mel Gussow)이다.

 

헤파티스 B형 바이러스를 발견한 의학자, 테네시주 전 주지사, 1960년대 의료 관련 시민운동가, 빵과 과자 관련 요리책 저자, 수천 명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은 예일대 하키선수, 종교와 정치와의 관계에 주목한 역사가, 베트남전쟁 당시 라오스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한 전직 CIA요원, AIDS 치료약 개발 박사, 시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악가, 1986년 전승행진을 기록한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 부사장.

 

지난 41일부터 일주일간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에 실린 사람들의 명단이다. 가끔씩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세계적 명사도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지명도나 유명세를 따지면 국지적 수준에 머문 인물들이고 서거가 아니라 사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미국인만이 아닌 전세계의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 중 서거라는 타이틀에 맞는 사람은 미국 밖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부음 섹션은 뉴욕타임스만이 아닌 워싱턴포스트나 AP통신 등 대형 언론매체에서도 접할 수 있지만 뉴욕타임스 부음섹션은 다른 미디어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권위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방의 작은 신문들도 싣기를 원하는, 이른바 전국망 신디케이트 기사로도 유명하다. 뉴요커만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면 모두가 흥미롭게 읽는 기사가 뉴욕타임스 부음인 것이다. 하루의 시작은 날씨 얘기에서 시작하지만 인생을 논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바로 뉴욕타임스 부음이다.

 

이웃이 보여주는 감동과 교훈

 

미국인들이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거기에 대한 답을, 평범이 가져다 주는 교훈과 줄기차게 하나만 파내려간 사람만이 창조할 수 있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찾고 싶다.

 

교훈을 무게중심에 두면서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이란 나라는 전세계에서 몰려온, 고향을 떠난 이방인들로 구성된 곳이란 점이다. 대통령인 오바마가 그러하듯,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이겨낸 뒤 성공스토리로 끝내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일반적 유형이다. 이런 사회에서 부음이란, 한 인간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해 나간 생활기록부를 글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경스러운 예지만 30년 뒤 오바마가 병으로 죽었다고 가정해보자. 대통령까지 됐지만 미국인 대부분은 아마도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에 관한 부음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이웃과 같은 인물로 나의 자식도 오바마처럼 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 부음을 대할 것이다. 오바마가 증명하듯 평범한 배경을 가진 미국인들은 짧지 않은 나름대로의 인생드라마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그 무언가를 남긴다.

 

뉴욕타임스 부음 전문기자는 보통 2명이 한 조이다. 이들은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를 잘 알고 관련된 얘기를 부음 속에 집어넣는다. 부분적인 면이 아닌, 인생 전체를 통찰하는 종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한다. 부음 섹션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미리 전화를 해서 양해를 얻은 뒤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사후에 발표될 것을 전제로 한 인터뷰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죽을 때까지비밀로 한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람의 경우 사후에 전개될 얘기를 나누는데 부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의 권위를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편이라고 한다.

 

인터뷰 질문 내용은 잘잘못을 따지는 관점과는 무관하다. “하인 눈에 영웅 없다라는 말에서 보듯, 인간은 누구나 허물이 있기 마련이다. 질문은 구체적 사항이 일어났을 당시의 심경이라든가 상황을 묻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찬미를 하기보다 다른 시각에서 본 문제점도 분명히 제시한다.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는 자신의 부음 기사를 위한 생전 인터뷰에서 1960년대 프랑스 학생혁명에 관한 소감을 묻자 너무 일러서 아직 뭐라 판단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부음을 전제로 한 인터뷰에서만 새길 수 있는 명언임에 틀림없다.

 

실험용 동물과 소설 속 주인공을 위한 부음

 

흥미로운 것은 뉴욕타임스는 부음의 대상을 반드시 인간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심히 산 존재라면,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나 로보트도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을 차지할 수 있다. 20071230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라는 타이틀로 실린 앵무새와 침팬지의 부음은 뉴욕타임스의 발상과 권위를 한층 높여준, 저널리즘의 새로운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앵무새 알렉스와 침팬지 와슈는 각각 아프리카에서 건너와 실험용으로 사용된 동물이다. 언어와 행동에 관한 연구를 위한 실험용으로 대학연구기관에서 활용되다가 고령으로 죽었다. 135개의 사인을 이해한 와슈와, 4세 유아의 인지력을 가진 알렉스를 통해 동물과 인간이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억에 남는 부음으로 평가되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속 주인공인 벨기에 출신 탐정 에르큘 포아로(Hercule Poirot)의 부음도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의 영역을 넓힌 새로운 도전이라 볼 수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연작소설을 중단하면서 소설 속의 주인공인 포아로도 함께 숨지자 부음이 실렸다. 소설 속의 가공인물이 부음에 등장한 것이다. 197586일 실린 포아로 부음 기사의 타이틀은 마지막 사건현장이다.

 

창조적이고 재미난 인생을 배운다

 

미국 태생이 아닌 필자는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을 교훈이 아닌 재미라는 차원에서 즐기는 편이다. 하나만을 파는 동안 나타나는 남다른 창조력과 그에 얽힌 역사를 부음을 통해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8년 전 읽은 한 포도주 잔 장인에 관한 부음은 재미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2004317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클라우스 리델(Claus Ridel)의 부음이다. 포도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리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가 이미 어떤 인물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753년 창립된 오스트리아산 리델은 포도주 잔 가운데 최상급에 속하는 브랜드이다. 마시는 포도주의 종류에 맞게 포도주 잔의 모양과 무게도 다채롭게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리델이다. 포도주 잔을 편리함이 아닌, 품위와 맛을 향상시키는 존재로 바꾼 인물이 리델이다.

 

프랑스의 2대 포도주는 보르도와 부르고뉴산()으로 나눌 수 있다. 약간 길쭉하고 향기를 안으로 모은 형태가 보르도 포도주용 잔이고, 산소를 많이 받고 향을 밖으로 퍼져나가도록 만들어진 위가 넓게 퍼진 것이 부르고뉴 포도주용 잔이다. 리델은 이 같은 모양의 잔을 생각해낸 사람이다. 지금은 너무도 상식적인 얘기지만 리델 이전까지만 해도 포도주 잔의 모양·무게·두께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금이나 보석을 달고 있는지 여부가 고급 포도주 잔의 판단 기준이었다.

 

리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이던 독일군에 편입돼 전쟁터로 갔다가 이후 미군에 체포돼 10개월간 감옥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8대째 리델을 이어오던 아버지는 소련군에 체포돼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리델은 아버지의 친구인 스왈로프스키 사장의 도움으로 1957년 제9대 리델 사장에 취임한다. 포도주를 위한 종속품이 아닌, 포도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잔이 탄생된 것은 이후 터져나온 리델의 창조적 발상 덕분이었다. 비록 4000자에 불과한 부음이지만 리델의 79년 인생은 포도주를 즐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밖에 없는 인생 교과서이다.

 

미국의 경우 중학교·고등학교 작문수업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테마 중 하나가 부음이다. “자신의 부음을 뉴욕타임스 부음기자 시각에서 4000자 내로 써보라는 것이 작문의 주제이다. 죽음을 터부시하고 무겁게 받아들이는 동양적 사고에서 본다면 너무도 경솔하게 들리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화(聖畵) 속의 해골을 들고 있는 성직자의 모습에서 보듯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경우 하루하루 바르고 열심히 살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 부음 섹션이 단순한 기사수준을 뛰어넘어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함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인간이 직면할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하는 철학적 영역과 연결돼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민호컬럼 2011.04.21

 

40년 부음전문기자 로버트 토머스의 기록

 

부음전문기자로 40년간 뉴욕타임스에 글을 써온 로버트 토머스는 사후 1년 뒤인 2001‘52 McGs’라는 타이틀의 책을 발간했다.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52 McGs’는 토머스가 쓴 부음 가운데 특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52개의 기사를 싣고 있다. 토머스의 책에 실린 부음을 통해 죽음에서 다시 부활한 평범한,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세 명의 부음을 압축해서 살펴본다.

 

데이지 앤더슨(97·19981026일자)

 

데이지 앤더슨(Daisy Anderson)은 원래 테네시주 출신이지만 인종차별 때문에 17살 되던 때 아칸소주로 이사를 간다. 21살 때인 1922, 교회에서 만난 79살의 흑인 로버트 앤더슨과 결혼하게 된다. 당시 남부는 아무리 나이 차가 있더라도 먹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 누구와 결혼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분위기였다.

 

결혼 후 알게 되지만 남편은 원래 노예 출신으로 1867년 북군에 편입된 뒤 서부지역 전투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제대 이후 사업가로 성공하지만 10대까지 노예로 생활한 남편은 자신이 겪었던 비참한 삶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데이지 앤더슨은 남편으로부터의 특별한 경험을 매일 들으면서 당시 남부의 흑인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특별한계획을 하나 세운다. 남편이 겪은 노예체험기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다.

 

흑인 차별이 일상화돼 있고 남편은 물론 흑인 대부분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는 당시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데이지 앤더슨의 생각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잘 알 수 있다. 책이 나온 것은 결혼 5년 뒤인 1927년이다. 남편의 회상기는 노예에서 풍요로(From Slave to Affluence)’라는 제목이다. 백인 소유 출판사로부터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자신의 돈을 들여 1000부 정도 출간했다. 이 책은 흑인의 관점에서 출간된 첫 번째 노예 관련 저서로 평가받았다. 이후 남편은 자동차 사고로 1930년 사망하지만 부인은 남편의 남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흑인역사가, 흑인인권운동가로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을 지킨다.

 

존 풀턴(65·1998223일자)

 

존 풀턴(John Fulton)은 예술가이자,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공인된 첫 번째 미국 출신 투우사이다. 풀턴은 헝가리 출신 어머니와 이탈리아 출신 아버지를 둔 전형적인 이민 1세대 가족에서 자랐다.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 것은 12살 때 본 영화 한 편을 통해서였다. ‘피와 모래(Blood and sand)’라는 제목의 영화는 저주받은 투우사의 인생을 그린 이야기이다. 영화 속의 투우사에 매료된 것이다.

 

필라델피아 뮤지엄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다가 멕시코 국경에 인접한 도시로 옮겨 연구를 계속하게 된다. 도시 내에 멕시코식 투우장이 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투우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후 투우의 본고장 스페인으로 무작정 떠난다. 투우사로 나서기는 했지만 스페인 지방을 돌면서 병들고 작은 소나 죽이는 가난한 흥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해야만 했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 촬영장소에서 엑스트라로 일하기도 했고 소설가 헤밍웨이의 안내 역을 맡으면서 100달러짜리 수표를 받기도 했다.

 

그가 스페인 마드리드의 공인 투우사 자리에 오른 것은 소와 싸움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1963년이다. 이후 1994년 소의 꼬리를 잘라 자신의 자식에게 준 투우를 마지막으로 전부 40여년간 미국 출신 투우사로 스페인에서의 활동을 마감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풀턴은 투우사로 있으면서 틈틈이 보여줬던 예술활동을 본격화한다. 소의 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의식예술(Ritual Art)의 선구자로 자리잡게 된다.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풀턴은 자신의 그림을 비판하고 투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항상 똑같은 말을 던졌다.

 

“(투우장에서 소를 죽이고 나면) 하늘은 더 푸르게 느껴지고, 새소리도 더더욱 맑게 들리며, 음식과 와인의 맛도 한층 좋아지고, 우정도 더더욱 깊어진다.”

 

사망 직전 풀턴은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는 자서전을 남겼다. 책 제목은 존 키오테(John Quixote) 회상기이다.

 

에드워드 로위(75·1995106일자)

 

에드워드 로위(Edward Lowe)는 태평양전쟁에 참가한 해군 이병 출신의 백만장자이다. 미시간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따뜻한 물은 고사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야외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하는 가난의 연속이었다. 행운의 여신이 찾아온 것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직후인 1947년 겨울이다.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고양이 오줌박스 안에 든 모래가 얼어서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 그가 모래 대신 할머니에게 건네준 것이 톱밥이었다. 당시 로위는 목공소에서 버리는 톱밥을 모아 연료용으로 파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며칠 뒤 다시 톱밥을 구하러 찾아온다.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톱밥은 이후 입소문을 탔다. 톱밥이 고양이 오줌박스의 모래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로위는 추위에도 견디고 냄새도 좋은 잘게 썬 톱밥을 상품화한다. 애완동물가게를 찾아다니며 5파운드의 톱밥을 69센트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상표는 로위가 즉석에서 생각한 키티 리터(Kitty Litter)’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게는 처음 본 고가의 톱밥에 흥미가 없었다. 당시 같은 무게의 모래가격은 1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입소문을 통해 키티 리터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미시간의 애완동물가게 대부분이 키티 리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박스와 한 세트로 만들어진 키티 리터도 등장한다.

 

키티 리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추운 지방만이 아닌,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심지로 확산된다. 1985년부터 애완용으로 개가 아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어릴 때 극심한 가난을 체험한 로위는 돈을 벌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소비행태를 보여준다. 미국 전역에 흩어진 22개의 집 외에도, 미시간주 한 동네를 전부 구입한 뒤 개인용 철도를 만들어 극도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한다. 유별난 행동으로 가족들과 등지면서 결국 자식들과 소송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기 5년 전인 1990년 갑자기 2억달러에 이르는 자신의 주식을 전부 처분한 뒤 가족들과 화해를 하고 마지막 인생은 편하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