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대덕산(大德山)

풍월 사선암 2011. 4. 21. 09:40

대덕산(大德山)

 

빼재는 백두산으로부터 장엄하고 수려하게 흐르던 백두대간이 태백산을 지나며 숨을 돌린 후 다시 웅혼하게 솟구친, 흔히 덕유산맥이라고 부르는 덕유연봉에 있습니다. 덕유연봉의 시작인 삼봉산과 덕유산 줄기를 잇는 고개입니다.

 

◀4월의 봄기운을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대덕산백두대간학교

 

빼재는 해발 920m의 높은 지대이지만 높은 산줄기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전투가 있었던 곳입니다. '빼재'라는 이름은 '뼈가 많이 묻혀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뼈든, 짐승의 뼈든 말입니다.

 

하지만 이 고개는 이름에 담긴 슬프고 아픈 사연들과 달리 아름답고 안온합니다. 백두대간을 걷던 이들이 마음을 풀어놓고 지친 몸을 쉬는 고개이지요. 몸 기대어 앉아 첩첩히 늘어선 산줄기를 바라보면 꿈길을 걸어온 듯 아스라해지는 곳이지요.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매우 아름다운 고개입니다.

 

이 고개에서 덕유산 줄기의 시작이라는 삼봉산으로 향합니다. 숲으로 들어서는 나무 계단을 지나 봄 기운 가득 품은 아침 숲을 나서면 유장하게 흐르는 산줄기 첩첩하고 골마다 구름 일어 발걸음을 잊게 됩니다. 산길마다 지난 겨울의 혹독한 바람으로부터 땅의 생명들을 지켜온 마른 낙엽들이 가득하여 발걸음 또한 부드럽습니다.

 

◀백두대간학교 제6<대덕산 구간> 산행지도

 

그렇게 걷다보면 3개의 봉우리를 연꽃처럼 얹고 있다는 삼봉산입니다. 정상에 서면 황악산에서 삼도봉을 거쳐 동엽령, 백암봉,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덕유의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겨울 지나며 오래된 훈장처럼 빛바랜 채 늘어선 억새를 따라 걷다 내려서다 보면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집니다. 대간 길에 들어선 고랭지 채소밭입니다.

 

밭을 곁에 두고 잠시 걷다보면 소사고개이지요. 일년 내내 바람이 불어 마을 집집 마루에 깔리는 모래가루를 날린다는 고개입니다.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깊은 줄기에 있는 마을이지만 문명이라는 시대의 흐름이 비켜 가지는 않아 몇 년 사이에 외견상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는 곳입니다.

 

소사고개에서 잠시 몸을 추스른 후 가쁜 걸음 걷다보면 이내 삼도봉이라고도 불리는 초점산입니다. 초점산에서 대덕산으로 가는 길에는 겨울을 지나온 은빛 억새가 봄바람에 일렁이고 키 낮은 조릿대가 빼곡하여 산들거리며 반깁니다. 억새와 조릿대에 취해 걷다보면 삼도봉과 함께 경남, 경북과 전북을 나누는 대덕산입니다.

 

이 산은 국난이나 천재지변을 피해 온 이들이 많았고, 또 이곳에 머무는 이들마다 큰 덕을 입었다고 합니다. 사연이 이러하니 대덕산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산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대덕산은 산세도 부드러우면서도 우직하고 장중합니다. 남성다운 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덕산을 내려오며 얼음골 약수터에서 갈증과 뜨거워진 몸을 식히고 나면 이내 덕산재입니다.

 

삼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 중의 하나로 알려진 무풍을 품고 있습니다. 십승지라는 이름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덕산재에 내려서면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기는 듯 마음이 편안하고 안온해집니다. 덕산재는 이별의 아픔이 있는 슬픔 많은 고개가 아니라 먼 길 돌아온 이들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해후의 기쁨과 쉼이 있는 안온한 고개입니다.

 

구간 소개

-산행 코스 : 빼재덕유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초점산)

  대덕산덕산재

-도상거리 : 14.3km

-소요시간 : 8시간(충분한 휴식시간 포함)

 

[빼재] 덕유산(1,614m) 산줄기와 덕유삼봉산(1,254m, 전북과 경남의 경계)을 잇는 백두대간 상의 고개로 길이는 약 24km이다. 국도 37호선 무주와 거창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개 이름이 한자어로 명명되어 있음에도 지도상에 특이하게도 우리말인 빼재로 명기된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 백제의 접경지역이었기에 전략의 요충지로서, 역사의 격동기마다 수많은 전투가 이곳에서 치뤄졌고, 그에 따라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다.

 

또 숱한 국난 중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왜구와 맞서 싸울 때 이곳의 토착민들은 험준한 지형 속에서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고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 널리게 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어쨌든 그 뼈라는데서 유래한 뼈재라는 이름이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이를 한자지명으로 지도에 표기할 때는 빼어날 수()자를 써서 수령(秀嶺)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빼재가 십수년 전 포장이 되면서 고개마루 정상 밑에 신풍령이라는 이름의 휴게소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후 고개 이름은 빼재라는 이름과 신풍령이라는 이름이 동시에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사연이 있는 만큼 신풍령보다는 빼재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빼재 정상에서 거창 방향으로 내려가다 우측의 조그마한 휴게소 옆으로 가면 한자로 수령(秀嶺)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거창 쪽으로 보이는 시계는 거칠 것이 없다. 동남쪽의 가야산을 비롯해 남쪽의 시루봉과 호음산, 남서쪽의 금원산, 기백산 일대 산군의 장쾌한 능선이 만들어내는 파노라마는 보는 이의 가슴을 탁 틔우게 한다. 멀리로는 지리산 연봉의 웅장한 모습도 조망된다.

 

빼재는 백두대간 종주자들에게 중요한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향적봉을 중심으로 했을 때, 동북쪽의 소사고개에서 남서쪽의 동엽령으로 이어지는 덕유산 준령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다. 그런 봉우리들을 밟는 중간에 빼재에서 한숨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고개 남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보게 되는 호음산(930m) 자락에는 주민들이 고랭지 채소밭을 일구고 있어 고산준령 아래에 펼쳐진 초원인 양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빼재는 해발 1,000m 가까이 되는 고지대라서, 가을이 되면 단풍과 낙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또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거창군에서는 빼재(수령)에서 호음산 자락을 휘도는 임도를 개발해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의 취미생활에도 일조를 하고 있어, 경북 일대 산악자전거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빼재 정상에서 거창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곳곳에 심하게 굽이도는 커브길이 계속 이어진다.

 

[삼봉산(三峰山)] 태백산에서 내륙으로 몸을 비튼 백두대간이 한동안 숨을 죽이다 덕유산에 이르러 갑자기 솟구쳐 오른다. 거창과 무주를 경계짓는 삼봉산(1,254m)은 이같은 덕유연봉(德裕連峰)이 시작되는 첫머리봉. 그래서 인가 마을사람들은 삼봉산을 '덕유원봉'이라 부르며 자긍심을 내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삼봉산은 3개의 봉우리를 연꽃처럼 얹고 있다.

 

전라북도 무주군 고제면에 자리잡은 삼봉산은 일반 주말 산행인보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에게 잘 알려진 산이다. 대간의 줄기가 민주지산의 삼도봉 대덕산을 지나 영호남의 경계를 이루며 덕유평전을 일궈놓는 시작점이 삼봉산이다. 그래서 이곳의 지명도 덕유삼봉산으로 불린다.주변 조망이 무척 뛰어나 정상에서면 백두대간의 줄기 황악산에서 삼도봉을 거쳐 덕유산 동업령의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거대한 줄기를 이루는 이루는 모습이고 서쪽으로는 향적봉과 중봉이 동쪽으로는 대덕에서 뻗어나간 줄기가 수도산을 거쳐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삼봉산은 덕유산이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능선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억새능선과 설경이 삼봉산으로 유래가 된 지명인 투구봉, 노적봉, 칠성봉이 능선에 도열하고 그 중앙에 금봉암이 자리잡고 있다. 칼바위, 부부바위, 챙이바위 등이 어울어진 정상부는 칼날같이 솟아있고 주릉을 중심으로 동쪽은 절벽으로 서쪽은 부드러운 육산길로 이어지는 두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산이다.

 

[소사고개] 소사라는 마을 이름은 집집마다 마루바닥에 가는 모래가 깔리는데, 일년 내내 미풍이 불어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소사현(笑沙峴)로 불려졌다 한다.

 

이 지역 일대는 정확한 대간 길의 독도가 까다로운데 그 이유는, 백두대간 대부분의 고개가 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소사고개(680m)는 경상남도 거창 땅이며 고갯마루에서 전라북도 무풍 방향으로 10여분 걸어 내려간 '도계'(道界) 마을이 경계 지점이다. 따라서 고개 이름을 전라도 쪽에서는 '도마치'라고도 부른다. 도계에서 '항상 농사가 잘 된다'는 무풍(茂豊)까지는 약 9km. 태풍 루사가 지나갔던 곳이다

 

[삼도봉(三道峯)] 전북 무주군 무풍면, 경남 거창군 고제면, 경북 김천시 대덕면의 3개 도에 걸쳐 있는 봉우리다. 그렇다면 남한에 삼도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몇 개나 될까. 정답은 3개다. 모두 백두대간 줄기다.

 

이번에 오르는 삼도봉(三道峯 초점산 1,249m)은 경북 김천, 전북 무주, 경남 거창을 구분짓는 봉우리. 삼도봉 아랫마을인 김천시 대덕면 덕산마을 촌로에게 대덕산과 이웃한 삼도봉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대덕산에 속하는 하나의 봉우리라고 말할 뿐 금시초문이라고 말한다.백두대간길인 삼도봉~대덕산 코스는 억새와 산죽이 일품이지만 삼도봉 초입에 만나는 노란 낙엽송도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대덕산(大德山)] 대덕산은 이웃한 삼도봉과 함께 경남·북과 전북의 3도를 나눈다. 산 이름이 대덕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곳으로 살러오는 사람들마다 모두 큰 재산을 모음에 따라 산의 덕을 입었다는데서 연유됐다. 대덕산은 가야산을 향해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갈라놓은 삼도 분기점, 즉 해발 1,250m의 초첨산을 옆에 둔 명산으로,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리었고 정사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는 명산이다.

 

부드럽게 생겼으면서도 우직한 남성다운 덕기가 어린 이 산은 옛부터 수많은 인걸들을 배출했고, 또한 이 산이 있는 무풍동은 남사고의 '십승지'중 하나로 알려진 고장이기에 유명하다.

 

또한 영·호남 지방의 분수령으로 금강의 지류인 무풍천과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甘川)이 각각 동서 사면에서 발원한다. 산 서쪽은 덕유산국립공원, 남동쪽은 가야산국립공원이 인접한다.

 

김천시 대덕면에 위치한 대덕산(1,290m) 능선길은 산길도 선명한데다 능선 주변이 온통 끝물 억새군락지다. 신불평원이나 화엄벌이 전혀 부럽지 않다. 정상은 헬기장. 북으로 민주지산, 석기봉과 백두대간 산줄기인 삼도봉과 막기항산이 잇따라 펼쳐진다. 하산은 정상석 뒤로 내려선다. 제법 급경사 길이지만 낙엽과 산죽길이 아주 인상적이다.

 

25분 정도 뒤 얼음골 약수터. 잠시 목을 축이자. 이후부터 완연한 낙엽길. 지그재그 산길인데다 발목까지 덮여 여간 즐겁지 않다. 약수터에서 25분쯤 뒤 덕산재 갈림길. 좌측은 덕산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이다.

 

[덕산재] <정감록>은 삼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 중 하나로 무풍을 꼽고 있다. 그처럼 길지로 꼽히는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와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의 도 경계에 있는 고개가 덕산재다. 고개의 높이는 해발 644m. 구불구불 고갯길을 타고 고갯마루에 서면 남으로 가야산 줄기가 바라보이고 북으로는 민주지산, 삼도봉의 백두대간 산줄기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마주한다.

 

이어서 고개를 넘어 전라도 무주땅으로 들어서면 옛날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맞대고 대치했다는 나제통문에 이른다. 덕산재 주변의 행정구역 변천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에는 지례현 남면에 속했으며 1914년 덕산과 주치가 통합되면서 덕산리라는 마을 이름이 굳어졌고, 김천군(지금의 김천시) 대덕면에 편입되었다.

 

국도가 아스팔트로 포장되기 전 덕산재의 본 이름은 '주치'였다고 한다. 아직도 경상북도 쪽인 대덕면 덕산리에는 주치마을이라는 이름이 남아있어 옛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덕산재로 가는 길은 무주를 거치는 길과 김천을 거치는 길 두 가지가 있다. 무주읍내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가다 나제통문 터널을 통과하면, 삼도봉(1,177m)과 대덕산( 1,290m)에서 흘러내리는 남대천을 따라 덕산재로 길이 이어진다. 남대천은 무주읍내를 지난 뒤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그 개울을 사이에 두고 너른 들판이 전개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속에서 들판을 만난다는 것이 여행객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볏짚 태우는 연기가 자욱한 들판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오르막을 오르다보면 덕산재 정상의 넓은 공터에 서게 된다. 북에서 남으로 1,200고지의 민주지산과 삼도봉을 빚어 낸 백두대간이 덕유산을 향해 가다 잠시 덕산재에서 주춤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백두대간 종주자들도 덕산재에선 아무리 갈 길이 멀고 험해도 잠시 쉬어간다는 곳이다. 이처럼 백두대간 종주자들의 휴식처 역할을 해주는 쉼터 덕산재에는 얼마 전만 해도 매점을 겸한 주유소가 있었다. 그러나 오가는 이의 발길이 뜸해진 탓인지 매점과 주유소는 문을 닫았고 건물은 방치되어 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이 워낙 수려하여 아무렇게나 방치된 건물마저도 덕산재 풍치에 보탬이 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