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덕유산 백암봉

풍월 사선암 2011. 4. 21. 09:22

덕유산 백암봉

 

덕유산(德裕山)은 우리나라 12명산 중 하나입니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의 산(母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에는 나라에 난리가 일어날 때마다 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해 쫓겨 다니던 민초들이 한숨짓던 고달픈 삶과 이 산으로 숨어들어 화를 피하곤 했던 민초들의 고마움과 평안한 삶에 대한 희망도 담겨 있습니다.

 

백두대간에서 겨울 경치로는 덕유산이 으뜸이라 아니할 수 없다.백두대간학교

 

그런 마음 때문일까요?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香積峰, 1,614m)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가 마음에 새롭습니다. 물론 향적봉 부근에 군락을 이룬 향나무의 향기로 인해 얻은 이름이지요. 하지만 고단한 삶을 품어준 산의 너그러움과 덕스러움에 대한 민초들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생명의 향기가 쌓여 있는 산이고 봉우리였겠지요.

 

이름의 뜻을 굳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덕유의 품은 넉넉하기 그지없습니다. 육십령에서 빼재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장장 100리를 이룹니다. 낙동강의 영남 땅과 금강의 호남 땅을 가르면서도 아우릅니다.

 

덕유산은 넓고 깊은 산입니다. 그런 탓이겠지요.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겨울이 되면 눈길 닿는 곳마다 눈꽃과 서리꽃 끝없이 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백두대간에서 겨울 경치가 아름다운 산을 내세운다면 덕유산이 으뜸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덕유산에 눈꽃과 서리꽃이 많이 피는 데에는 지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서해의 습한 대기가 산을 힘겹게 넘으며 눈을 많이 뿌리기 때문에 눈꽃이 자주 피어납니다. 그뿐인가요? 한낮 금강 줄기인 용담호 수면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는 밤새 구름이 되었다가 덕유산을 넘으며 찬 공기를 만나면서 서리꽃으로 피어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에도, 키 작은 관목의 가지들 위에도, 웅크린 바위들 위로도 서리꽃 무성하고 눈꽃 피어나는 것입니다.

 

산행은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하여 동엽령, 백암봉, 중봉, 덕유산, 향적봉에 오른 후 백련사로 내려와 삼공탐방지원센터에서 끝납니다. 이 구간 중 백두대간 마루금에 속한 곳은 동엽령에서 백암봉까지의 약 2.2km입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백암봉에서 나뉩니다. 북쪽 능선은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산의 주능선이고, 동남쪽으로 흐르는 길은 귀봉, 지봉을 거쳐 빼재(신풍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입니다.

 

산행은 백암봉을 지나 향적봉을 향합니다. 덕유를 지나며 어찌 덕유의 최고봉인 향적봉을 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백암봉에서 덕유평전과 중봉(1,594.3m)을 지나 향적봉까지 이어진 산길은 평평하고 다소곳합니다. 주목에 핀 눈꽃을 마음에 담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향적봉입니다. 그 이름에 어울릴 듯한 다소 둔탁한 모양의 표지석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향적봉에 올라 둘러보면 첩첩한 산줄기가 물결치며 이어져 있어 그저 아스라하기만 합니다. 북으로는 가까이 적상산이,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운장산, 대둔산, 남쪽으로는 남덕유산을 앞에 두고 지리산 주능선도 아스라합니다. 동쪽으로는 가야산, 금오산이 보이지요.

 

향적봉의 눈꽃은 백두대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겨울 경치로 선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 길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덕유산에 대한 설명 따위는 다 잊으시고 그저 눈꽃이 망망대해처럼 피어난 산길을 걸으며 자연과 삶의 향기에 젖어 보십시오.(민병준 지음 <백두대간 가는 길> 참조)

 

<구간 소개>

코스는 안성탐방지원센터~동엽령~백암봉~중봉~덕유산 향적봉~백련사~삼공탐방지원센터

- 도상거리 : 12km

- 소요시간 : 7시간(충분한 휴식 포함)

 

<덕유산 백암봉> 구간 산행 지도 백두대간학교

 

[덕유산]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 광려산(匡慮山), 여산(廬山)으로 불렸다. 이성계가 고려 장군 시절 이 산에서 수도할 때, 수많은 맹수들이 우글거렸으나 한 번도 해를 입지 않아 덕이 넘치는 산으로 덕유산이라 하였다고도 전한다.

 

덕유산은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경상남도 거창과 함양군 등 2개도 4개 군에 걸쳐 솟아 있으며, 해발 1,614m의 향적봉을 정상으로 하여 백두대간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 8개 계곡, 13개의 대(), 10여개의 못, 20개의 폭포 등 기암절벽과 여울들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구천동계곡은 예로부터 선인들이 이름 붙인 33경으로 덕유산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덕유산은 북덕유산(향적봉1,614m)과 남덕유산(1,507m)으로 나뉜다. 주봉인 향적봉에서 시작해 남으로 중봉, 덕유평전을 지나, 무룡산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산에 이르는 장장 100리에 걸친 산으로 덕유산맥으로도 불린다. 특히 북동쪽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南大川)으로 흘러드는, 길이 30의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육십령에서 동엽령까지는 남덕유로 불리고 남덕유의 주봉은 장수덕유산(서봉, 1,510m). 남덕유는 무룡산, 삿갓봉, 장수덕유, 할미봉으로 구성된다.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서봉을 봉황산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했다.

 

남덕유가 암봉으로 날카롭다면 북덕유는 전형적인 육산으로 매우 유순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중환의 <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흙산인데 구천동(九泉洞)이 있고 천석이 깊숙하다, 난리를 격을 때 이 산에 숨어들면 적군이 찾지 못한데서 "덕이 큰 산" "넓고 크다"라고 했다.

 

덕유산은 1975, 오대산과 더불어 국내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을 지나고 소백산, 속리산 등을 솟아오르게 한 후, 다시 지리산으로 가는 도중 그 중심부에 빚어 놓은 또 하나의 명산이라고 할 수 있다.

 

[동엽령] 덕유산의 옛 고개 중 동엽령(冬葉嶺, 1,320m)은 깊은 산중에 있는 덕에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잎'으로 해석되는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 일대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가 어렵다.

 

무주와 동엽령을 마주하고 있는 거창군에서 동엽령을 '동업이재'로도 부르는 것을 보면 이런저런 짐작을 해볼 수는 있다. 거창군이 발간한 <거창군사(居昌郡史)>는 동엽령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재이다. 재로 오르는 병곡 대하골(현재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에는 옛날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다."

 

[백암봉]백암봉(1,490m)은 안성 방면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성 방면으로 피라밋처럼 삼각형으로 솟아오른 가새봉이 그 아래 망봉까지 지능선 꼬리를 늘어뜨리고 서있다. 향적봉과 중봉, 덕유평전의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덕유산의 한가운데이다.

 

대간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꺾어졌다가 북향하고, 남쪽으로는 지리산으로 뻗어내린다. 구천동으로 내려가려면 중봉 못 미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오수자굴을 경유한다. '흰바위봉'이란 뜻인데, 바위의 색이 엄격하게는 회색에 가깝다. (신동길 지음 <뫼따라 하늘까지> 참조)

 

[향적봉과 무주리조트] 향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향적봉이라 불렸다는 덕유산의 주봉 향적봉(1,614m)에는 무주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덕유산 설천봉(1,520m)까지 곤돌라로 오를 수 있어, 이곳에서부터 정상 향적봉까지는 20분 만에 갈 수 있다. 무주리조트는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일대, 그야말로 덕유산 국립공원 심장부에 들어서 있다. 1989년 이곳을 집단시설지구 및 국민체육시설지구로 용도를 변경한 후 대규모 리조트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1990년 개장한 후, 1992년 당시 김영삼 대선후보가 이곳에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를 공약한 후 이듬해인 1993년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 인근의 무려 90,000m²에 대해 자연보존지구에서 국민체육시설지구로 변경되었다. 그 해 4월 김영삼 대통령이 동계유니버시아드 유치 약속을 하고 이에 따라 '국제경기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 이곳 국공유림 임대를 허가했으며 국제대회 기준의 스키슬로프 확장을 위해 추가로 자연보존지구를 해제했다.

 

1995년부터 본격 공사를 시작 한 스키슬로프로 인해 총 200가 훼손되었다. 이 슬로프 공사과정에서 이식 대상이었던 나무들 가운데 주목과 구상나무의 이식 후 현재의 실태를 보면 얼마나 무성의한 이식이었으며, 그로인해 얼마나 귀중한 산림이 훼손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당시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에서 자생하던 수령 300~400년 이상의 주목과 구상나무 256주와 70~80년 수령의 나무 113주 등 총 369주가 이식되었으나 이식 10년이 경과된 현재 구상나무는 단 1그루도 생존하지 못했으며 주목도 50% 정도 생존되었으나 이 마저도 더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다.

 

이와 같이 보호수종의 이식이 실패한 이유는 스키장 건설에 눈이 멀어 이식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1~2월에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최에 맞추어 최소한의 이식준비 기간(토양안정, 충분한 복토, 기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둘러 바로 옮겨 심은 결과 이같이 실패하고 만 것이다.

 

현재 죽은 나무는 제거하지 않은 채 고사목을 빙자한 횡사목으로 그대로 남아있으며 5~6년생 주목을 보식하는데 그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얼마나 자연자원에 대해 무심하며, 덕유산이 스키장 건설 하나 때문에 덕유산 주요 식생대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으며 앞으로도 훼손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백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그곳에서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다.

 

1900(광무 4)에 당시 무주부사였던 이하섭이 중수하였고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61년에 대웅전을 건립하였으며, 1968년에 요사를 건립하였다. 그 무렵 백련암으로 불리던 절 이름을 백련사로 바꾸고 30여 년 동안 중창 불사에 힘썼다.

 

주요 건물로 대웅전, 원통전, 선수당, 문향헌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43) 백련사 계단(전북지방기념물 42) 정관당 부도(靜觀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102)가 있다. (<두산백과사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