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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사업자금 달란다… "내 연금은 해지 안 된다"

풍월 사선암 2011. 4. 4. 07:52

아들이 사업자금 달란다"내 연금은 해지 안 된다"

 

말년에 자식보다 든든한 '효자손 금융상품 3인방'

노후자금 묶어둘 즉시연금지급식 용돈 펀드 인기, 주택연금 가입도 두 배로

50세 이상 55% "죽을 때까지 경제권 안 놔"

 

평생 경제권을 놓지 않겠다는 고령자들이 늘면서 일명 '효자손 금융상품' 3인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길어진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등장한 새로운 풍속도다.

 

'효자손 상품'이란 목돈이나 주택을 금융회사에 맡기면 월급처럼 매달 일정한 날에 꼬박꼬박 돈이 통장으로 들어오는 상품을 말한다. '효자손 상품'의 급부상은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가계(家計)를 유지하려는 고령자들이 늘어나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집값과 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고()비용 사회에서 자녀들 역시 살기가 빡빡해 부모 봉양이 힘들어지자 고령자들 스스로 대안을 찾아나서는 셈이다.

 

본지와 여론조사기관 포커스컴퍼니가 지난달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50대 이상 기혼 남녀 324명에게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겠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36%"나를 위해 쓰다가 재산이 남으면 물려주겠다"고 답했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의향이 전혀 없다는 비율은 19%나 됐다.

 

즉시연금:자식보다 든든하다

 

서울에 사는 주부 김모(59)씨는 최근 대학 동창으로부터 난처한 전화를 받았다. 평소 재테크를 잘해서 알짜 부자인 친구인데 느닷없이 200만원만 빌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사업하는 아들 뒷바라지를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당장 방을 구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란다"고 울먹였다. 김씨는 "TV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주변에서 생겨 당황스럽다"고 했다.

 

말년에 목돈을 갖고 있으면 자녀 사업자금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중간에 헐리기 쉽다. 하지만 종신형 즉시연금은 일단 가입하면 해지가 불가능해 어떤 이유로든 노후자금이 사라지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 또 현역 때만큼 두둑하진 않지만, 매달 일정한 날에 월급처럼 평생 돈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65세 남성이 2억원을 종신형 즉시연금에 맡기면 매달 98만원(4.7%·변동금리)씩 사망 시까지 수령할 수 있다.

 

삼성·대한·교보생명이 파는 종신형 즉시연금에는 지난해 전년 대비 47% 늘어난 4663억원이 몰렸다. 종신형 즉시연금은 가입자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통상 10~20년 동안은 연금 지급이 보장된다. 그래도 일찍 사망하게 되면 장수(長壽)한 가입자에 비해 연금 수령액이 작아 손해일 수 있다. 또 변동형 상품이어서 시중금리가 떨어지면 수령액이 줄어들 수 있다.

 

용돈펀드:올해 3000억원 돌파

 

금융자산은 있지만 고정소득이 없는 고령자들은 월 지급식 펀드를 눈여겨보고 있다. 월 지급식 펀드란, 목돈을 맡기면 투자금액의 일정 비율(원금의 0.5~0.7%)로 현금이 매달 나오는 펀드를 말한다. '용돈펀드'라고도 불린다. 예컨대 원금의 0.7%를 매달 지급받는 상품의 경우 1억원을 한꺼번에 넣어두면 매달 70만원씩 받는다. '용돈펀드'2008년만 해도 1000억원대 규모에 그쳤지만 올 초 3200억원대 규모로 불어났다.

 

올 초 용돈펀드에 7000만원을 넣은 은퇴 생활자 이모(65)씨는 "노후엔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매달 일정한 현금을 받으니 월급 받는 것처럼 즐겁다"고 말했다. 다만 용돈펀드는 투자형 상품이어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유의해야 한다. 정돈영 신한금융투자 상품개발부장은 "용돈펀드는 수익이 좋든 나쁘든 매달 받는 금액은 동일하지만 펀드 수익이 나빠지게 되면 월 지급액을 똑같이 주기 위해서 원금이 까질 수 있다""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연금:가입자 수 곱절로

 

"대출이자 비싸지, 교육비는 오르지, 애들 살림 뻔하잖아요. 도움을 주진 못할망정 짐이 되기 싫어 선택했어요." 주택연금에 가입한 고령자들은 "경기도 나쁜데 자식들에게 손 벌리려니 낯이 서지 않는다""애들 부담도 덜고 나 스스로도 당당해서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집을 물려주고 자녀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보다는 주택연금을 활용해 스스로 노후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김형목 주택금융공사 팀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은 반드시 자녀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지금은 노후 대비용으로도 쓸 수 있다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시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택연금 가입자 수는 전년 대비 62% 늘어나 2016명에 달했다.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매달 일정 금액을 연금 형태로 타 가는 제도다. 부부가 모두 만 60세 이상이면서 시가 9억원 이하인 주택을 한 채만 보유하고 있으면 가입할 수 있다.

 

이경은 기자 / 201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