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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 의전원 중 22곳 `의대 복귀' 결정

풍월 사선암 2011. 2. 24. 23:50

27개 의전원 중 22곳 `의대 복귀' 결정

<의전원, 소수정예 체제로 명맥 유지>

 

전국 27개 의학전문대학원 가운데 대다수 대학이 과거 의대 체제로 복귀한다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의전원은 약 10년의 짧은 역사를 마감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의전원은 강원대, 제주대, 가천의대, 건국대, 동국대 등 5개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중에서는 부산대, 전남대 등 2개교만 현행 체제로 남겠다고 밝혀 앞으로 의·치전원은 `소수 정예' 체제로 명맥을 이어갈 전망이다.

 

실패 이유는 = 전국 41개 의대 중 가천의대, 건국대, 경희대, 충북대 등 4곳이 2005년 처음 신입생을 받으면서 의전원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연차적으로 의전원 전환이 이어지면서 현재 의전원으로 완전히 바뀐 대학은경북대, 부산대, 이화여대 등 15개교, 의대와 의전원을 병행 운영 중인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12개교에 이르렀다.

 

치대의 경우 11곳 가운데 서울대, 부산대 등 7개교는 치전원으로 완전 전환했으며 연세대는 치대와 치전원을 병행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가 41개 의대, 11개 치대 등 총 52개 대학으로부터 향후 학제 운영계획을 제출받은 결과 의전원으로 남겠다는 5개교를 제외한 36개교가 의대를 선택했고 치전원 2개교를 뺀 9곳도 치대 체제를 택했다.

 

미전환 학교를 포함해 52개교 중 86.5%45개교가 기존 대학 학제를 택한 것이다.

 

예견된 결과이긴 하지만 이처럼 대부분의 학교가 전문대학원 체제를 포기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의·치전원 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안착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획일적, 폐쇄적인 의사 양성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명분상 바람직한 듯 보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대학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무리하게 도입을 추진한 탓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그 결과 상당수 대학들이 의대와 의전원의 정원을 반반씩 유지하는 식의 편법으로 제도를 운영하며 `언젠가는 다시 의대로 돌아간다'는 복안을 내심 세우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의전원 도입 이후 이공계 학부생들이 너도나도 의전원 준비에만 매달리는 등 `이공계 엑소더스'가 심화됐다는 지적도 의전원 폐지론에 힘을 실어줬다.

 

어떻게 바뀌나 = 이에 따라 향후 의·치의학 교육 체제는 과거처럼 의·치대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소수의 전문대학원이 명맥을 유지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치전원을 유지하기로 한 대학들은 치열한 학내 논의를 통해 나름대로 이해득실을 따져 `잔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원이 적거나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의대는 의전원 체제가 오히려 유리하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교과부가 의·치전원을 유지하는 대학에 교수 증원을 비롯해 각종 행·재정적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이들 대학은 이공계 학부생들을 선발해 의과학자로 양성하는 등 의대와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의전원만의 입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교과부는 의·치대 체제로 전환되더라도 입시를 준비해 온 학생들에게는 불이익이 없도록 충분한 경과 기간을 둬 병행 대학은2015학년도부터, 완전 전환 대학은 2017학년도부터 의·치대 복귀를 허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현재 대학 1학년생이 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2014학년도까지는 현 체제가 계속된다.

 

또 의·치대로 전환한 뒤 최소 4년간은 총 정원의 30%를 학사편입으로 선발하도록 할 방침이어서 의사가 되는 길은 의대나 의전원 입학, 의대 학사편입 등 `3가지 트랙'이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의전원, 왜 실패한 실험이 됐나

 

2005년부터 도입된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일 의치전원을 다시 의치대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교과부의 발표로 인해 의전원과 의대를 병행운영하고 있던 대학은 대부분 의대 체제로 복귀할 것으로 보이고, 의전원으로 완전 전환한 대학들 중 상당수의 대학도 다시 의대 체제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미빛 전망으로 시작된 의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은 90년대 중반부터 논의가 시작되어 2002년에 도입이 확정되었다. 정부가 의전원을 도입한 이유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의예과, 본과로 이어지는 '2+4학제'의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의사양성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는 것이었다. 학부 기간 동안 다양한 전공을 공부한학생들이 의전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서 보다 전인적인 지식과 소양을 갖춘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였다.의전원을 통해 이른바 학부시절 인문계열의 학문을 전공한 의사도 만들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대학 입시에서 우수한 이과 학생들이 의대로 쏠리는 현상을 막겠다는 이유도 있었다. 의전원 체제가 중심인 미국의 경우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이 의사가 되려다가도 학부기간에 이공계 학문에 흥미를 느껴 해당 학문 영역에 계속 남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도 있었다.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대부분 질병을 치료하는 임상 의사가 되려는 것과 달리 의전원이 도입되면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과학자도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학부에서 전공한 생물학, 생명공학 등과 의학을 결합해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는 의과학자들도 배출될 것이라고 했다.

 

이공계생 빨아들이는 블랙홀, 의전원

 

하지만 정부의 이런 전망은 크게 빗나갔다. 의전원이 도입된 이후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것은 '이공계의 의전원 준비학원화'. 고등학교에서 의대를 준비하던 것이 4년이 늦춰져 학부까지 연장되버린 것이다.

 

생물학과, 생명공학과 등 의전원 진학에 유리한 학과는 경쟁률이 치솟았고 대분분의 학생들이 학부를 의전원을 위한 준비코스로 인식하면서 학부교육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2009년 서울대 자연대 생명과학부 졸업생 55명 중에서 서울대 의치전원에 진학한 학생만 18명으로 30%가 넘었다. 다른 학교 의치전원으로 진학한 학생들을 포함하면 이 수치는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이에 더해 이공계 기피현상과 맞물려 모든 전공에 걸쳐 우수 이공계 학생들이 의전원으로 진학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의전원 도입이 기초학문 육성에 도움일 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과 달리 의전원은 이공계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기초학문을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2009년 카이스트 졸업생 중 13%가 의전원으로 진학했다. 치전원이 도입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카이스트 졸업생 중 8%가 이공계에서 전공을 바꿔 의치전원으로 진학했다. 카이스트는 졸업생 수 대비 의전원 입학비율이 국내 대학 중 1위라는 결과가 발표돼 '카이스트가 최고의 의전원 준비학원'이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돌기도 했다.

 

의전원 졸업생들에서는 임상의학이 아닌 기초의학을 전공하려는 이들이 의대보다 많을 것이라는 전망도 빗나갔다.

 

올해 전국 52개 의·치과대학, ·치의전원 학생들을 전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임상의학을 지망하겠다는 응답률은 의대생이 89.4%, 의전원생 86.5%로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기초의학을 전공하겠다는 학생은 의전원 6.7%, 의대생 4.5%로 이 역시 별 차이가 없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의대 교수들은 "의전원이 되면서 교육기간이 더 길어져 전공의 교육기간까지 끝나면 30대 후반이 되어버리는 데 그때 가서 어떻게 기초의학 하겠다고 하겠느냐"고 말한다. 의전원은 석사과정이라 한 학기 등록금이 1000만원에 가깝다보니 경제적 부담이 더 커져 오히려 임상의학을 더 선호하게 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결국 다양한 전공의 의사 배출, 의대진학 과열해소, 기초과학과 기초의학 증진이라는 의전원 도입 목표는 전혀 달성되지 못했거나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킨 셈이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의전원은 도입 10년만에 실패한 실험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됐다.

 

의전원의 실패는 현재의 '이공계 홀대정책, 기초과학 홀대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이 없다면, 어떤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이과생들이 '무조건 고'를 외치며 의대로 쏠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