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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 전문醫 0명… 손가락 부러져도 치료 못한다

풍월 사선암 2011. 2. 18. 09:10

'총상' 전문0손가락 부러져도 치료 못한다

 

총에 맞은 선장은 왜 민간병원 갔을까?부끄러운 병원 실태

군의관 96% '3년 단기 복무'임상경험 부족에 시설도 열악

"차라리 내 돈 내고 밖으로", 군인들도 민간병원에 몰려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불의의 총상을 입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국내로 후송되고 나서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직행하자, "총상 같은 중증 외상(外傷) 치료는 군병원이 전문일 텐데 왜 민간병원으로 갔는지" 하며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는 의료수준이 열악한 군병원의 실상을 몰라서 나오는 말이라고 의료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총상을 입은 현역 군인마저 군병원을 기피하고 민간병원을 찾을 정도로 군병원의 치료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수술 경험 많은 의사 드문 군병원

 

지난해 겨울, 강원도 춘천 인근 지역 군부대에서 군사훈련 중 병사 한 명이 총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총알 파편이 갈비뼈를 박살 내며 안으로 뚫고 들어가 폐와 흉부에 대량 출혈을 일으켰다. 당장 수술진이 가슴을 열어 파편을 꺼내고, 폐를 꿰매는 응급수술이 필요했다. 이 병사는 군병원 중 최대 규모인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정작 이곳에는 그런 복합 흉부 외상(外傷) 수술을 할 줄 아는 군의관이 한 명도 없었다. 중환자실도 그런 중증 환자를 관리하기에 시설과 장비가 부족했다. 결국 이 병사는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다시 후송돼 수술을 받아야 했다.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지금, 60만 군인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군의관 2100여명 중 96%가 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초보 의사이거나 내과·외과 등 전문의를 갓 취득한 의사들로 채워져 있다. 국방의무 3년간 단기 복무하는 군의관으로, 이들은 임상경험이 부족하여 고난도 외상 치료를 하기에 역부족이다.

 

국내 86명의 외상외과 전문의 중 군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다. 전쟁시 반드시 필요한 화생방전과 세균전 대비 의료전문가도 군병원에선 찾을 수 없다. 군의관을 직업으로 삼아 군()에 장기(長期) 근무하는 90여명의 군의관이 있지만, 이들은 전·후방에 산재한 20개 군병원 총 7000병상을 운용하는 '병원행정 군의관'으로 배치하는 데도 부족하다.

 

그러니 총상 등 현역 군인의 중증 질환 치료를 민간병원이 떠맡고 있다. 2009년 군병원이 치료를 못해서 민간병원에 치료를 위탁한 케이스는 2344건이다. 이를 위해 국방부가 민간병원에 지급한 치료비만도 372억원이다. 민간 위탁 진료는 해마다 늘어 2005(576) 이후 4년 새 4배로 뛰었다. 위탁 질병은 주로 손가락 절단·골절, 무릎 인대 손상, 척추 부상, 다발 골절 등이다. 즉 군인을 진료하는 군병원이 필수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조차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닥다닥 병상에응급실에선 산소가스통 사용경기도에 있는 한 군병원 병동. 1972년에 지어진 1층짜리 허름한 병동에 군인 환자들이 앉아 있다. 이 병원에는 6·25 전쟁 때 쓰던 시멘트벽의 낡은 건물도 있고 응급실(아래쪽 사진)에선 산소공급 시설이 없어 산소가스통을 갖다놓고 사용하고 있다.

 

6·25 전쟁 때 쓰던 건물도 있어

 

서울~춘천 경춘(京春) 가도를 달리다 춘천 가까이에 이르면 도로변에 허름한 군병원이 하나 보인다. 병원 입구에 크게 쓰인 '건강으로 장병 육성'이라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이다. 1972년에 지어진 1층 건물 한 병동에는 50~60'군인 환자' 병상이 다닥다닥 깔렸다. 병원 한쪽 편에는 6·25 전쟁 때 지어 쓰던 건물도 있다.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는 진료 공간은 맨 시멘트벽이다. 마치 옛날 영화에 나오는 야전병원을 연상시킨다. 응급실에는 산소공급 시설이 없어 '산소가스통'을 일일이 가져와 쓰고 있다. 환자 공동 목욕탕에는 바닥 군데군데 타일이 깨져 있고, 누렇게 '녹슨 물' 자국이 흥건하다. 현재 상당수 군병원이 현대화 작업을 거쳐 새 건물을 지었지만, 아직 이런 구식 '막사 병원'들이 남아 있다.

 

군병원 장비와 시설이 열악하자 군 의료를 믿지 못하고, 군병원에서 치료 가능한 경증 질환도 병사들이 휴가를 내고 민간병원에서 '자기 돈'으로 치료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해 이런 '군병원 불신 환자'1300여명이었다. 국군수도병원에 근무하는 한 군의관은 "군병원 치료는 무료인데도 이를 마다하고 밖에 나가려는 병사들이 많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군병원 원장(대령·의사)"군의관들이 임상경험이 쌓일 때쯤 되면 전역을 하고 나가니 의료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다""단기 복무 군의관들에게는 전쟁시 필요한 전투용 군진(軍陣)의학을 숙달시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

 

 

[만물상] 총상(銃傷) 전문의

 

가브리엘 기퍼즈 미국 하원의원이 지난 1월 괴한이 난사한 총에 맞은 직후 뉴욕타임스가 '사망했다'는 오보를 냈다. 총탄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가 이마 쪽으로 관통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살려낸 사람이 애리조나 대학병원의 한인 외상(外傷)전문의 피터 리였다. 그는 기퍼즈 의원이 병원에 온 지 불과 38분 만에 수술을 시작했다. 그가 총상(銃傷)을 숱하게 치료해 온 군의관 출신인 데다 평소 의료팀을 잘 훈련시킨 덕분이었다.

 

피터 리는 국방의대를 나와 군의관으로 야전에서 24년을 복무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같은 격전지에서 일하다 몇 년 전 전역했다. 미국 언론은 기퍼즈 의원이 베테랑 피터 리가 일하는 병원에 실려간 것이 행운이었다고 보도했다. 군 병원과 군의관이 총상을 가장 잘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 나아가 미국 군 병원은 대통령들이 검진과 수술을 받을 만큼 최고 의료수준을 지녔다.

 

오바마 대통령은 해마다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주 국립해군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다. 이 병원에선 1985년 레이건 대통령이 대장암 수술을, 97년엔 클린턴 대통령이 무릎 수술을 받았다. 2007년 부시 대통령이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결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면서 떼어낸 용종 5개도 이 병원에서 검사했다. 최고 의사들이 근무하는 월터 리드 육군병원은 화상 치료와 외상 재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민간 병원인 아주대병원의 이국종 교수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총상을 치료하면서 우리 군 병원의 부끄러운 의료수준이 도마에 올랐다. 손가락 절단과 골절, 무릎 인대 파열 같은 부상과 질병이 생긴 장병을 군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해 민간 병원으로 보낸 사례가 2009년에만 2344건이었다.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기 때문이다.

 

60만 국군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군 병원이 국군수도병원을 비롯해 20개에 이른다. 군의관도 2100명을 넘는다. 그 중에 총상을 비롯한 중증(重症) 외상을 치료할 수 있는 외상외과 전문의는 단 한 명도 없다. 외상외과가 워낙 기피 전공이어서 국내에 전문의가 86명밖에 안 되는 탓도 있다. 그렇다고 군인을 군에서 치료하지 못하는 현실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 장병의 부상과 질병을 치료할 병원과 의료진을 갖추는 것은 국방 체제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 이동한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