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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 밥 먹을 힘만 있다면 걸어라.

풍월 사선암 2011. 1. 25. 13:00

[만병통치 등산 | 걷기의 효과] “침대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 밥 먹을 힘만 있다면 걸어라”

 

“죽을 병 걸려서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들 중에서 3분의 2는 전쟁 터져서 걸으면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의 저자답게 그의 첫 마디는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류는 500만 년 동안 자연에서 수렵을 해왔고, 농경생활을 한 것은 1만 년, 도시생활은 10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체성은 수렵, 즉 대자연 속을 누비며 사냥하는 것이요.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이 인간의 기본 정체성이란 얘기다. 사람이 아픈 것도 이런 정체성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산에 가는 것이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며, 아플 때도 산에서 걸어야 바른 방향이 보인다. 아프면 우리는 무조건 병원에 가서 눕는데 이것은 인간 육체의 기본 정체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좋다는 음식과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 줄 아는데, 그것보다는 육체가 기본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산에서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한다.

 

 걷기의 효험에 대해 설명하는 김영길씨.

김영길(64)씨는 별난 인물이다. 그가 살아온 발자취만 봐도 그렇다. 서울대문리대산악부 64학번인 그는 천문학과를 나와 발명에 매달리다 40여 가지에 이르는 특허를 낸 발명가로 거듭난다. 이후 사업가로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1970년대에는 ‘백범사상연구소’를 이끌면서 재야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1983년 마지막으로 시행된 한약사 시험에 합격해 정식 한약사가 되었다.

 

한약사가 된 그는 약초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심한다. 지도를 살피다 설악산과 오대산의 중간을 택해 들어간 곳이 인제군 방태산 자락의 상남면이었다. 당시 그곳은 자동차 한 대 없고 전기가 들어온 지 1년도 채 안 된 곳이었다. 여기서 그는 산을 누비며 약초를 캐고 환자들을 치료하며 10년을 넘게 방태산 곁에서 살았다. 그러는 동안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과 그만의 건강철학을 담아 낸 책이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제1권(1996)이었다.

 

책에서 그는 ‘세상은 명예와 권력과 재산의 사냥터다. 도시는 사냥터에서 얻은 획득물에 의해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매겨지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했으며 도시라는 ‘사냥터’를 떠나 두메산골에서 난치병환자들을 치료하며 얻은 결론이 ‘누워 있다가 죽든가, 걸어서 살든가’라고 한다.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낀 그가 답을 구하기 위해 산골에 내려와 살며 불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동안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 깨달음은 사람은 걸어야 한다는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였다. 다음은 그가 방태산에 있을 때 치료한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다.

 

함박눈이 퍼붓는 소한 추위의 어느 날이었다. 경남 삼천포에서 50대 초반의 부부가 찾아왔다. 자수성가해 몇 개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박사장이었다. 그는 10년 전부터 당뇨로 고생을 해왔고 결국 간경변 합병증에 이르렀다. 병원에서 반년 넘게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될 기미가 없었고 평생을 죽어라 일만 했던 게 억울했던 그는 마지막 희망으로 김영길씨의 한약방을 찾아왔다.

 

‘어떤 환자라도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면 각종 염증이 생긴다. 몸의 면역 기능과 근육의 힘도 떨어져 결국 병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환자가 침대에 누워 있을 경우 젊은 사람은 하루에 1.5% 근육의 힘이 떨어지고 노약자는 5%가량 떨어지므로 열흘만 병상에 누워 있어도 몸의 기운은 절반으로 떨어진다.’

 

박사장은 혼수상태가 심해 짧은 시간에도 수시로 혼절했으며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당뇨병은 식이요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좋다고 했다.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식을 받아들여 에너지화시키는 몸의 효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방태산 자락에 거처를 정해 수십 년간 하루에 10분도 걷는 습관이 안 되어 있던 박사장에게 매일 6km 떨어진 개인산의 샘터에 걸어서 다녀오라고 처방했다.

 

왕복 12km되는 험한 비탈길을 성한 사람도 힘든데 중환자인 박사장이 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길을 걷다 수십 차례나 혼절했다.

 

방태산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그는 책을 내면서 유명해졌다.

쓰러지면 부축해 가열순환제(김영길씨가 만든 약)를 먹인 다음 다리에 힘이 생기면 다시 걷게 했다. 10여 년간 매일 당뇨 테스트를 해왔던 박사장은 산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깜짝 놀랐다. 정상 수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운동은 하지 않고 누워 있으면서 치료했으니 식이요법이나 약물요법이 모두 독으로 작용했다.

 

이후 박사장은 무리한 산행으로 혼수상태가 자주 와 구급차에 실려 갈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나 ‘죽어도 산에서 걷다가 죽겠다’고 버텼다. 6개월 후에는 하루에 38km를 힘들이지 않고 웃으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김영길씨는 중증환자들을 산에서 걷게 하는 것을 치료의 기본으로 ‘침대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렇다고 걷기로 불치병 환자를 모두 기적적으로 치료한 건 아니다. 그도 “병이 너무 깊어 찾아오면 소용없다”고 얘기하며 호전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또 환자들에게 처방한 후 병원에서 보름 간격으로 검진을 받으며 이상 증세가 있을 경우 바로 약을 중단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이비 한약사는 아닌 것이다.

 

도시인은 술 먹을 자격 없다

 

현대인들은 좋은 음식과 약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일종의 세뇌에 빠져 있다고 그는 얘기한다. 인간은 어떤 환경이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밥 먹고 걸을 힘만 있으면 산에 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산행법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보통 산에 갈 때 정상을 목표로 악을 쓰고 가는 걸로 생각하는데, 그래선 안 됩니다. 천천히, 여유롭고 즐겁게 가야 합니다. 지리산을 몇 시간만에 종주했다고 자랑하면서 하산해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니 산에 다녀도 건강이 좋을 리 없죠.”

 

김영길씨는 술을 절제하고 즐겁게 걷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라고 한다.

자신의 체력 이상의 산행으로 악을 쓰며 걷는 것도 몸을 해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이 결코 건강한 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특히 “에베레스트 여러 번 올라간 사람보다 동네 뒷산이라도 즐겁게 다니는 사람이 훨씬 건강하다”며 행복한 걷기를 강조한다.

 

일례로 백두대간을 50번을 완주한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 스님은 도통하기 위해 백두대간을 타는 방법을 택했는데 결국 자살했다고 한다. 즐거운 게 도인데 산을 즐겁게 타지 않고 악에 받쳐 타면 결국 몸과 마음에 화를 입는다고 한다.

 

그는 정상과 속도에 집착하는 악 쓰는 산행과 하산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산행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특히 “술로 귀결되는 등산문화는 잘못된 것”이라 잘라 말한다. 술을 마시면 체내에서 알코올이 분해되어 물과 이산화탄소가 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간 단계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이 만들어져 체내에 쌓인다.

 

알맞게 마시면 간에서 즉시 아세트알데히드를 해독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지만 많이 마시면 해독능력이 떨어져 체내에 쌓이게 된다. 간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뇌 세포가 파괴되는데 그 주범이 아세트알데히드다. 또한 알코올은 발산되면서 몸속의 기를 빼앗아 간다. 그래서 술 마시면 고혈압 환자는 혈압이 높아지고 저혈압 환자는 혈압이 낮아진다. 술은 악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러나 술을 마셔도 건강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거친 바다에서 밤새도록 일하거나 매일 강도 높은 밭일을 하는 농부들은 괜찮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독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은 괜찮지만 정신노동으로 지친 도시인들이 술을 마시는 건 병을 만드는 행위하고 한다. 술이 정신을 흐리게 하므로 정신노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아침에는 음식물을 많이 섭취해도 신체대사가 왕성해 운동에너지로 전환시키지만 해가 진 뒤는 다르다고 한다. 저녁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휴식을 취하는 오장육부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럴진대 저녁에 술을 마시다 못해 과음 과식하는 것은 “자기 몸을 개가 뜯다가 만 닭 꼴로 만드는 격”이라고 한다.

 

밤에 과음 과식한 음식물은 에너지로 전화되지 못하고 체내에 그대로 축적되어 독소를 방출하지 못하게 된다. 농촌에서 강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낮에 땀 흘려 힘든 일을 함으로써 알코올을 해독시킬 기회가 많지만 도시인의 술 마신 다음날 아침은 콘크리트 공간에 앉아 업무의 스트레스로 시달리니 해독은커녕 기운순환 장애를 촉진하고 만성피로에 허덕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시인은 술 마실 자격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술을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정신과 육체를 파괴하면서 기분이 좋아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나도 몇 십 년 술을 마셔봐서 술이 얼마나 좋은지 압니다. 하지만 산에 갔다 와서 술 안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몸에 얼마나 좋은지도 알아야 해요.”

 

김영길씨가 이토록 술의 악영향을 강조하는 것은 간은 침묵의 장기이기 때문이다. 웬만큼 간이 나빠져서는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기에 대부분의 환자들이 술을 계속 마시다 몸이 알코올에 절어 마비상태가 되서야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아챈다는 것이다. 이때는 간이 이미 심하게 상한 상태이기에 술을 끊고 치료하겠다고 해도 회복 불능이란 것이다. 그런 환자들에게 질린 그는 “술에 빠지면 간경화가 와도 못 끊고 간암으로 넘어간다”며 “간암 진단 받고 끊어야 소용없다”고 한다. 그래서 “고통스럽게 죽느니 술 마시다 죽는 게 낫다”며 비꼬듯 얘기한다. 그러나 따스한 충고도 덧붙인다.

 

“술꾼 중의 90%는 간암이 돼야 말을 들어요. 그전에는 얘길 해도 듣질 않아요. 그러니 맘대로 먹으라고 하는 거죠. 그런 삶보다 즐겁게 산에 다니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등산하고 술 마시는 거 자제해야 해요.”

 

“유명한 산 필요 없다. 뒷산부터 시작해라”

 

아픈 사람이 걷는 게 힘들더라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꾸준히, 산 같지도 않은 산이라도 꾸준히 걷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정상을 가려고 집착하거나 유명한 산 갈 것 없이 능선까지만이라도 천천히 갔다오면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5~10분이라도 무조건 걷기를 시작해야 하고, 꾸준히 걸으면서 1~2시간씩 시간을 늘려야 한다. 심지어 관절염이 있더라도 걸어야 한다고 권한다. 이럴 땐 양손에 스틱을 짚고 조금씩 다니며 점차적으로 근육의 힘을 키워야 한다. 걸을 때는 명산이니 피톤치드니 하는 것들 따지지 말고 그냥 열심히 가다 보면 즐거움이 온다는 게 그의 말이다.

 

“걷다 보면 바른 판단과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요. 그 때 약을 먹든지 해야 약효가 있어요. 즐겁게 걸으면 마치 질 좋은 아궁이처럼 기운을 잘 순환시킬 수 있는 거죠. 이땐 어떤 음식을 아궁이 속에 넣어도 에너지로 다 잘 쓸 수 있습니다. 비싸고 좋은 걸 먹으려 노력하지 말고 산에서 즐겁게 걸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1996년 그가 책을 내자 전국에서 수많은 암환자들이 두메산골로 찾아왔다고 한다. 그중에선 걸으면서 완치된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단 암 선고를 받으면 공포와 절망에 빠지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치료가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워낙 말기에 치료를 하다가 방법이 없을 때 산으로 오기 때문에 오늘내일 하는 사람을 치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인근의 화전민들의 경우, 암 선고받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농약 치다 머리 아프면 소주 됫병 마시고 하길 반복하다가 병이 생긴 거죠. 어차피 병원에서 항암치료 받을 돈도 없고 당장 먹고 살려면 일해야 될 사람들이니, 내일부터 술 마시지 말고 일하슈, 하면 낫더군요.”

 

산을 즐겁게 걸으려면 도시인의 경쟁에서 이기려 하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도 전혀 그걸 느끼지 못하고 정상에 남들보다 더 빨리 서려 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주변의 아이들만 해도 연예인이나 메시 같은 축구선수에게 열광하는데 그보다 공기 한 줌이 더 귀중한 걸 알아야 해요. 당장 공기 한 줌 없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산에 데리고 다니며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알려줘야 합니다.”

 

서울대문리대 산악부 64학번인 그는 재학생 시절 선배들과 설악산 12선녀탕계곡 개척산행을 했다고 한다. 국내 산행은 물론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 트레킹까지 즐겼던 그는 어느 날 교통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국토순례를 결심하게 되고 2005년부터 해안선을 따라 7,000km를 걸었다.

 

“의외로 해안선 따라 걷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해안도로 따라 걸으면 2,500km쯤인데 해안에 붙어서 가니까 7,000km 정도 되더군요. 구간으로 나눠서 3년 만에 완주했어요.”

 

1998년에 방태산 한약사 생활을 청산한 그는 이후 경기도 일산에서 ‘화타 한약방’을 개업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는 해안종주를 하고 산에 가기 위해 토·일·월·화요일 오전에만 진료를 한다. “주말은 차 막히니까 평일날 가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귀띔한다. 여기저기 많이 걸었지만 해안선 걸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한다.

 

“이 나이 되면 돈에 별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해안선 걷기를 시작한 거예요. 여름에는 새벽에 조금 걷고 낮엔 쉬다가 저녁에 또 걷고 했죠. 근데 숙소가 있는 곳까지 가야 하니까 어떻게든 그날 가야 할 거리는 채워야 했어요. 이젠 시골도 인심이 안 좋아져서 마을이 있어도 민박할 수 있는 데가 없어요. 사람들하고 같이 가려면 시간 맞추고 약속잡고 하는 게 복잡해요. 그냥 내 갈 길 가는 걸 원칙으로 하니까 맞춰서 따라올 사람은 따라오게 되더군요.”

 

현재 그는 책 2권, 3권을 냈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책을 보고 찾아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먼저 책대로 하라고 권하고 부족하면 약을 쓴다고 한다. 그가 세 권의 책에 걸쳐 걷기만큼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호흡이다. 가령 심호흡 하나만 잘해도 몸에 이롭다고 한다. 심호흡이란 날숨을 길게 하는 호흡법으로 사람이 답답할 때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는 것도 이런 호흡을 하면 답답함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경직된 근육이 이완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한번은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연예인 A양이 찾아왔다. A양은 미국까지 가서 치료를 해봤지만 낫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마침내 고민이 쌓여 우울증에 이르게 되었다. 몸과 마음에 모두 병이 났음을 안 그는 약과 산행을 처방했다. 북한산 같은 서울 근교산을 아침마다 두 시간씩 오르도록 했다. 힘에 부치지 않을 만큼 배낭을 짊어지게 했고 등산화 대신 장화를 신도록 했다.

산을 거닐 때는 가급적 뜨는 해를 바라보며 양지 쪽 능선을 택해 걷게 했다. 그리 처방한 이유는 맨 몸으로 가는 것보다 짐을 메고 가야 단전에 기가 강하게 모아지며, 등산화나 일반 신발은 바닥이 딱딱해 땅의 굴곡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장화를 신어 지압 효과를 최대로 해 혈액 순환을 촉진시켰다.

 

A양에게 산을 오르게 한 다른 이유는 응어리진 스트레스를 스스로 풀기 위함이었다. 산을 걷다 보면 인기란 게 결국 환각임을 깨달아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A양은 산을 오르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스타의식의 허상을 깨달았으며 그러고 나니 만사가 후련하게 해석되어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졌다. 몇 년은 치료해야 가능할 줄 알았던 A양은 현명하게도 마음을 잘 다스려 반년 뒤에 피부병이 나았다. 치료하기 전에 치료 된 셈이다.

 

그는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뜨려 병에 걸리게 하므로 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 본다. 스트레스는 집착이나 번뇌에서 오며 이것은 “정신적인 기운 순환 장애”라고 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나 꾸준한 산행이라고 한다.

 

김영길 한약사는 얼마 전 산에서 다쳐 다리가 좋지 않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한약방에 나올 땐 언제나 등산복 차림이다. 오랫동안 걷기를 즐기며 등산복에 워낙 익숙해져 그런 것이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긴 거리를 걸어왔다. 그 속에서 김영길씨가 깨달은 것은 “다 자기 인연 따라 가는 것”이라 얘기한다. 병이 낫고 하는 것도 다 인연이 닿아야 한다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월간 산 [495호] 2011.01 / 글 신준범 기자 | 사진 김승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