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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등장할 줄 알았는데…”

풍월 사선암 2010. 12. 8. 17:51

박정희 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등장할 줄 알았는데…”

 

1979.10.26∼2009.10.26: 박정희 前대통령 서거 30주기에 부쳐..

박정희,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 할수 있다”란 ‘신바람 최면’ 걸어..

 

‘서거(逝去)’란 단어는 국가와 민족 위해 크게 이바지한 전직대통령에게만 붙여야 한다.

 

1979년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김문수(59) 현 경기도 도지사는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참 민주주의와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박정희 대통령만큼 조국과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대통령도 없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몸을 바친 진보성향의 백기완(77) 선생은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같은 사람 3만명만을 괴롭혔지만 이후 대통령들은 3천만명의 국민들을 괴롭혔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이 올 줄 알았다. 박정희의 죽음을 마음속으로 기뻐했던 것도 사실이다. 권위주의와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박정희의 장점을 보지 않고 그의 단점만을 봤기 때문에 생긴 단견(短見)이었다.

 

박정희 사후 등장한 대통령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들 정도이다.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들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박정희가 뿌려놓은 ‘신바람의 정신력’을 상당부분 후퇴시켜 놓았다.

 

거만한 신군부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사람, 하극상으로 자신의 상관을 체포하고 대통령이 된 사람, 친구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세월을 보낸 사람, 나라 곳간을 텅 비게 만들어 백성들이 금모으기 운동까지 하게 만든 사람, 하는 짓이 영락없는 빨갱이였던 사람,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가족들의 비리가 부끄럽다며 벼랑에서 뛰어 내려 숨진 사람 등...

 

박정희 이후의 대통령들은 모두 박정희에게 한참이나 못 미치는 평가를 받고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모두가 박정희 직간접으로 연결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박정희의 양아들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인물이었으며 어떤 이들은 박정희의 정적(政敵)이었다. 이들이 대통령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간첩 하나도 제대로 못 잡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일부 국민과 시민단체들의 자유를 넘은 방종은 나라의 기강을 흔들고 있지만 대통령은 친북좌파의 눈치를 보며 중도실용이라는 기회주의 노선을 걷는데 급급하고 있다. 박정희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왜 모두들 박정희의 반도 못 미치는 행동을 하고 있을까.

 

기자는 박정희가 죽은 후 더 위대한 대통령이 반드시 대한민국에 탄생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2009년 현재 그 보다 더 조국과 민족을 위했던 대통령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박정희만큼 흠이 많은 인물도 드물다.일본군 장교출신에 남로당 가입 전력, 여자문제, 18년간의 독재, 유신헌법 등 그의 단점은 좌파들의 좋은 공격거리가 되곤 한다. 하지만 박정희에게는 세종대왕 이래 그 어느 지도자도 갖추지 못했던 장점이 있었다.

 

강력한 지도력, 국민들을 궁핍과 가난해서 구하겠다는 강한 의지,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았던 청렴한 삶, 청와대 안의 야당(野黨) 육영수 여사, 주변 강대국들과 북한을 상대로 한 배짱과 용기 등이 그가 갖고 있던 커다란 힘이었다.

 

1960년대는 필리핀 같은 나라가 우리보다 잘 살았고,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경제력이 대한민국을 앞섰다.이런 상황에서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신바람 나게 일하는 ‘최면’을 걸었다.

 

<싸우면서 건설하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등이 이때 나온 ‘최면’ 구호이다.

 

북한에게는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며 강력대응 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북한은 무장공비와 간첩으로 맞섰지만 박정희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어느 대통령들처럼 북한에 무조건 퍼주며 평양에 가서 김정일 집단의 선전도구로 전락하지도 않았다.

지금 중국을 비롯한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이 박정희를 연구하고 새마을 운동을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무엇이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코리아’를 세계 10위권의 부자나라로 성장하게 만들었나가 연구대상인 것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는데 일본 1백년, 미국 1백80년, 영국 2백년이 걸렸다.

 

그러나 박정희의 한국은 30년 만에 1만 달러를 달성했다. 이는 박정희와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인 것이다.

 

김정일까지 칭찬한 ‘박정희와 새마을운동’

 

한국의 친북좌파들은 박정희 업적을 깎아 내리려 애쓰고 있지만 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세계인들의 평가는 우리들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게까지 한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

 

“요즘은 박정희 대통령이 좋게 인식 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것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조선이 자랑할 만한 세계의 도시입니다. 서울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 합니다” (김정일, 1999년 故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의 대화 가운데)

 

“박정희는 조국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 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박정희는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현 싱가포르 고문장관)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

 

“박 대통령의 역사적 큰 공헌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 하에 한국을 저개발의 농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한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앰스덴, MIT 정치경제학 교수)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목표는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의 건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맨스로프, 러시아 안보연구소 교수)

 

“중국의 덩 샤오핑은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연 10% 급성장과 경제 부상에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홍, 중화인민공화국정책과학연구회장)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富)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이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

 

“박정희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 창출이 되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버홀트 카터,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

 

“20세기의 위대한 아시아 지도자들 중 20명중에 한명” (뉴욕타임스)

 

“민주화란 것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뉴욕대학 명예박사)

 

“1965년 필리핀의 1인당 GNP가 2백70 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 GNP는 1백2 달러였지만 2005년 필리핀의 1인당 GNP가 1천30 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 GNP는 1만6천5백 달러로 변하였다. 가난한 절대빈곤의 후진국에서 조국보다 잘 살던 동남아 국가들을 따돌리고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존경스럽다”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중국의 덩 샤오핑의 개혁은 박정희를 모델로 한 모방이다” (미국 RAND 연구소)

 

“매 회의마다 우리 농촌과 국토에 가졌던 뜨거운 애정, 빈곤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한에 가까운 처절한 심정, 그리고 빈곤을 극복하여 경제대국을 이룩하려는 치열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고건, 전 대한민국 국무총리)

 

“많은 몽골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개발모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한국은 박 전 대통령의 지도 아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개발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잔라빈 차츠랄트, 전 몽골 총리)

 

“1960년까지도 남한은 성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9 달러로 가나나 수단과 같은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세계은행 보고서는 버마와 필리핀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보았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에너지원이 없는 남한은 경제적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오늘날 세계 11대 무역국이며 1996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중략) 불리한 자연 공간적 전제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경제기적을 이루어 냈다” (독일 국정교과서 고교 상급반 지리 92쪽)

 

“남한은 세계경제로 통합되었다. 대통령 박정희(1961∼79)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산업 능력을 가진 국가를 형성했다. 수도 서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독일 국정교과서 중학교 지리 1백9쪽)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롤 모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신화를 만든 한국경제의 건축가!” (뉴욕타임스)

 

“어렵던 시절, 한국을 이끌어 고도로 공업화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킨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임 대통령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유산을 남긴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지도자들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서거(逝去)란 말은 죽음(死去, 사거)의 높임말이다. 평소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던 국가 지도자들의 죽음에 대해 사용되는 말이다.

 

영어에는 이런 말이 없다. 대통령이 죽어도, 일반인이 죽어도 사망(death, die)이란 표현을 쓴다. 사망의 높인 말인 작고(作故)나 ‘돌아가시다’란 표현은 영어로 'pass away'를 사용한다.

 

한국어에선 서거란 단어는 죽음에 대한 최상급 용어이다. 이 서거란 단어는 범죄자나 국가반역자에게 사용해서 되는 말이 아니다.

 

최근 대한민국에선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다.한 사람은 생계형 뇌물을 받은 범죄자였고, 한 사람은 국가반역자였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서거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박정희에게 사용되는 서거란 단어를 두 사람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국민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극상으로 집권해 유죄판결을 받은 전두환, 노태우의 죽음 때도 서거란 단어를 사용하고 국민장을 실시 할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이념이 없고 정치철학이 없는 정권이다. 제대로 된 ‘가이드 라인’(원칙)이 없으니 앞으로도 그 때 그 때마다 상황 봐가면서 일을 진행 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보수우파 국민들로 인해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은 지금 친북좌파들의 눈치를 보며 나라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였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친북좌파들이 날뛰는 그런 세상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확고한 의지. 그 어느 대통령도 이 점에 대해 근접 할 수 없었기에 오늘날 박정희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존경 받는 인물 1순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좌파정권이 몰락한 계기가 되었으며 좌우 눈치를 보는 현재의 이명박 정권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무척이나 크다. 정치경험도 없고 국정철학도 없는 이명박은 박정희를 ‘롤 모델’로 나라를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년 봄, 불법 촛불집회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명박의 마음자세 갖고는 진정한 지도자의 힘을 발견 할 수가 없다.

 

한국의 친북좌파들은 아마 박정희를 상대로는 그런 시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권력이 땅에 떨어진 오늘의 한국을 생각하면 박정희가 더욱 그리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를 독재자라 욕했던 사람들도 요즘엔 “그래도 박정희 때가 좋았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명박 정권이나 좌파정당 사람들이 절실히 깨닫고 연구해야 할 봐야 할 부분이다.

 

그가 세상을 떠 난지 30년이 지났지만 왜 우리는 그토록 흠이 많은 독재자를 그리워할까.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건국 이후 최고의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 누구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5%가 박 전 대통령을 꼽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4.5%로 2위, 노무현 전 대통령이 12.3%로 3위를 차지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3.6%), 전두환 전 대통령(2.9%), 김영삼 전 대통령(1.1%)이 뒤를 이었고 최규하·윤보선 전 대통령은 각각 0.4%를 얻는데 그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0.3%의 지지를 얻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는 경제 성장을 이끌며 근대화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응답자의 61.7%가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로 경제발전을 꼽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신장이라는 응답은 14.1%에 그쳤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율과 비슷하다. 문화발전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0.9%, 높은 교육수준이라는 답변은 8.2%로 나타났다.

 

박 전 대통령은 모든 지역, 계층, 연령 등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 지역(31.4%)과 민주당 지지자들(30.6%)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학생과 진보성향 응답자들로부터 각각 26.7%와 23.4% 지지를 얻어 김 전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논두렁에 주저앉아 촌부(村夫)와 정담을 나누고, 서독 파견 광부들을 만나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박정희의 모습에는 모든 한국인의 과거가 담겨져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지독히 못 살고 누구나 어렵던 시절, 낡은 양복을 입고 경제전쟁의 선봉에 서서 ‘우리도 잘 살 수 있습니다’를 외치던 박정희.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함께 보냈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분명한 축복이었다.

 

임종규 - 뉴스메이커 선임기자,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