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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에 얽힌 슬픈 이야기

풍월 사선암 2010. 10. 13. 00:29

 

[밀레의 만종]에 얽힌 슬픈 이야기-1857년

 

저녁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다. 캐다가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은 프랑스의 자랑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 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 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됐다. 1000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를 일구어낸 것이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했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왜 그림 속의 아기가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살바도로 달리는 정말 달랐다. 밀레의 <만종>을 보면 누구라도 신성한 노동 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꼬마 달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보았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들러붙었는지 달리는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 그는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감자자루를 어린아이의 관으로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수십 년 후, 이러한 그의 투시력은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 그 감자자루가 초벌그림에서는 실제로 어린아이의 관이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현실 생활에는 서툴렀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삶에 대한 투시력을 갖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은 참이었던 것이다.

 

 

이삭줍기 Les Glaneuses-1857

 

밀레의 <이삭줍기>는 <만종>과 더불어 밀레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밀레가 [이삭줍기]를 [살롱]에 발표했을 당시 사람들은 이 작품의 주제가 농부들의 힘들고 고된 일상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했다. 극빈한 하층 계급과 귀족, 신흥 부르주아 사회 계층의 불균형 속에 밀레는 부유하고 권력적인 지식층보다는 반복적인 노동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농부의 삶을 화폭에 담고자 한 것이다.

 

당시 시대적으로 마르크스의 영향 아래 많은 리얼리스트들이 사회 비판적 성향의 그림을 그렸으나 밀레가 그린 농촌 풍경들은 이러한 비판보다는 성스럽고 종교적인 숭고미가 드러난다.

 

<이삭줍기>는 수확물이 풍성하게 쌓인 넓은 대지에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고 있는 세 농촌의 여인들을 표현했다. 이 여인들은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는 황금 들판 속에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형태와 색상으로 부각되어 있다. 왼편의 두 여인은 자신들의 노동에 묵묵히 몰두하고 있고, 오른쪽 여인은 약간 떨어져 허리를 반쯤 세우고 있다. 세 여인의 일련의 정지된 듯한 동작은 모노톤 배경과 더불어 시간을 초월한 듯 마치 성서의 한 장면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조화롭고 안정된 구도화 갈색 톤의 자연적인 색채 속에서 부드러운 빨강, 파랑, 노랑의 대비는 고전적인 성화를 연상시킨다.

 

<이삭줍기>에서 밀레는 가난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의 노동을 성스러운 침묵과 평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여인들의 사실적인 거칠고 남루한 복장과 빛과 덩어리로 표현된 뒷 배경은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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