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소백산맥의 중심 무풍/도선비기의 십승지

풍월 사선암 2010. 10. 8. 16:36


 소백산맥의 중심 무풍

 

무풍면은 봉황(중앙의 산)이 날개를 펴고 마을에 내려오는 형국이다.

 

풍수가들은 산에는 기를 모으고 돋우는 산과 기를 발산해서 소진하는 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백두대간의 여러 산 중에서도 특별히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을 중시하는데 태백ㆍ소백산은 우리나라의 척추라고도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의 중간 쯤에 위치해서 이리 저리 뻗어나가 소진된 기를 다시 크게 모으고 돋우어서 위로는 오대산, 설악산, 금강산을 지원하고, 서쪽으로는 속리산을 이루게 하고, 남으로는 주왕산을 일으켜 운문산을 거쳐 동래 금정산에 이르는 맥을 형성케 한다. 덕유산은 소백산맥(태백산에서 지리산까지)의 중앙에 위치하여 크게 기를 모아서 위로는 속리산, 아래로는 지리산, 동으로는 가야산, 서로는 계룡산 등의 명산들을 일어서게 한다. 우리나라 산중에서 기를 크게 모으는 데는 태백ㆍ소백보다 큰 산은 없으나 기를 거두어 간직하는 데는 덕유산이 낫다. 그래서 양기(養氣), 수단(修丹)하는 사람들은 덕유산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이 덕유산의 기를 몽땅 받은 땅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무풍(茂豊)이다. 속리산에서 남하하는 소백산맥은 추풍령을 넘어서 황악산, 민주지산을 일으키고 무주땅에 와서는 삼도봉, 대덕산(1,290m), 삼봉산(1,254m), 덕유산(1,614m)으로 이어지는 험준하고도 거대한 산 덩어리를 형성한다.

 

나제통문 무풍으로 통하는 길목에 국경검문소가 설치되어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 삼도봉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은 반원을 그리면서 휘어졌는데 무풍은 그 반원의 중심점에 위치한다. 무풍은 동남이 소백산맥의 주맥으로 막혔고, 서쪽과 북쪽도 소백산맥의 지맥으로 둘러싸여 완전히 산 속에 갇힌 땅이다. 길이라고는 설천에 바위산을 뚫은 나제통문 밖에 없다. 이 바위 터널 안쪽은 신라땅(무풍)이고 바깥쪽은 백제땅(주계)이었다. 이런 천연의 요새였기에 삼국시대의 무풍은 소백산맥의 서쪽에 있으면서도 백제의 예봉을 막고 신라땅으로 남아 전초기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남사고(南師古)는 무풍을 복지(福地)라 했다. 동네 바깥 산은 기름진 밭이라 부촌이 많으며 속리산 이북의 산 마을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감록』의 《감결》에는 10승지【 병화(兵火)가 들어오지 않고 흉년이 들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곳】중 여덟 번째로 무주(茂朱) 무봉산(舞鳳山) 북쪽 동방(銅傍) 상동(相洞)을 꼽고 있다. 그런데 정감록을 비롯한 여러 비결에 실려있는 무풍의 10승지 위치 표현이 실로 아리송하다. 『유산록』에는 무풍 북쪽에 있는 방동(方洞), 『남사고 비결』에는 무풍(茂豊)의 북쪽 골짜기 일대 덕유산 내맥,『징비록』에는 무주 무풍(舞豊) 북쪽 방은동(方隱洞) 덕유산 내맥 등으로 표시돼 있다. 무풍에 대한 한자의 표기가 무성할 무(茂) 풍성할 풍(豊) 대신에 춤출무(舞)자와 바람풍(風) 혹은 춤출무(舞)와 풍성할 풍(豊)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음은 같으나 글자를 달리 쓰게 되었던 원인은 당시 민간에서 그렇게 써왔기 때문일 것이다.

 

장엄하고 후덕한 대덕산의 모습.

 

여러 비결을 종합해 볼 때 무풍의 십승지의 위치는 무풍의 북쪽에 있다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무풍은 무풍현청이 있는 무풍읍내를 가리킨다. 옛 무풍읍은 지금의 면사무소와 시장이 있는 현내리이다. 그런데 현내리 북쪽은 십승지가 될 만한 깊은 골짜기도 의슥한 계곡도 없다. 그렇다면 비결에서 말하는 무풍은 과연 어디일까?

 

「택리지」에 무풍령(舞風嶺)이 나오는데 ‘속리산으로 화령ㆍ추풍령ㆍ무풍령이 작은 영이고, 덕유산 남쪽의 육십령ㆍ팔랑치가 큰 영이다........’. 이 무풍령의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대덕치임을 곧 알 수 있는데 당시에는 대덕산이 무풍산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정감록』의 《감결》에 무봉산(舞鳳山)의 새봉(鳳)자는 무풍산(舞風山)의 바람 풍(風)자의 오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무풍 북쪽은 무풍읍의 북쪽이 아니라 무풍산의 북쪽이 된다. 실제로 가보면 대덕산은 중후하고 우람하며 그 북쪽 골짜기는 『징비록』의 무풍산 북쪽 방은동(方隱洞) 덕유산 내맥인데 어느 골짜기 할 것 없이 피난처 아닌 곳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대덕산을 무풍산으로 봤을 때 비로소 무풍고을 전체가 십승지에 해당됨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도선비기의 십승지

 

몇해전 큰 인기를 모은 역사드라마 '왕건'에서, 유년시절의 왕건을 고려의 군주 즉, 왕이 될 것으로 예언한 도선국사의 예언장면은 드라마가 갖는 픽션이 아닌 역사속에서 전해지는 사실이라는 점에서 미래예측에 대한 신비로움에 경외감이 더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도선국사가 '도선비기'에서 국가에 임진왜란 같은 난리가 났을 때 피란가지 않아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예언한 '십승지'는 ① 강원도 영월 ② 안동 화산 ③ 보은 속리산 ④ 공주 계룡산 ⑤ 풍기 금계촌 ⑥ 경북 예천 ⑦ 무주 무풍 ⑧ 남원 운봉 ⑨ 부안 호암 ⑩ 합천 가야산 등 10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십승지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예언서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한 정감록과 조선 명종때의 명리학 대가인 남사고 선생의 격암유록에서도 같은 지역을 십승지로 꼽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도선국사의 음양지리설과 풍수상지법은 풍수지리학문 분야에 지대한 영항을 주었습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고,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인가? 앞으로 우주는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인가? 시간은 끝이 있는 것일까? 등등 우리가 아는 한 우리인간은, 광활한 우주전체에서 이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풍수지리 하면 그저 명당자리라는 묘터나 잡는 정도로 생각하지만, 1천100년전에 십승지를 선정한 그 기준을 꼼꼼히 살펴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굴의 상을 보는 방법을 관상(觀相)이라고 하는데, 관상이 좋은 상의 기본은 누가 보더라도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얼굴에 흉터가 없는 상이듯이, 나에게 맞는 좋은 집터는 그 집의 가격이 고하(高下) 간에 처음 보았을때 마음이 편안하고, 진정으로 취득하고 싶은 친숙함이 욕구이전의 평상심(平常心)에서 느껴진다면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활의 기본요소인 의, 식, 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사는 공간 즉, 집입니다. 아파트든 주택이든 간에 나에게 맞는 가장 적합한 양택은 가족 모두에게 행복과 건강을 주게 되는데 이때에 분수에 맞는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과 가족이 몸담는 집에 감사한다면 날로 번창할 것입니다. 등기상 내집이라는 집은 엄밀히 따져서 보면, 우리가 5~10년이든 그 이상이든 삶을 사는 동안 소유하지만 가지고는 못가는, 잠시 빌려서 쓰는 것 일뿐입니다.

 

지금 내 소유의 땅이 유구한 역사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인이었겠습니까. 도선국사의 십승지를 답사해 보면 공통적인 것이 보이는데, 한결같이 따스한 느낌의 산세와 풍경에다가 넉넉한 인심까지가 전란통에는 안전지대, 현재 평화시대에는 웰빙(Well-being)에 재테크(財tech)로 이 지역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福)을 주겠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써플라이 엠엔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