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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에게 8억달러 갖다바치도록 만든 박지원, 그는 누구인가? (4)

풍월 사선암 2010. 9. 15. 18:58

“최정민, 박지원에 3억원 받은 일 없다” 부인

 

[박지원x-파일] 최 씨 진정서 내용 대부분 사실, 뉴욕 교포들 증언..

[주말연재] 김정일에게 8억달러 갖다바치도록 만든 박지원, 그는 누구인가? (4)

 

1996년 총선거 때 박지원 후보 선거구에 뿌려진 두번째 유인물 ‘박지원에 대한 재미 한인 교포의 증언’은 96년 3월 6일 뉴욕 현지교포들이 TV 방송토론회에 나와 ‘재미교포 한국 현실정치 참여 바람직한 일인가?’라는 대담 프로에서 ‘박지원의 도덕성을 거론’하며 나온 내용들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또 뉴욕에 살다가 서울로 돌아가서 사업하거나 여러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뉴욕출신 교포들의 모임인 뉴욕클럽 사람들의 증언을 들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당시 이 유인물을 입수한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은 박지원 당선을 바라지 않는 반대쪽에서 만든 것이거나 아니면 정보기관에서 만든 것으로 판단했다.

 

이 2번째 유인물은 모두 3페이지로 되어 있으며 3페이지 윗부분 제4항 <매춘업의 포주가 장수 야당 대변인>이라는 제목아래 이런 글이 담겨져 있다.

 

(가) 가발 사업 망한 뒤 어려움 겪고 있을 때 5.17 쿠테타가 일어나 전경환의 지원으로 살아남. 특혜융자 많이 받음: 외환은행 뉴욕지점에서 120만 달러(12억 이상) 받음.

 

(나) 79년 뉴욕 28번가 브로드웨이에 최정민을 마담으로 매춘영업을 함. 박지원이 상당히 어려웠을 때임. 박지원 이전 뉴욕 한인회장인 Y씨의 이름이 나와 있으나 사건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가명으로 처리) 뉴욕 중심 32번가 한인타운 25번지 2층에서 매춘업이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을 듣고 시작함. Y씨가 “한국에서 멕시코를 통해 여자들을 밀입국시켜 너도 한번 해봐라. 짭짤한 재미를 본다”고 권유하였다고 함.

 

(다) 염진호 여사(뉴욕 한인교포 가정문제 연구소 소장. 여성 권익옹호 기관) 박지원과 Y씨를 향해“ 세상에 죽일 놈들아...... 한인회장을 하는 놈들이 천하에 할일이 없어서 매춘을 하느냐?”고 비난하며 여성들을 동원 떠들고 일어나자 매춘에서 손을 뗌. 경찰의 단속 강화로 80년 중반까지 대부분 폐업.

 

여성운동가 고참 여성들 증언 염진호 여사 사망, 확인 못해

 

이 유인물에 등장하는 여성운동가 염진호 회장은 칼럼자도 잘 아는 분이다. 염 회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당 여성국장을 지낸 여성으로 뉴욕으로 이민, 가정문제연구소를 설립, 회장직을 오랫동안 지내면서 교포사회에 많은 일을 했던 분이다. 염 회장이 지난 90년 초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시대 염 회장과 활동해 온 원로 여성활동가 김 모 전 여성회 회장에 의하면 “박지원이라는 x은 천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 자가 김대중이 심복이 되고 한 나라의 중요 장관이 됐다는 사실에 여성들은 분노했었다. 박지원이 부인이 동창회와 여성단체 간부들을 만나 자살하겠다고 호소하고 다닐 때 염 회장이 달래고 만류했던 일이 몇 번 있었다”고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 발행하는 모 신문사 뉴욕지사에서 뉴욕판 담당 기자 생활을 하던 H씨는 현재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는데 “당시 뉴욕 남자들 사회에서는 박지원과 최정민의 관계를 대부분 알고 있었으며 폭력배를 몇 차례 보내 최정민 가족들을 협박하는 등 박지원이 야비한 짓을 했다. 최 여인과 어머니가 여성단체 임원들과 교회 목사에게 눈물로 호소해 언론인들도 알게 됐으나, 박 씨가 한인회 회장인데다가 사업가로 재력이 있었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광고 때문에 기사를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 여인이 운영하던 꽃가게는 최 여인이 뉴욕을 떠난 후 박지원의 친척되는 박상원 씨로 업주가 변경되었으며 95년 한국일보가 발행한 한국인 업소록 주소록에도 박상원 꽃집으로 가게 이름이 바뀌어 게재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한편 현재 뉴욕 브롱스에 살고 있는 전남여고(광주) 출신 황모 여인(박지원 부인 선배)은 “미세스 박이 동창회 선배들에게 눈물로 애원하며 슬퍼한 일이 자주 있었다. 미세스 박은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입장 때문에 아내로서 무던히 가슴 태우며 몇번 이혼까지 결심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정민 여인이 박지원과 동거생활 하면서 여자아이 한명을 낳았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그들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씨 부인 이모 여인이 아들을 낳지 못해 고심 했으며 고아원에서 입양까지 생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때 박지원이 가발사업을 할 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들려주었다.

 

당시 사업을 하면서 룸살롱이나 한국 여인들이 운영하던 기생집에 다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은퇴했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탓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최 여인이 뉴욕에서 은밀한 술집을 얼마동안 경영했다는 소리는 필라델피아에서 뉴욕으로 술을 마시러 다니던 사람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일로 박지원 씨 등과 자주 어울리던 필라델피아 전 한인회장 B 모씨와 H씨는 탤런트 최 여인이 한식집 비슷한 음식점을 차리고 은밀한 술집을 경영해 그 집에 몇 번 간적이 있으나 그 마담이 박지원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증언 했다.

 

당시 뉴욕 브로드웨이 31번가 2층에서 한국에서 연예인 생활을 했다는 최 모 여인이 룸 살롱을 경영한 사실이 있다. 그 집에 칼럼자도 몇 번 간 적이 있다.

 

1979년 여름 어느날 밤 서울에서 뉴욕을 방문한 오치성 전 내무부장관과 그를 마중 나온 패거리들이 한 팀이 돼 술을 마시고 또다른 테이블에서는 보스턴 모 대학에서 연구하던 전직 외교관 한명과 당시 남미 어느 나라에 대사로 근무하던 최 모 대사가 뉴욕에 도착, 술을 마시다가 최 마담 때문에 시비가 붙어 술잔이 오고 가는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 현장에 있던 컬럼자가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자 그들이 놀라서 슬금슬금 피해 도망갔는데 오치성 전 내무장관은 서울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 때문에 그들과 술자리를 함께 했던 일이 있었다.

 

매춘업 사실, 확인은 못했으나 최 여인 동거, 협박, 꽃집 경영은 사실

 

박지원 씨가 매춘업에 손을 댔는지는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매춘업을 문제 삼았던 염진호 여사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정민 여인이 박지원의 자금 지원을 받아 꽃집을 운영하였으나 동거사실이 부인에게 알려지면서 부인 이모 여인이 학교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다니며 “자살하겠다”는 말과 이혼까지 결심했었다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주변 몇 사람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한편 최정민 씨는 자신을 찾아온 살인 청부업자에게 어머니와 함께 눈물로 호소하고 돈을 주어 살인청부업자의 심경이 변화, 박지원의 살인교사는 실패하게 된다. 두번째는 박지원의 부인 이모 여인이 최정민을 죽이기 위해 살인청부업자를 보냈다고 진정서에서 폭로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 몇몇 사람들은 “박지원이 최 여인을 죽이기 위해 폭력배를 보낸 것이 아니라 최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로 결혼한다고 하니까 박지원이 최 여인이 떠나지 못하도록 협박하기 위해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들을 했다.

 

또 당시 뉴욕현지 언론인 사회에서는 상당히 알려졌던 사건 스토리였는데 박지원이 돌린 촌지 봉투 때문에 사건이 조용히 처리된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건 최정민 씨의 진정서 내용이 허위는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여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죽일 목적이 아니라 협박만 하기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도, “밤에 여인 두 명만 있는 가게에 권총과 칼을 든 폭력배가 나타나 죽이겠다고 협박한 사실에 최정민과 그 어머니는 초죽음이 됐을 것이며 충분히 청부 살인업자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의 원로 여성운동가들은 “최 여인이 그때 왜 박지원이 보낸 살인청부업자와 부인이 보낸 살인청부업자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았는가? 당시 뉴욕 기자놈들은 무얼했는가”하고 원망했다.

 

3억원 위자료 받은 사실 없어 최 여인 측근들 부인, 거짓 소문

 

한편 유인물에 “최 여인이 지난 95년에 박지원으로부터 3억원을 받고서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폭로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최정민 씨 가족들은 부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 여인과 가까운 측근 가족들은 인터넷을 통해 박지원 관계 기사를 읽어 본 후 “박지원으로부터 위자료 명목으로 받은 돈은 없다. 다만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라면서 병원 치료비와 이사비용으로 얼마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3억원을 주었다는 소리는 박지원이 최여인과 관계가 여론화되니까 위자료를 주고 모두 정리됐다고 기자들에게 거짓말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에 대해 지난 96년 부천신문 취재진이 최 여인 가족들을 만났을 때 “박지원 대변인이 3억원을 위자료로 주었다는 것은 거짓이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국민회의 대변인 박지원의 정체’ 유인물 내용 가운데는 “박지원 가족 친일파에서 남로당(공산당)으로 변신한 가문”이라는 충격적인 내용도 담겨져 있으며 “박지원의 아버지 와 작은아버지가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 총살 당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이제 그 충격적인 내용을 추적해 보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