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역사,인물

한국의 굴뚝에 표정이 있다.

풍월 사선암 2010. 8. 17. 10:43

한국의 굴뚝에 표정이 있다.

 

굴뚝에 대한 단상(斷想)은 그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에 따라 다양하다. 전시용으로 복원한 굴뚝은 어쩐지 메말라 보이고 폐가의 굴뚝은 김용철의 시구(詩句)처럼 '목구멍이 까맣게 말라' 보인다. 눈이 휘날리는 들판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외딴 집 굴뚝은 따뜻해 보이고 이육사의 시에 나오는 '살랑살랑 감자 굽는 내가 솟아나는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은 정겨워 보인다.

 

▲ 굴뚝에 대한 단상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토속적, 서민적이지만 어딘지 목구멍이

말라 보인다.(일산 밤가시 마을초가)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웬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 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윤동주-굴뚝>

 

고향에서 돌아오는 길, 하얀 연기가 솟는 토담집 굴뚝을 보면 마음이 아려 온다. 저녁밥을 짓고 있는 허리 굽은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어느새 눈가엔 눈물이 고이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들킬새라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게 된다. 굴뚝에 대한 나의 단상은 애달픔이다.

 

집안 형편에 따라 굴뚝에서 나는 연기의 때깔도 달라진다.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생나무나 솔방울고지배기 혹은 잔가지를 땔 수밖에 없는 집의 굴뚝에서는 습하고 매캐하며 진한 회색 연기가 솟는다. 잘 마른 장작을 때는, 제법 살만한 집의 굴뚝에서는 건조하고 파아란 연기가 나고 숯을 사용했다는 궁궐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잘사는 집이든 못사는 집이든 모두 굴뚝을 갖추고 있다. 이는 구들이라는 우리의 독특한 주거문화에서 온 것이다. 식생활에서 신분의 높낮이를 떠나 모두 된장, 고추장을 먹는 독특한 장문화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굴뚝은 집의 규모나 생김새에 어울리게 만들어진다. 주로 담장과 조화를 이루는데 토담집 또는 일부 절집의 경우 황토흙에 깨진 기와나 막돌을 찔러 넣어 투박하게 만든다. 초가의 경우 펑퍼짐한 치마를 두르듯 굴뚝 허리에 짚가래를 둘러 초가의 지붕과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 전시용으로 지은 집 굴뚝이라 인위적 냄새가 나지만 토석담과 옹기굴뚝은

무척 잘 어울린다.(용인 민속촌)

 

울타리 집과 어울리는 굴뚝은 나무판자 네 개로 통을 만들어 세운 나무굴뚝이다. 돌이 많은 지역이라면 돌을 쌓아 굴뚝을 만들기도 한다. 담과 굴뚝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주변에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벽돌로 된 고급 굴뚝 말고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깨진 기와나 황토흙 나무 돌 짚 등을 이용해 만들었고 벽돌굴뚝은 궁궐이나 상류층 집이나 되어야 볼 수 있었다.

 

▲ 울타리와 잘 어울리는 나무굴뚝(용인 민속촌)

 

꽃담의 경우라면 경복궁 아미산 굴뚝과 자경전 십장생 굴뚝처럼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멋이 나도록 만든다. 흔히 굴뚝의 백미로 손꼽히는 이 굴뚝들은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하나의 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나의 정원 조각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라도 우리 조상은 그 실용성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멋을 부릴 줄 알았다.

 

▲ 경복궁 아미산 굴뚝. 화려함 측면에서 세계 제일의 굴뚝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사고석담과 어울리는 굴뚝은 절제미가 돋보이는 회색 벽돌굴뚝이다. 예로부터 벽돌로 만들어진 굴뚝은 식복(食福)이 좋다 하여 단단한 살림살이를 뜻하기도 한다. 궁궐의 경우 화려한 색보다는 회색벽돌을 사용하여 세련되게 만든다.

 

화강암을 곱게 다듬어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회색벽돌을 일정 높이 만큼 쌓아 올린 후 주황색 벽돌을 쌓아 경계를 만들고 다시 회색 벽돌을 쌓아 올려 멋을 낸다. 면 가운데에는 네모난 테를 두르고 중심에 길상문자나 장생류, 꽃 등을 새겨 넣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듯 공을 들인다. 토석담이라도 조선시대 상류집은 본채와 떨어진 곳에 온갖 장식을 다한 벽돌굴뚝을 세우기도 했다.

 

▲ 창경궁 굴뚝, 절제미가 돋보인다

 

굴뚝을 만들 때도 담장 하나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굴뚝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색과 모양, 크기, 치장 등을 달리한다. 아미산 굴뚝은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의 후원이며 여성 전용공간인 아미산에 세워져 있고 자경전 굴뚝은 조대비가 거처하던 자경전 뒤편에 있다.

 

아미산 굴뚝은 화강암 지대석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았고 육각의 각 면에 구워 만든 무늬판을 박아 넣어 장식하였다. 위에는 목조건축처럼 처마를 만들고 그 위에 기와지붕과 연가를 얹어 놓았다. 화려한 붉은 벽돌을 사용하였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사각형을 버리고 볼륨감과 안정감을 주는 육각형을 택하였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은 네모난 틀 속에 십장생, 다산의 상징인 포도, 연꽃 등을 장식하여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나타내었다.

 

선비집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리 높지 않게 돌을 쌓아 암팡지게 만들었다. 암팡진 모습은 그 집 주인의 인품을 드러내고 높지 않은 굴뚝은 검소한 생활을 통해 유학적 덕목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 선비집의 굴뚝, 돌로 낮게 암팡지게 만들었다.(예산 김정희 생가)

 

하지만 한옥문화원장 신영훈 선생의 말을 빌리면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는 아궁이에서 시작하여 고래를 타고 개자리(방구들 윗목에 깊이 파 놓은 고랑)에 머물며 티끌과 먼지를 털어 낸 다음 굴뚝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개자리를 통과한 연기는 깨끗하기도 하려니와 방충역할도 해 모기 등 해충을 없애 주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낮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한옥의 한 정취이면서 삶의 지혜로도 볼 수 있다.

 

만든 이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 나는 굴뚝은 뭐니뭐니 해도 절집의 것이라 할 것이다. 여주 신륵사 적묵당 굴뚝이 대표적인데 시인 묵객이 묵어 가며 자연을 노래했던 집처럼 개성이 강하다. 부서진 기와로 둥글게 쌓아 올리고 위에는 두 눈을 만들기라도 하듯 두 개의 동그란 무늬를 놓았다. 세워 놓은 제비집 같아 보인다.

 

▲ 여주 신륵사의 적묵당 굴뚝

 

남해 용문사의 키 작은 굴뚝은 자연석과 흙을 이용하여 이층을 쌓고 수키와와 암키와로 지붕을 만들었다. 연가 위의 모자는 누가 얹어 놓았는지, 분명 굴뚝의 생김새가 너무 귀여워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 틀림없다. 미황사, 귀신사, 흥국사 등 많은 절에서 이런 투박하고 서민적이면서도 개성이 두드러진 굴뚝을 흔히 볼 수 있다.

 

▲ 남해 용문사 굴뚝

 

절집의 굴뚝은 기와를 이용해 만든 경우가 많다. 주기적으로 지붕을 새로 이어야 하기 때문에 기와가 풍부하다. 전등사와 봉정사의 키 큰 굴뚝은 암키와 한칸을 쌓고 위에 황토를 얇게 바르고 다시 기와를 쌓았는데 기와는 장식이 아닌 굴뚝의 주재료로 사용되었다. 전등사 굴뚝은 키가 훤칠한 것이 망루를 보는 것 같고 봉정사 굴뚝은 키 큰 굴뚝 위에 앙증맞게 얹어 놓은 옹기와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이 정감이 간다.

 

▲ 강화 전등사 굴뚝

 

방을 덥히지 않고 음식만을 만들 요량이면 부엌 밖에다 아궁이를 만들어 조그마한 굴뚝을 세우기도 했다. 주로 여름에 음식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모내기나 추수 때, 제삿날이나 명절 혹은 혼례를 치를 때 이용하기도 하고 더운 여름날 옥수수나 감자를 삶아 먹을 때 이용하기도 했다. 이웃들은 솥과 굴뚝에서 나는 냄새로 그 집에서 무슨 음식을 하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부엌 밖에 설치한 아궁이와 굴뚝(용인 민속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굴뚝은 세련되고 화사한 궁궐의 굴뚝도, 암팡진 선비의 굴뚝도, 개성이 강한 절집의 굴뚝이 아닌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에서 살랑살랑 솟아나는 감자 굽는 내'가 나는 굴뚝, 음식과 밥내가 묻어 있는 그런 굴뚝이 아닌가 싶다. 이 굴뚝 연기는 생활의 향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