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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의 두주인공 諸葛亮과 司馬懿가 同門修學한 이야기

풍월 사선암 2009. 9. 12. 11:33

 

三國志의 두주인공 諸葛亮(孔明)과 司馬懿(仲達)가 同門修學한 이야기


공명이 어머니를 여의고 몇 년 후 아버지 제갈규 마저 잃고 장형 제갈근의 보살핌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였을 때이다.


원래 공명의 집안이 없이 사는 집안이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친 것이다.


공명이 살던 시대는 오직 공부에만 전념해야지 성공할 수 있었을 만큼 공부분량이 많았는데 형 제갈근이 공명의 학업을 도운다고는 하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사를 떠맡게 된 제갈근이 공명에게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제갈근은 그래서 공명을 당시 태산 산속에 30여년간을 은거하며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던 거암선생이란 60세의 노인에게 유학을 보내게 된다.


공명이 거암선생에게 입문할 당시 거암선생의 제자 중에선 독보적인 존재였던 사마의가 있었는데 공명의 명석함을 안 거암선생은 사마의와 좋은 경쟁자가 되겠다 싶어 여럿의 제자들 중 그 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거암선생이란 사람은 보통 훈장이 아니었는데 그에게는 천하의 기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서에는 천문지리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병법의 용병 포진술을 비롯하여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되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면서 따르도록 하는 비법 등 온갖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정치 지도자의 실무지침서요, 장래의 일을 선견할 수 있는 예언서와도 같은 기서였던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가지게 되는 사람은 경천동지의 대사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임에 분명했다. 나이 늙어서야 이 기서를 입수한 거암선생은 이 책을 전수할 제자를 찾고 있었다.


거암 선생에게는 자식이 없었던 것이다. 설령 자식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기서를 함부로 전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 했었다. 군웅이 각지에서 할거하며 분쟁이 끊이지 않는 때요, 또 반란이 사방에서 일어나 피비린내 나는 토벌전으로 날이 새고 밤을 맞는 때이다.


이런 때에 자칫 이런 기서가 소인배에게 들어간다면 국기가 흔들리고 말 위험이 있고 자기 자신의 생명도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기서를 전수할 사람을 찾기에 심사숙고하던 거암 선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거암선생은 그 기서를 물려받을 사람은 공명과 사마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두 학동에 대해서 그 성품과 인덕, 그리고 지향하는 바를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때 눈치 빠른 두 학동은 이미 거암선생이 천하의 기서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서를 어떻게 해서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거암선생은 사마의와 공명을 데리고 병법 포진법의 강론을 위해 산에 오르는데 강론 도중 한 나무꾼이 발을 헛딛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거암선생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강론을 계속하고 사마의도 꼿꼿이 앉아서 강론을 경청했지만 제갈량은 날듯이 산을 내려가 나무꾼을 구해 집으로 데려간다.

 

거암선생은 인품면에서 공명이 사마의보다도 나음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공명은 계모 원씨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거암선생의 허락을 받고 하산하여 원씨를 간병한 후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마의의 아버지가 중태라는 소식이 전해졌건만 사마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에만 열중했다.


만약 자기가 없는 틈을 타 기서를 공명에게 물려줄까봐 조바심이 나서 그랬던 것이지만 거암선생은 그 일로 하여 결정적으로 공명에게 기서를 물려줄 것을 다짐한다. 그로부터 1년후 거암선생은 고령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자리에 눕고 만다. 학동들은 고명한 의원을 찾아다니며 탕약을 지어왔지만 사마의는 약을 다리어 스승에게 바치기는 하지만 의원을 직접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거암선생이 병석에 누운지 두 달이 되자 학동들은 하나 둘씩 떠나가고 오직 공명과 사마의만이 남게 된다. 어느 날 공명이 약초를 캐러간 사이 거암선생은 갑자기 병세가 약화되 공명을 찾지만 공명은 없고 사마의만이 있는것을 알자 허공만 바라볼 뿐 사마의에게 기서를 물려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기서를 물려줄 뜻이 없음을 안 사마의는 거암선생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집안을 뒤져 비단으로 곱게 싸여져 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기서인 것으로 착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승을 버리고 달아나버린다.


제갈량이 약초를 구해가지고 서당에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인데 거암선생은 실낱간은 생명을 유지하며 기다리고 있던 그는 베개 속에 감춰두었던 기서를 공명에게 부탁하며 자신과 집을 불사르라는 유언을 남기고 하직한다. 공명은 스승의 유언대로 서당과 스승의 시체까지 모두 태워버리고 집으로 하산한다.


한편 예의 기서를 가지고 집에 돌아온 사마의는 쾌재를 부르며 기서를 펴보았지만 책 머리에는 '나라를 얻는 자는 먼저 백성을 사랑하고 효도를 하는 자는 먼저 부모를 받드나니 이 두 가지를 못한 자에게 내 어찌 기서를 전할소냐.'라는 글귀만 써있을 뿐이다.


사마의는 이에 크게 뉘우치고 오직 학업과 자신의 수양에만 전념하며 자신의 야망을 향해 차곡차곡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