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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의 수장 풍월주(風月主)의 계보

풍월 사선암 2009. 10. 16. 08:10

 

화랑의 수장 풍월주(風月主)의 계보

 

풍월주(風月主)는 화랑세기에 기록된 화랑도의 수장이다. 후에 화랑도의 파가 갈라지며 국선과 풍월주가 각 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풍월주는 540년 처음 설치되어 681년 폐지되었으며, 32명의 화랑에게 승계되었다.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가 말썽 많은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선화를 화랑으로 삼았는데 이 무리들을 일러 풍월(風月)이라 하고 그 우두머리를 풍월주라 하였다.”는 기록이 <화랑세기> 미생부공 편에 나온다.

 

01대 위화랑(魏花郞) ; 아버지=섬신, 어머니=벽아부인, 아내=벽화, 오도, 딸=옥진, 금진

02대 미진부(未珍夫) ; 아버지=아시, 어머니=삼엽궁주, 아내=묘도, 지소  딸=미실, 아들=미생랑

03대 모랑(毛郞) ; 아버지=법흥왕, 어머니=보과공주, 아내=준화 , 딸=준모

04대 이화랑(二花郞) ; 아버지=위화랑, 어머니=준실, 아내=숙명궁주, 아들=보리공

05대 사다함(斯多含) ; 아버지=구리지, 어머니=금진낭주, 미실과 사랑


06대 세종(世宗) ; 아버지 =태종, 어머니=지소태후, 아내=미실, 아들=하종

07대 설원랑(薛原郞) ; 아버지= 설성, 어머니=금진낭주, 아내=준화, 아들=설웅, 보종(미실의 아들)

08대 문노(文弩) ; 아버지=비조부, 어머니=문화공주(가야국), 아내=윤궁, 아들=대강, 충강, 금강, 신강

09대 비보랑(秘寶郞) ; 아버지=비대, 어머니=실보낭주, 아내=세진낭주, 아들=세호랑, 딸=세미, 세신

10대 미생랑(美生郞) ; 아버지=미진부, 어머니=묘도, 아내=준모, 미실의 동생

 

 

11대 하종(夏宗) ; 아버지=세종, 어머니=미실궁주, 아내=미모, 아들=모종, 딸=유모, 영모(유신과 결혼) 

12대 보리(菩利) ; 아버지=이화, 어머니=숙명공주, 아내=만룡, 아들=예원공

13대 용춘(龍春) ; 아버지=진지왕(금륜태자), 어머니=지도태후, 아내=천명, 선덕여왕, 아들=춘추

14대 호림(虎林) ; 아버지=복승, 어머니=송화공주, 아내=현강낭주(문노 딸), 유모낭주, 아들=선종랑

15대 유신(庾信) ; 아버지=서현, 어머니=만명부인, 아내=지소부인, 남동생=흠순, 여동생=문명태후

 

16대 보종(寶宗) ; 아버지=설원랑, 어머니=미실궁주, 아내=양명공주, 현강, 딸=보라, 보량

17대 염장(廉長) ; 아버지=천주, 어머니=지도태후, 아내=하희, 아들=춘장, 딸=춘화, 윤화

18대 춘추(春秋) ; 아버지=용춘, 어머니=천명공주, 아내=문명(문희), 아들= 법민(문무왕), 인문

19대 흠순(欽純) ; 아버지=서현, 어머니=만명부인, 아내=보단, 유신의 동생,

20대 예원(禮元) ; 아버지=보리, 어머니=만룡, 아내=찰기, 아들=오기(吳起)

 

21대 선품(善品) ; 아버지=구룡, 어머니=보화공주, 딸=자의태후(법민과 결혼)

22대 양도(良圖) ; 아버지=모종, 어머니=양명공주,

23대 군관(軍官) ; 아버지=동란, 어머니=석명공주, 아내=양도의 누이 2명,

24대 천광(天光) ; 아버지=수품, 어머니=천장낭주,

25대 춘장(春長) ; 아버지=염장, 어머니=하희,


26대 진공(眞功) ; 아버지=사린, 어머니=호명, 아내=흠신(흠돌의 누이), 아들=신공

27대 흠돌(欽突) ; 아버지=달복, 어머니=정희 (유신의 여동생) 아내=진광,언원, 아들=흠언

28대 오기(吳起) ; 아버지=예원, 어머니= 우야공주(진평왕딸), 아내=운명, 아들=대문(화랑세기 저자)

29대 원선(元宣) ; 아버지=흠순, 어머니=보단,

30대 천관(天官) ; 아버지=군관, 어머니=천운, 아내=흠돌의 딸


31대 흠언(欽言) ; 아버지=흠돌, 어머니=진광(유신의 딸)

32대 신공(信功) ; 아버지=진공, 어머니=흠신(유신 여동생 정희의 딸),


(참고) 

위에서 보듯 신라는 미실 사후 권력의 중심이 가야파 특히 김유신 일가 쪽으로  넘어간다. 유신과 유신의 여동생이며 무열왕(김춘추)의 아내인 문명태후에게 권력이 넘어 가면서 유신의 또 다른 누이 정희의 자녀들이 신라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된다. 여기에 불만을 갖고 있던 진골 세력이 문명태후의  죽음에 즈음하여 신문왕의 어머니 자의태후를 중심으로 가야(유신)파를 제거하려 하자  흠돌을 중심으로 한 가야파가 반란을 일으키지만 이들은  결국 반란에 실패하고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때 자의 태후는 이들 세력의 기반이 되는 신궁(神宮) 소속의 화랑제도를 폐지하고 이들 조직을 국가 소속의 국선(國仙)과 국학(國學)으로 편입시킴으로 화랑제도는 그 끝을 보게 된다.

 


 

화랑세기(花郞世記)!

 

김대문은 신문왕(神文王), 효소왕(孝昭王), 성덕왕(聖德王) 때 활동한 신라의 진골 귀족 집안의 아들로서 33대 聖德王 3년(704)에는 漢山州 都督으로 임명 되기도한 관리였다. 몇몇 傳記를 저술했는데 그중 "화랑세기(花郞世記)" ,"한산기(漢山記)" 등이 있다. 24대 진흥왕이 풍월주를 최초 임명원년(540년)으로 부터 31대 신문왕이 폐지한 해(681년)까지 140년간의 신라 중기고라 할 수 있다. 그 책에는 화랑의 기원, 역대 화랑의 지도자인 풍월주(風月主) 32명에 대한 계보 및 행적 등이 鄕歌와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화랑세기>가 사라진 책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일본 궁내성 도서관에 근무하던 「박창화」씨가 1923 ~ 1944년 사이에 필사한것을 가족과 제자가 소장하고 있던중 1989년 2월에  筆寫本 <화랑세기>가 공개되어 1995년 「이종욱」 교수가 입수하여 번역, 출간하였다. 역사학계의 연구자 가운데 일부는 책의 내용이 사실적이라면서 김대문의 <화랑세기>가 맞다고 인정하지만, 또다른 일부의 연구자들은 책을 소장하게 된 경위가 분명치 않고, 책의 내용 중 골품제도 및 혼인제도에 관한 부분이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배치됨을 들어 위서(僞書)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