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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최남단 최고의 등대가 있는 거문도

풍월 사선암 2009. 4. 21. 15:02

남해 최남단 최고의 등대가 있는 거문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가 있고, 남해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섬 거문도. 한때 침략자 영국군의 깃발이 나부낀 채 해밀턴 항이라 불렸던 거문도. 그리고 백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하얀 섬 백도. 

글·박상대 기자사진·정대일 기자취재협조·여수시청 

 

찬바람이 불면 바다로 가자! 참으로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살아온 말입니다.

찬바람이 불면 저는 바닷가에 갑니다.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겨울 바다는 사랑을 가르쳐 줍니다. 검푸른 바다에서 밀려오는 하얀 파도, 하얀 물결 무늬는 가슴이 뛰게 합니다.

 

거문도를 취재하러 가던 날, 이른 아침에 여객선터미널에 나갔더니 파랑주의보가 내렸다네요. 그래서 여객선이 출항하지 않는답니다.

 

섬을 여행할 때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전날 인터넷 검색으로 날씨가 좋다고 해서 나선 걸음인데 항구에선 파랑주의보 때문에 출항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럴 때 여행객은 많이 당혹스럽습니다. 여행 스케줄을 바꿀 때는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뭉그적거리고 있으면 시간만 흘러가잖아요. 절벽아래 바다가 아름답고 일출이 유명한 향일암과 여수 시내를 둘러보고 가까이 있는 사도라는 섬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사도가 고향인 선배가 있는데 꼭 다녀오라고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거문도 가는 여객선 ‘오가고호’가 돌산대교 밑을 미끄러져 나갔습니다. 여수항 주변 옹기종기 붙어 있는 건물들이 거대한 조각품처럼 보였습니다. 배가 육지에서 멀어져갈수록 바닷물은 더 짙은 검푸른 색을 띱니다. 크고 작은 섬들이 다가왔다 밀려갑니다. 아침 햇살이 바닷물에 반사되어 눈이 부십니다. 잔잔한 물결에 빛나는 햇빛을 볼 때마다 은빛날개를 한 수많은 나비떼의 군무를 떠올립니다.

 

파란 하늘, 드넓은 바다, 까마득히 떠 있는 작은 섬들. 여객선 갑판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는 여행객은 사색에 젖습니다. 제법 찬 바닷바람이 얼굴을 훑고 지나가지만 여행객은 더 없는 행복감에 취합니다.

 

섬들이 간직하고 있을 수많은 전설들을 떠올리고, 바닷길을 항해하고 다녔을 무수히 많은 선원들과 여행객들을 떠올려봅니다.

 

어느 덧 배가 거문도에 도착했네요. 여수와 제주도 중간 지점에 위치한 다도해의 최남단 섬! 천연적 항만이 호수처럼 형성되어 있어 도내해(島內海)라고 하는 섬, 그래서 태풍이 불면 큰바다의 어선들이 쉬었다가는 섬, 서도·동도·고도의 세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문장가들이 많은 것을 보고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건의하여 거문도가 되었다는 섬입니다.

 

거문도에 내리니 갯내음이 확 밀려듭니다. 여수에 사는 여행사 사장님이 다른 항구나 섬과 달리 거문도에는 찝찝한 갯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하네요. 하늘이 맑고 바람이 좀 불어준 덕분인지 정말 상쾌한 바닷바람이 여행객을 반겼습니다.


섬이름에는 ‘거’자가 있지만 항구는 아주 아담하네요. 배에서 내려 여객선 터미널 뒤로 가니 여남은 개 음식점들이 들어선 골목이 있군요. 허름한 식당에 들러 갈치회를 먹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갈치회를 최고 상품으로 친다고 해서요. 갈치회에 소주를 한 잔 보탰더니 입안에 생선 향내가 돌데요. 한참 동안 회맛에 취해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갈치구이 한 도막을 내놓습니다. 갈치구이는 굵은 소금과 함께 할 때 가장 맛있지요. 굵은 소금을 뿌려 구었다는 갈치구이를 먹는데 혀가 춤을 춥니다.


남해에서 가장 남쪽에 있다는 거문도 등대는 서도의 동남쪽 끄트머리 수월산에 있습니다. 1904년에 설치되었는데 40km까지 불빛이 나가는 동양 최대 규모의 등대라네요. 동도에서 다리를 건너 찾아가는 길에는 동백나무가 1km 넘게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12월 초부터 동백꽃이 피는데 장관이라고 합니다.

 

등대 앞 정자 관백정(觀白亭)에 앉아 있는데 그냥 그대로 시간이 멈춰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매기가 날고, 어선들이 흰 물결을 만들며 지나가고,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고… 문득 사랑하는 사람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습니다.

 

관백정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작은 섬들이 보입니다. 백도랍니다. 백도를 가기 위해 거문도 항구에서 다시 백도 유람선을 탔습니다. 30분을 더 가야 한다네요. 30분 쯤 선상에서 섬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여행이랍니다.


백도? 하얀섬인지 백 개로 된 섬인지 궁금했는데, 아름다운 전설을 들려줍니다. 옥황상제가 선녀들을 시켜 백도가 몇 개의 섬인지 알아 오라 했는데, 누구는 백 개라하고 누구는 99개라 한 겁니다. 직접 확인해보니 물이 빠지면 백 개요, 물이 차면 99개더랍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 편을 들어줄 수 없어 하얀섬 백도(白島)라고 표현한 거라네요.


백도에 다달아 섬을 한 바퀴 도는데 선상에서 열심히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는 아저씨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가슴이 둥둥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땅에 이토록 아름다운 섬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모든 섬들의 각기 다른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습니다. 선실 매장에서 기어코 맥주를 사서 한 모금 마시는데 또르륵 눈물이 떨어지데요. 아름다움에 취해 눈물을 흘리기는 처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