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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신비의 극치와 인간이 만든 신기의 절정 - 진안 마이산

풍월 사선암 2009. 4. 21. 14:50

자연이 만든 신비의 극치와 인간이 만든 신기의 절정 

진안 마이산

 

겨울이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다. 몸은 점점 움츠러들고 모처럼 온 가족이 쉬는 휴일을 맞아도 선뜻 신발끈 매기가 쉽지 않다. 가고 싶은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닌데 한결가족답지 않게 뭉그적거리고 있다. 그렇게 방치하다간 몸이 더 처질 것은 뻔한 이치, 일단 나서기로 했다. 여전히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한 마이봉과 탑사가 있는 ‘마이산’을 만나고자 겨울 찬바람을 뚫고 전북 진안으로 향한다.  / 글·사진 한결가족   

 

사람들은 ‘최고, 최대, 유일’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좋아한다. 마이산 앞에도 ‘세계 유일의 부부봉’이란 꾸밈을 곁들여 놓았다. 그전에도 대여섯 차례 찾은 적이 있지만, 오밀조밀하게 돌탑을 쌓아 놓은 ‘탑사’와 ‘은수사’를 거치는 가벼운 산책으로 마친 까닭에 이번엔 마이산을 빙 돌아 볼 참이다.

 

광주에서 출발, 88고속도로를 타고 순창, 임실 쪽으로 1시간 30여분을 달리니 저 멀리 우뚝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이산은 가을이름이긴 하지만 말귀를 닮아 그리 지었다는 말에 한결이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브라질 리오에서 본 빵산(팡데아수카르)이 우리나라에도 있네요?”라고 거든다. 더 어렸을 때는 “정말 말귀랑 닮았다!”라더니 말이다.

 

도립공원이라 주차비와 입장료를 내고 관광안내도를 살피며 산길을 짐작해 본다. 겨울 산길이니, 어림잡아 3시간은 짱짱할 것 같다.

 

‘금당사-전망대-봉두봉-은수사-탑사’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암마이봉을 빙둘러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여유 있게 둘러보면 다시 주차장까지 4시간 정도 걸릴 거리다.


입구에서 바로 왼쪽으로 돌아 산길로 접어들었다. 대부분의 가족단위 행락객들은 우리가 예전에 찾았던 길로 30분도 안 걸릴 탑사로 향하고 있지만, 산길에도 드문드문 등산객들이 앞서고 있었다.

 

여느 산길과 비슷한 산죽과 떡갈나무 숲을 가파르게 오르니 바로 능선에 다다른다. 어디에서건 암마이봉이 보여 눈길을 붙잡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 길은 그리 힘들지 않다. 다행히 길이 남쪽 기슭을 따라 이어지고 있어 찬바람도 막아준다. 양지쪽에서는 햇살이 따스하게 옷자락에 내려앉는다. 쉴 것도 없고 별 어려움도 없이 천천히, 새로 짓고 있는 금당사 곁을 지나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전망대가 서 있는 비룡대가 나타난다. 거대한 바위에 가파르게 만들어진 철제계단을 오르는데 마이산이 세계 최대규모의 천연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사실이 탑사쪽에서 바라보던 것과 다른 실감으로 다가온다.

 

비룡대에선 마이산의 전경이 확실히 눈에 안긴다. 벌집모양의 지형, 즉 타포니가 꼭 포탄을 맞은 것처럼 움푹 패인 게 한 눈에 잡힌다. 타포니(taffoni)는 역암에서 자갈 사이를 메우고 있는 물질인 매트릭스(metrix)가 자갈보다 빨리 풍화되는 차별침식으로 역(礫), 즉 자갈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구멍이다.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던 ‘과학박사’ 한결이도 처음 알게 된 것이라며 눈을 크게 뜬다.

 

그래도 “포탄자국보다는 달 표면 같다”며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여 과학지식을 뽐낸다. 멀리 흰눈에 덮인 무주의 덕유산까지 바라보면서 마이산의 겨울 풍경을 한껏 맛보았다. 이제 진짜 마이봉을 앞에 두고 가는 길, 그리 험하지는 않다. 그런데 2시간 가까이 걷자 한결이가 슬슬 투정을 부린다. 혼자 뒤 처지기에 “다시 똥차가 되어 버렸는가 보다”라고 놀려도 별 대꾸가 없다.

 

그렇게 느리던 걸음이 마주치는 산행객들의 칭찬에 다시 힘을 넣기 시작하는데 선택의 순간이 왔다. 삼거리, 한 쪽은 탑사로 곧장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쪽은 암마이봉을 품고 한 바퀴 돌아가는 길이다. 엄마 아빠는 “이왕 온 길, 언제 다시 오겠느냐”며 일주를 주장하는데, 한결이는 탑사쪽을 고집한다. 앞으로도 1시간 이상 걸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럼 혼자 먼저 탑사에 내려가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에 “한결가족인데 나만 어떻게 빠져요?”라며 마음을 고쳐먹은 한결이 손을 잡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그런데 길이 만만치 않다. 북쪽 능선을 끼고 도는 길이라 길이 얼었고 경사도 심해 조금만 잘못하면 미끄러진다. 조심조심 엉금엉금 길을 내려간다. 온통 바위뿐인 암마이봉을 오른쪽에 안고 빙 돌아간다. 가끔은 반대쪽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보내느라 몸을 바위에 붙이기도 한다.


조심스러운 길을 고생하며 30여 분 걸으니, 숫마이봉이 웅장하게 눈앞에 떡 나타난다. 바로 밑에는 예전에 우리 부부가 손잡고 걸었던 은수사 위 쉼터가 나온다. 그곳은 진안 쪽으로 넘어가는 사람, 그 쪽에서 넘어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별 볼 것이 없다는데도 한결이는 자기는 본 적이 없으니 꼭 봐야 한다며 쉼터 가까이에 있는 바위굴을 가잔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을 한 잔 먹어볼까 싶어 함께 갔더니 천장 쪽에 비둘기가 살면서 똥을 싸놓아 물을 먹을 수가 없다. 쉼터에서 내려가는 길은 굵은 나무로 튼튼하게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부턴 말 그대로 산책. 먼저 ‘은수사’가 반겼다. 미륵의 모습을 한 숫마이봉의 턱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이 절은 무량광전과 단 몇 채의 부속건물만 있는 단아한 사찰이다. 얼음이 언 약수 한 모금을 시원하게 마시고, 겨울철에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신비한 현상인 역고드름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청실배나무 아래에 많은 물대접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정말로 고드름이 위로 자라고 있었다. 마이산 안에서 겨울에 정화수를 떠놓으면 얼음 기둥이 이렇게 솟아오른다는데, 마이산에 심취한 사람들은 신령의 발로라고 여긴다.

  

마지막 코스는 이번 발길의 절정인 ‘탑사’다. 암마이봉 아래 좁은 골짜기 안에 80여기의 돌탑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가까이 보면 전부 외줄 탑과 원뿔형인데 3m가 넘는 탑들이 시멘트 한 줌 없이 세월의 비바람을 견디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어떻게 이 탑들을 만들었을까 생각하는 것은 무리, 그냥 신비롭다는 정도로 묻어두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간단하게 소개된 안내판에는 18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이갑룡 처사가 스물다섯살 되던 해에 용화세계를 꿈꾸며 이곳에 들어와 사람들의 죄를 빌고 창생을 구할 목적으로 30년을 하루같이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108개의 탑을 쌓았다고 써 있다.

 

세계적인 지질학자들도 직접 보면 놀란다는 마이산.

‘부부봉, 건곤봉, 천지봉’이란 별명을 갖고 있고, 계절별로 호까지 지니고 있는 산.

겨울을 나고 봄 바위에 붙어 자라는 바위 옷을 보면 돛대처럼 보인다는 ‘돛대봉’, 용머리에 난 뿔처럼 보인다는 ‘용각봉’, 단풍이 검붉게 물든 가을의 ‘마이봉’, 겨울엔 눈이 붙어 있질 못하는 지형적 특색으로 화선지를 치려는 붓모양이라 하여 ‘문필봉’ 등. 자연이 만든 신비의 극치(마이산)와 인간이 만든 신기의 절정(탑사)을 함께 누린 날, 우리가족의 가슴속에도 ‘가족애’라는 새로운 신력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