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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닿은 산에 물소리 흐르고 - 봉화의 삼사 각화사, 축서사, 청량사

풍월 사선암 2009. 4. 21. 12:22

하늘 닿은 산에 물소리 흐르고 

봉화의 삼사(三寺) 각화사, 축서사, 청량사

 

하늘은 푸르고 산은 하늘을 닮아 또한 푸르다. 더할 수 없는 가을의 청량함. 아쉬운 게 있다면 이 푸르름이 길지 않다는 것. 시작이다 싶으면 가을은 곧 겨울로 들어 낙엽을 떨구고 사라져 버린다. 

글·사진 이현동(대구시 문화유산해설사) 

 

각화사(覺華寺)는 태백산 능선의 해발 1천1백77m의 각화산 아래에 있는 절이다. 지금의 춘양고등학교 교정에 있던 ‘남화사’라는 절이 없어지고 그를 대신해 새로 지으면서 옛 절인 남화사를 생각한다는 의미로 각화사라고 했다. 절의 내력이 그러하다면 나는 무엇을 기억하며 절을 찾을까? 옛 애인…. 절에 오를수록 기억은 무거워지는데 걸음은 가볍다. 사랑보다 절이 더 좋은가!

 

각화사는 단촐하다. 종루인 월영루(月影樓)를 오르면 대웅전과 산령각 그리고 태백선원과 요사. 그래도 이 절에 보이는 것은 간단해도 숨어 흐르는 정신은 만만치 않다. 수행하기에 더없이 좋아 선승(禪僧)들이 즐겨 찾는 곳. 일반인들은 볼 게 없으면 찾지 않는다. 작년 여름 각화사의 스님들은 2시간만 자고 몇 개월을 참선만 했다. 선승의 진면목을 그때 보았지 않았던가! 다시 찾은 각화사는 그저 고요하기만 한데, 선은 고요한 가운데 물 흐르듯 안으로 흐른다. 하늘에 닿은 산사에 흐르는 물소리는 하늘에 닿을 듯 마음으로 흐른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 오를 적에 못 보았던 월영루 옆의 삼층석탑이 눈에 띤다.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피니 기단석 하층과 상층 사이에 판석 1매가 끼워져 있다. 드문 현상이다.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 탑이 고맙다. 탑을 뒤로하고 각화사 귀부로 옮겨간다.

 

각화사 귀부(龜趺)는 고려시대 통진대사 비의 일부로 전하는데, 비석의 몸돌은 정작 ‘각화사기적비’라고 1984년에 만들어 올려놓은 것이었다. 귀부는 제 비신을 잃었다. 살짝 다가가 거북 등을 어루만져 주니 등의 전면에 새겨진 육각문마다 ‘왕(王)’자와 ‘만(卍)’자가 눈에 쏙 들어오는지라 손이 쉽게 닿질 못한다. ‘왕(王)’자는 무얼 의미할까?


각화사를 내려와 붉은색이 완연한 사과밭을 끼고 돌아 두내약수탕, 오전약수탕을 지나 축서사에 다다른다.

축서사(鷲棲寺).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시던 인도 ‘영축산’을 의미하는 ‘축(鷲)’과 ‘깃들어 있다’는 의미의 ‘서(棲)’이니 축서사는 부처님의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의 사찰이다. 축서사는 부근의 부석사와 더불어 산세와 산사가 멋진 어울림을 보여주는 곳이다.

 

“절이 곧 산이고, 산이 곧 절이다”라고 해야 하나, 절을 안은 산이, 산에 안긴 절이 서로 아늑하고 조화로우니 보기에도 거슬림이 없다. 저 멀리 소백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축서사의 기와 지붕선들은 서쪽 하늘 저녁노을에 부처님을 맞이하는 듯, 하늘에 오를 듯하다.

 

축서사에는 9세기경에 만들어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석탑, 석등이 있다. 대웅전의 비로자나불 좌상은 불상의 상호, 옷주름에서 보이는 양식적 특징도 시간을 두고두고 대면케 한다. 가느다란 눈, 일자로 다문 입은 고요한 분위기를 만든다. 얼굴에 비해 적당히 넓게 느껴지는 어깨와 가슴 그리고 벌린 무릎은 안정적인데, 옷주름 선이 평행선 같아 다만 좀 형식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도 무릎 사이 옷주름이 부채꼴 형태의 물결 모양으로 표현된 것은 아주 특이한 점이었다. 다만 전신에 걸쳐 흰색칠을 해 놓은 것이 좀 못 마땅스럽지만 어디 이 불상을 조성하던 정성을 생각한다면 감히 대놓고 할 소리인가! 나무로 만든 불상의 광배 또한 진기하다. 후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의 석조 광배는 깨어져 상부만 남아 있다고 한다.

 

축서사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삼층석탑은 언부스님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조성한 탑인데, 언부스님의 어머니는 신라 시중(현재 국무총리 격)인 김양종의 딸이었다. 탑 속의 사리함에서 나온 석탑 조성기록에 의하면 납이 만들어진 시기가 867년(경문왕 7)이라고 한다. 탑의 조성 시기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큰 의미가 된다.

 

불상을 뵙고 석탑을 대하고 다시 축서사 뜰에 서니 석등 너머 소백산 자락들이 어둑하다. 날씨가 흐리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제 빛을 뿌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지 싶었는데, 단단히 벼르고 찾을 때는 잘 맞지 않는다.


청량사(淸凉寺)로 오른다. 꽤나 가파른 길에 바람소리보다 오히려 숨소리 높은데, 잠시 발길 멈추고 거친 숨소리 한번 고를 때,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청량산 36봉우리가 모두 부처님 안이 아니던가! 문수봉, 의상봉, 보살봉, 금탑봉, 연화봉…. 봉봉들이 솟아 하늘에 닿았다. 하늘에 닿은 봉우리들은 청량사를 안고, 이 봉우리들을 다시 부처님이 안았던가!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청량사에 내린다.

 

청량사는 원효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천년을 훌쩍 넘긴 절이지만 지금 절의 모습은 오래되지 않았다. 새로 지은 건물들이 많다. 그렇다고 절의 고풍(古風)이 기대보다 못하다고 실망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절터의 절묘함으로 인해, 찾는 이들로 하여금 안으로 잠기는 여유마저 누리게 한다. 오층석탑, 삼각우총(三角牛塚) 노송, 유리보전(琉璃寶殿), 요사들이 포곡의 띠를 두르듯 청량산 봉우리 아래 따스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 마치 절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안을 듯하다. 절은 사람들을 안아야 한다.

 

청량사의 유리보전은 다른 절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이름의 전각이다.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니 약사전과 같은 의미다. 약사여래불은 아픈 이를 낫게 해준다는 서원을 세운 부처님으로 동방 유리광 세계에 주재하신다. 유리광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이므로 유리보전이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 마음의 깊은 상처까지도 다 청량함으로 비워주소서! 아, 마음의 기원은 다시 병이 되는가! 내가 씻어야 하거늘. 바람이 유리보전 약사여래불을 돌아 내 뺨을 어루만진다. 답도 없는 마음의 문제. 고개 드니 유리보전의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유리보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유리보전 앞에는 ‘삼각우총’이라는 노송이 유아독존(唯我獨尊)으로 서 있다. 삼각우총이라니 ‘세 개의 뿔이 달린 소의 무덤’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재미난 설화가 따른다.

 

옛날 산 아래 마을에 뿔이 셋 달린 소가 태어났는데 몇 달 만에 크기가 낙타만하게 자랐으며, 성질 또한 몸집만큼 사나워서 감당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 소를 연대사(蓮臺寺) 주지 스님이 거뒀는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 소가 양순하고 부지런히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소가 죽게 되자 그 소를 묻으니, 그 자리에서 세 개의 뿔처럼 세 갈래의 가지가 뻗은 소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때 마침 바람이 노송에 부딪히며 큰소리가 나는 것이 소 울음과도 같았다.

청량사의 한낮, 바람소리에 머물다 가니 물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바람소리에 마음을 열고 물소리에 마음을 씻는다. 하늘은 여전히 푸른데, 눈 감으면 금방이라도 밤하늘 별들이 쏟아질 듯하다. 내려서는 길, 청량사 전통찻집에 걸린 서각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소리를 만났을 때’. 서쪽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붉게 물든 서쪽에서 부처님이 오시길 기다렸는데, 산을 타고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산은 산사를 안고,

산사는 다시 사람들은 안는다.

이 비 그치면

하늘에 닿은 산사에

물소리 높아지겠다.